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세무조사라는 칼이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한 정당한 목적을 벗어나 특정한 정치적, 정책적 목표를 위해 동원된 사례들을 우리는 적지 않게 알고 있습니다. 특정 기업,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경우도 있었고 언론계를 대상으로 한 적도 있습니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고의든 과실이든 어떻게든 추징할 부분을 찾아냈고,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한 세금 추징을 넘어서서 형사 처벌을 받거나 기업이 통째로 공중 분해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세청장을 비롯한 국세청의 핵심 보직은 항상 믿을 만한 사람들을 앉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또 이들은 이런 저런 정치적 시비에 휘말려 자리에서 물러나면 수사 기관에 불려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습니다. 이런 일이 모두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징표로 비쳤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표적 세무조사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단순히 논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표적 세무조사를 한 사실이 확인이 됐습니다. 그것도 대선에서 반대 진영에 섰던 세력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미국의 국세청인 IRS가 2010년 초부터 면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 단체들이 제대로 면세 자격이 있는지를 조사했는데 하필이면 '티파티' '애국자' 등의 이름이 들어 있는 보수 성향 단체들이 강도 높은 조사 대상에 무더기로 올랐다는 겁니다. 국세청은 면세 자격 조사 초기에 티파티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이 집중적으로 조사 대상에 오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당연히 공화당 쪽에서는 "정적을 겨냥한 권력 남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표적 세무조사에 대해 처음 알았다면서 진상 조사를 지시하고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고 국세청의 자체 감사는 물론 법무부도 범죄 혐의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아직 법무부의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는데 백악관은 일단 표적 세무조사에 대한 정치적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논란이 발생한 지 1주일 만인 16일 오전(한국 시간) 국세청장 직무대행이 전격적으로 사직했습니다. 사직 발표도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했습니다.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실제로는 해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겁니다.
하지만 이걸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보수 단체들 말고도 보수 진영의 주요 인사들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도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주장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의회에서는 청문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전직 국세청장도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도 종종 그랬듯이, 결국 누군가 감옥으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알았든 몰랐든 오바마 대통령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은 '언론 탄압' 논란. 이건 국내에서는 어느 정권이 집권해서도 줄곧 쟁점이 됐고, 특히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시끄러웠던 쟁점입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만큼은 전 세계 기자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뉴스 통신사인 AP본사와 지역 사무실, 기자들이 사용하는 전화 회선 20여 개의 두달 치 통화기록을 연방 검찰이 압수해 조사한 것이 발단입니다. AP가 쓴 미국 중앙정보부, CIA의 대 테러 활동 관련 기사를 놓고 CIA의 비밀 작전 내용이 유출된 경위를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결국 AP 기자들의 취재원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는데 AP는 물론이고 신문편집인협회 등 미국의 여러 언론단체들이 있을 수 없는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시간으로 16일 새벽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는데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 겸 연방검찰총장은 AP에 대한 수사는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이번 수사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며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던 백악관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언론자유를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백악관이 민주당 소속인 척 슈머 상원의원에게 '자유로운 정보유통법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이 법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론인에게 기밀 정보원(즉, 취재원)의 공개를 강요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며 주류 언론 기자는 물론 블로거 등도 적용 대상으로 하는 겁니다. 그동안 미국에는 여러 주에서 취재원 보호를 규정한 이른바 '방패법(Shield Act)'이 제정되어 있는데 연방 차원에서는 이런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는 있었지만 입법에는 실패했던 거죠.
사실 미국에는 더 오래된 스캔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벵가지 영사관 테러 참사에 적절하게 대응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인데 공화당과 보수 언론들은 미국 CIA의 보고서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됐다고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선 과정에서부터 원세훈 원장이 이끌던 국가정보원의 각종 정치 개입 문제가 쟁점이 됐고 급기야 원 전 원장이 출국금지된 채 검찰의 소환을 기다리는 상황이죠.
어쨌든 이들 논란 와중에 미국에서 연방 차원의 취재원 보호 법률이 만들어질지가 저로서는 제일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미국은 그나마 주 차원에서라도 취재원 보호 법률이 많이 도입되어 있는데 우리는 취재원 보호를 위한 증언 거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거든요. 또 취재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도 수시로 시도되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입법 논의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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