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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알코올 장애치료 받으면 "보험불가" 라니…

[취재파일] 알코올 장애치료 받으면 "보험불가" 라니…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술 많이 마시는 사회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는 15세 이상 인구가 연간 1인당 8.9리터(2009년 기준)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OEDC 평균 수준이지만 중국보다는 거의 2배입니다. 평일에도 술을 많이 마시고, 폭탄주를 즐겨 마시는 우리의 대학, 직장문화를 고려하면 양 보다 섭취 강도는 훨씬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의대 연구팀에 의뢰해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성인 남성은 5명 중 1명 꼴로 알코올 의존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을 끊고 싶고 술 때문에 직장이나 가정 생활에 문제가 생겼던 사람이라도 선뜻 알코올 장애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받으면 나아질 수 있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알코올 장애 치료를 받고 다시 일상생활에 돌아가는 일이 많지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험사에서 가입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보험에 가입하려면 자신의 과거 치료 경력을 적어야 합니다.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가입을 했다면 나중에 보험금이 지급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과거 알코올 장애 치료 경력을 알리면 보험 가입 문턱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됩니다. 

취재 중에 만난 김 모씨도 4년 전 스스로 알코올 장애를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치료를 받았고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했습니다. 이후 4년 동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직장은 물론 가정 생활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해서 동호회 회장직까지 맡고 있습니다. 담배도 몇 달 전부터 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질병이 생길 지 몰라서 보험에 가입하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거절당했습니다. 암 보험, 종신보험은 물론 운전자 보험까지 가입이 거절됐습니다. 의무보험인 자동차 보험을 제외하고는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직장에서 단체 보험에 가입할 때도 김씨는 나중에 제외가 됐습니다. 이유는 4년 전에 알코올 장애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보험 가입이 거절된 이유가 직장에도 알려지면서 김씨는 직장생활도 불편해 졌다고 합니다. 김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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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없는 사람들은 큰 병이 걸리면 치료비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험이라도 들어놓아야 안심인데 알코올 장애를 치료했던 경력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 지금 큰 병 걸리면 그냥 죽게 됩니다. 이런 상황인 줄 알았다면 절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취재해 보면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가운데 상태가 초기일 때 치료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사람들이 보험 가입거절 등 불이익 때문에 치료를 미루면서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본 적이 많다고 말합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알코올 장애 치료를 받으려고 온 사람은 오히려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아예 치료 조차 기피하는 사람은 더 심각한 상태일 수 있는데 이상하게 더 심각한 사람은 보험 가입이 되고 나아지기 위해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은 보험사에서 차별하면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알코올 장애뿐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으면 모두 비슷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정신과 치료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어떠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금융상품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고, 심신미약 상태에서는 보험 가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약관을 들어 거절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치료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도 깔려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그 사람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 한 번이라도 치료 경력이 있으면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데이터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험사에서 그 동안 알코올 중독 치료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입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살확률이 얼마나 높은 지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보험은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대상 그룹 별 위험률을 측정해서 보험료를 산정하는데 그런 작업 자체를 할 근거 조차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입견으로 그냥 거절만 하고 있는 겁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질병의 상태는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고 알코올 장애나 우울증은 진행 상태에 따라 상, 중, 하로 심각성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보험사가 가입을 거절하기 보다는 보험 가입을 하려고 할 때의 상태를 전문의 소견을 받아서 확인해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갈수록 우울증 증세나 알코올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장벽을 그대로 두게 되면 조기 치료를 통해 문제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치료를 늦춰서 병을 키우게 되면 이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너무나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금융감독당국과 보험사들의 시선이 보다 전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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