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김학범 감독이 갑작스레 강원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8월 중순 현재 리그 14위. 창단 5년 째를 맞는 도민구단은 그 어느 해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상호 감독대행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사령탑까지 잃고 표류하던 강원에, 김학범 감독이 합류하게 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 처럼 보였다. 2008년 K리그를 떠난 뒤 약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범슨', 김학범 감독을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지금 그는 무슨 꿈꾸고 있을까.
Q> 오랫만에 다시 K리그 현장으로 복귀했다. 기분이 어떠신지?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나?
달라지긴 뭘.(웃음)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바뀐 부분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정말 너무나 다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났으니 팀 코칭스태프가 바뀐 곳들도 많고, 어린 선수들도 많아져서 그런 부분들은 다 파악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아직 15개 팀 전부하고 경기를 해 보지는 않았는데 한 바퀴 돌고나면 금방 파악되지 않겠나.
Q> 7월 중순에 갑작스레 강원부임 소식이 전해졌다. 복귀소식에 주변에서도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강원행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면?
강원이 고향팀이고 '언젠가는 한 번 맡아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기는 했었다. 그런데 나도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한 4-5년 뒤가 아닐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온 것 같다. 처음에 강원으로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도 이래, 저래 말이 많았다. 나는 원체 인터넷 같은 것은 안 보고 사는 사람이라 잘 몰랐는데 지인들이 '인터넷 좀 보라'라고 했을 정도니까.(웃음)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팀이 어렵다거나, 구단주와의 문제라든지 그런 부분보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끌어 올릴까가 제일 큰 걱정이다. 하반기에는 스플릿 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에 일단 강등권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Q> 인터넷을 보고 충격을 받진 않았나? 팀을 맡는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표이사가 수시로 라커룸에 드나들고, 월권을 한다는 기사를 나도 봤다. 물론 사람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에 느낀 것은 '정말 에너지가 대단하신 분이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 시민 축구단에는 저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이 한 명 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현장과 거리가 멀고, 단순히 행정에만 집중하다보면 이야기가 안 통할 수도 있는데 저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라면 '말이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돈을 벌어와 줄 사람은 거기에 집중하면 되고. 그러다 양쪽이 서로 필요한 게 있으면 가감없이 터 놓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끈하게 같이 정면승부를 해야할 때도 있으니까.
Q> 팀 내부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느꼈는지? 항상 최고의 팀을 맡아오다 하위권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에서 어려움도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
처음에 강원에 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러다가 주변에서 내가 너무 좋은 팀만 맡으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마음은 조금도 없었거든. 그리고 현장에 대한 갈증도 상당했다. 역시 경기장에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어려움? 예전에 성남도 창단했던 팀이다. 초창기에 왜 어려움이 없었겠나. 나중에 성적이 나오고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잘 나가는 팀이 되었지만 처음에 내가 김상식이나 장학영 같은 선수 데려와서 시작할 때 그 팀에도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강원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그건 팀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성적을 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어제 비품실에 가서 물품들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는데, 내가 예전에 직접 만들어 썼던 것들이 여기는 전부 다 있더라.(웃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야, 여기 좋은 것들 다 있네"했다. 지원은 필요하면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선수들 정신력이나 분위기는 다르다. 나에게는 일단 이번 시즌 말미 그걸 바꿔 놓는게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Q> 성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잡은 목표가 있나?
일단 이번 시즌은 꼴지탈출이다. 강등은 절대로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Q> 늘 '우승'을 말하던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꼴지라는 단어가 나오니 생경하다.
