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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Q&A] 학폭 가해자들의 '소송 활용법'…'학폭' 기록 지우는 부모 (ft.정순신 아들 학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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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

폭력 그 자체도 비난 받을 일이지만, 힘 있는 부모가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피해자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분노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들만 그랬을까요?

저희 취재팀은 지난해 1년 동안 학교폭력위원회 처분에 반발하며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 133건을 전수 조사해봤습니다.

그 결과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행정소송을 어떻게 악용하고 있는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학폭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야 할 것 같지만, 전체의 86%인 117건은 가해자 측이 학폭위 처분이 과하다며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결과가 뒤집힌 경우는 24%, 4건 중 1건에 불과합니다.

그럼 가해자들은 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전에 나설까요?

최초 학폭위 처분부터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28.5일, 1년 2개월이었습니다. 

소송을 이어가며 시간을 끄는 건데, 그렇게 되면 교내 봉사나 서면 사과와 같은 가벼운 징계 기록은 졸업과 동시에 생활기록부에 남지 않고 자동 소멸되게 됩니다.

국수본부장에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도 이렇게 행정 소송을 걸어 아들의 학폭 사건을 3심, 대법원까지 끌고 갔습니다.

학폭 관련 소송은 보통 길어도 항소심에서 끝난다는데, 저희가 분석한 판결 중에서도 3심 선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정순신 변호사 측의 대응이 이례적이란 게 법조계 얘기입니다.

이렇게 가해자가 행정 소송으로 시간을 끌면 학폭위 처분이 늦어지는데, 그동안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가 피해자를 거꾸로 신고하면서 2차 가해까지 벌어집니다.

학폭 피해를 입은 가족을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7년 당시 학원 통원 버스 안에서 동급생들이 보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던 A씨. 

학폭위는 가해 학생에게 가장 가벼운 서면 사과 조치를 내렸고, 피해자가 재심을 청구한 뒤에야 접촉 금지 등 추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한 대형병원 의사인 가해자 아버지는, 고소를 운운하며 피해자를 몰아붙였고,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했습니다.

가해자 측 소송은 기각됐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해 군에 입대한 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과 입원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살인에 가까운 끔찍한 행동으로 아들의 영혼을, 꽃을 꺾어버렸다"며 분노했습니다.

판결문 속에서도 이런 사례는 빈번했습니다. 

중3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한 12살 여학생이 2년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오히려 퇴학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 소송을 냈습니다.

또 13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동급생에게 과도를 꺼내 위협하면서 협박했는데, 그러고도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학교폭력 행정소송 판결문 가운데 성폭력 사건은 19건, 가해자의 평균 나이는 14.3세였습니다.

가해자가 초등학생인 경우가 37건, 중학생 53건, 고등학생 42건이었습니다.

가장 어린 경우는 8살로 가해자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한 살 어린 남학생에게 학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당한 15살 B양. 

학폭위가 내린 조치는 출석 정지 7일과 보복 금지였습니다.

4개월 뒤 가해자는 B양이 피해 사실을 SNS에 올렸다며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신고했고 졸지에 가해자가 된 A양은 사과문까지 써야 했습니다.

B양의 아버지는 학폭위에서 아무 설명도 없어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는데, 그 바람에 가해자가 강제전학 처분을 받지 않아 어제부터 딸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도 막을 도리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런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가해 학생이 행정소송으로 불복하는 동안, 피해 학생을 보호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학폭위 결정이 확정되기 전까지 3일간 출석정지 외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취할 보호 방법이 부족한데, 소송이 1년도 넘게 걸리는 현실에서 학급 교체나 접촉 금지 등 피해자와 가해자가 학교에서 마주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단 겁니다.

피해 가족들은 가해 부모의 맞대응과 소송에 무력해진 상태였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신고 시 학폭위를 열도록 한 법 취지가 맞학폭위에 맞소송으로 퇴색되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적 해결은 설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 취재 : 김형래, 박세원, 이태권 / 영상취재 : 양현철 / 기획 : 정성진 / 편집 : 김복형 / 디자인 : 박수민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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