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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 소비자만 구매 차단, 왜?

[취재파일] 한국 소비자만 구매 차단, 왜?
미국 최대 백화점 가운데 한 곳인 메이시스(Macys) 본사 영어 사이트에 접속하면 팝업 창이 하나 뜹니다. 여기에는 한글로 '한국으로 배송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물건을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 규모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메이시스 백화점 쇼핑몰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물품 가운데 아예 한국 배송이 안 되는 물품이 하나 있습니다. 이 브랜드 제품을 검색하면 영어로 '한국으로는 배송하지 않습니다' 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 나라로는 배송이 가능합니다. 바로 의류 '토미 힐 피거'(Tommy Hilfiger)라는 제품입니다.

토미 힐 피거는 자신들의 미국 사이트에서도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팔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쇼핑몰 창 자체가 보이질 않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해외에서 수입품을 직접 구입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직구족' 카페에 과거에는 토미 힐 피거 본사 사이트에서 구매가 가능했는데 2011년 하반기부터 구매 자체가 안 됐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은 해외에서 수입품을 직접 구입하는 이른바 해외 직구족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물건 자체에 대한 선호는 있는데 독점 수입업체가 수입해 국내에서 파는 수입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를 하고 있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배송대행업체 등록 회원만 6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주문건수는 200만 건이나 됩니다. 해외 인터넷 쇼핑 규모도 1년 전보다 49%나 증가했습니다. 해외 직접 구매 소비자들 숫자가 늘면서 이들의 배송대행을 처리해 주는 업체 숫자까지 늘었고 시장 규모도 커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제품인데도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가격과 해외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2~3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토미 힐 피거의 경우도 취재를 해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국내 백화점 판매가와 미국 백화점 판매가가 3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한국이 비쌌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다른 나라 소비자들은 토미 힐 피거 본사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서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쇼핑몰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실제 한국 IP주소가 아니라 다른 나라 IP주소로 우회 접속을 해 봤더니 해당 온라인 쇼핑몰이 나타났습니다. 정상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한국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불공정 행위입니다.

토미 힐 피거 본사에 연락해 왜 한국 소비자들만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본사 측은 계속 국내 독점수입하고 있는 SK네트웍스 쪽 담당자에게 물어보라고 회피했습니다. 계속 답변을 요청했더니 이메일로 취재 내용을 보내주면 바로 답을 주겠다고 했지만 3주가 넘은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국내에 독점수입하고 있는 SK네트웍스 측은 "본사가 결정하는 조치이지 자신들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한국 소비자들은 선택권은 계속 침해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짐보리


사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롯데쇼핑이 미국 아동복 짐보리를 독점 수입하게 됐는데 그 때부터 한국 소비자들의 미국 짐보리 쇼핑몰 접속이 차단됐습니다. 소비자들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수입아동복 거품빼기 청원운동에 나섰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 위반 여부에 대해 롯데 쇼핑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난해 11월 롯데쇼핑이 짐보리 본사에 요청해 접속 차단을 풀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소비자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과거에는 독점 수입업체들이 마진을 많이 붙여서 판매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샀었는데 직구 족의 중심이 된 20~30대 여성들은 인터넷을 통해 가격 비교 정보를 얻는데 익숙하고, 해외 여행 등을 통해 해당 제품에 대한 이해도 있어서 서로 상품 정보를 공유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함께 행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유아용품 구매가 많은데 유아용품의 특성상 사용 기간이 짧아서 해외 직구로 산 제품을 중고로 거래하는 시장까지 형성돼 있는 실정입니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늘게 될 때 독점 수입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일 것입니다. 가격 거품을 빼거나 소비자들의 똑똑한 소비행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기업의 자유이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해당 기업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달라졌다는 흐름을 읽는다면 소탐대실을 하는 일이 없을 텐데 아직은 그런 흐름을 받아들이는 독점 수입업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관련 기사와 영상: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77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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