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여 있던 안 교수의 책이 전격(?) 발간된 지난 19일, 부산을 방문중이던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교수가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사실상 대선출마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아무런 대답없이 자리를 떴다.
그날 박 후보 캠프의 반응도 무덤덤으로 일관했다. 홍사덕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우리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준 경제 대국이라는 점과 격동하는 세계·동북아 정세를 생각할 때 책 한 권 달랑 들고 나와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은 무례도 이만저만 무례가 아니다"라고 쏘아 붙였을 뿐이다.
◈ 박근혜에게 안철수란?
박근혜 후보의 대답이 나온 건 그로부터 사흘이나 지난 뒤였다. 박 후보는 지난 20일 런던올림픽 선수단 환송식에 참석한 뒤 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고 "(안 교수가) 출마를 정식으로 하셨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책을 갖고 해석할 수도 없고, 아직 (출마 여부가) 확실하지는 않잖느냐"며 "출마를 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국민께 확실하게 밝히셔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요,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의 이면을 볼 필요가 있다.
며칠 전 친박근혜계 인사와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야당 주자들 품평 끝에 자연스레 안철수 교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 인사는 안철수의 실체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신기루인지, 정말 대선판을 뒤엎을 최대 변수인지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TV 예능 프로에서 종종 출연자에게 눈을 가린 채 상자 속의 물체를 확인하게 하곤 한다. 그 때마다 출연자들은 상자 속 물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놀라고 또 불안해 한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무리 무해한 것이라고 해도 알 수 없으니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에게 안철수 교수는 그런 존재다. 아니 단순히 몰라서 불안한 것을 넘어 지지율이라는 객관적 데이터로 자신을 위협하는,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다.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셈이다.
◈ '대전차 지뢰인가?' '훈련용 교보재인가?'
혹자는 안철수 교수가 '대전차 지뢰'인지, 아니면 모양만 똑같은 '훈련용 교보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짜 대전차 지뢰라면 박근혜 후보의 대선 가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결국 진짜 전차를 박살낼 지뢰인지 껍데기뿐인 교보재인지 알아보려면 직접 파보고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그가 대선판에 나와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안철수 교수의 득표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일부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중도층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대안 세력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야당과의 단일화까지 더해지면 정권 교체는 기정 사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멘토와 지도자는 다르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지성인으로서 젊은층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확실한 멘토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평가다. 따라서 그에 대한 지지율 또한 그가 멘토의 자리를 떠나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이는 순간 상당 부분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바로 이점이 안철수 교수가 정치 참여를 고심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얘기도 있다.)
'출마 의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로서는 안 교수가 가급적 빨리 나와야 그 파괴력을 가늠할 수 있고 또 그에 맞는 준비도 할 수가 있다. '국민께 확실하게 밝히셔야 한다'는 박 후보의 말 속엔 '출마할 생각 있으면 빨리 나오라'고 촉구하는 뜻도 담고 있는 셈이다.
◈ 제3 후보, 18대에서는 어디로?
역대 대선에서는 늘 거대 여야의 폐해를 비판하며 제3 후보가 나서곤 했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부동층이 이들의 지지기반이 됐다. 14대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가, 15대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또 17대에서는 이회창, 문국현 후보가 나선 바 있다. 제3 후보의 돌풍이 1, 2위 순위를 뒤바꿔놓는 변수가 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본인이 직접 당선되지는 못했다.
이번 안철수 교수의 도전이 현실화 할 경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전의 제3 후보들과 달리 높은 인지도와 지지율에 비 정치권 인사로서의 신선함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바로 '검증'이다.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를 남겨둔 셈이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 이후 계속돼 온 박근혜 후보측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에 그칠지 아니면 심각한 고민 거리로 남게 될지도 이후 대선 때까지 지켜볼 만한 관전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