물론 나도 우승이야 하고 싶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목표가 구체적이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구성으로 우승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이번 시즌은 반드시 1부에 살아남는다는 목표로 팀을 운영하려고 한다. 이제 막 한 달 정도가 됐는데 팀에 와서 제일 화가 났던 것이 우리 선수들이 너무 순둥이라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착한 선수들만 모여있는지 놀랐을 정도다. 팀에는 좀 악바리 같은 놈도 있어야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굴러가는데 우리 강원 선수들은 너무 착하고, 너무 열심히 한다. 그런데 항상 팀이 지기만 하니 분위기가 살아날 리가 없다. 조금 튀기도 하고,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면 죽어라 날아다니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한다. 밖에 나와서는 놀 때는 놀고, 그렇게 정신없이 축구하는 놈도 한 놈쯤은 있어야 하는데….
Q> 말씀을 들으니 이천수가 딱 떠오르는데, 혹시 영입하실 생각은 없나?
안 된다, 우리는 그럴만한 돈이 없다.(웃음) 그리고 이천수 문제는 일단 전남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Q> 데니스를 복귀시킨 것이나 지쿠 임대 등은 놀라운 시도라고 본다. 이 선수구성으로 하반기를 전망해 본다면?
나로서는 7월에 팀을 맡고 약 한 달 정도 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센터백을 한 명 씩 더 영입하고 싶었지만 다른 팀에서 정말 안 된다고, 선수를 안 내주더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했고. 하지만 일단 시작됐으니 무조건 강등권 탈출 목표로 간다. 9월 이후 상위 스플릿과 하위 스플릿이 나뉘고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좀 더 윤곽이 잡히겠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절대 꼴지는 안 한다. 그게 가장 큰 목표다.
Q> 올림픽이 끝나면 오재석이 수비라인에 복귀한다. 그 부분도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오재석이 돌아오면 조금 안정적인 모습이야 갖추겠지만, 그 한 선수가 돌아온다고 해서 팀이 엄청나게 달라지거나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재석도 경기에 나서면 팀의 일부일 뿐 아닌가? 단지 한 명의 선수가, 그 선수 혼자의 힘으로 팀 전체의 경기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오재석이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선수 본인에게나 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런 부분은 아주 긍정적인 효과다.
Q> 강원에 내려와서 혼자 지내는 것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갑작스레 주변 환경이 변한 것 아닌가?
아내가 종종 내려와서 챙겨주기는 하는데, 서울에서 아이들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예 내려오기는 아직 힘들다. 곧 큰 아이가 유학을 떠나는데 그럼 좀 시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웃음) 작은 아이는 축구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거의 신경을 안 쓴다. 녀석 친구들은 주변에서 아버지가 감독이라고 부러워한다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평소에 아무 이야기도 안 해주는 편이라….(웃음) 조언 같은 것도 거의 안 해준다.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 뭐. 내가 해 줄 것이 있나. 단지 궁금한 걸 물어봤을 때는 알려주는 편이다.(웃음)
Q> 2005년에 인천이 준우승까지 갔었던 스토리도 있었다. 강원도 언젠가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거라 보는지.
먼 훗날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이랑 그 때와는 또 다른 것이 플레이오프라든지 제도가 바뀌었고. 여러 가지로 상황도 달랐다.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한다. 부담감? 그런 것은 아직 없다.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물론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만큼 팀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 당분간 김학범 감독에게는 이기는 날보다 이기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K리그에 또 하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에서 예의 그 무서운 눈빛으로 독기를 품었다. 감독의 이름이 더해진것 만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만큼 존재감을 가진 지도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이 부임하면서 강원은 순식간에 내려갈 팀에서, 올라올 것 같은 팀이 되었다. 팀에 부임한 그 다음날 경기서 김학범 감독은 '그냥 터치라인에서 눈만 부릎뜨고' 있었을 뿐이라는데, 강원은 대전을 3-0으로 이겼다.
하반기 첫 스플릿 제도를 앞두고 있는 K리그.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절실한 팀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거기에 김학범 감독과 강원이 당당한 출사표를 던졌다. 목표는 '꼴지탈출', '강등은 너희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명장과 함께, K리그의 하반기가 더 흥미진진한 싸움을 기다리고 있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