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열린 시장’
"'좋다', '싫다'를 떠나서 무엇보다 많이 놀랐죠. 보고하러 들어갔는데 일단 앉으라는 거예요. 이전 시장 땐 상상도 못했던 일이거든요.” 친분이 있는 모 과장에게 박원순 시장에 대해 물어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시장에게 결재를 받거나 보고를 할 때는 서서 하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이건 부시장, 국장·본부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서서 보고를 하려는데, 갑자기 앉으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요. “처음엔 물어볼 게 많아서 그랬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모두 다 앉아서 보고하더라고요. 시민단체에서 오신 분이라 ‘뭔가 좀 삐딱할 거다’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런 편견을 한 번에 날려버렸죠.”
기획 분야에 있는 모 팀장도 비슷한 의견을 얘기했습니다. “말단 직원부터 실·국장까지 누구나 시장에게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어요. 막말해도 웃어넘길 사람이죠. 누군가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해도 다 웃어넘기더군요. 성격이 참 좋은 사람이에요” 이처럼 박 시장은 매우 짧은 시간에 서울시 공무원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비결은 역시 ‘낮은 눈높이’와 ‘경청’이겠죠. 특히 직급이 낮은 하위직 공무원일수록, 젊은 공무원일수록 박 시장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무서웠던 이명박 시장’, ‘귀공자 같았던 오세훈 시장’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는 긍정적인 평이 많았습니다.
'시민운동가’서 '행정가'로 빠르게 변신 중
박 시장이 시민운동가에서 행정가로 무난히 변신하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기술직에 있는 모 과장은 “박 시장이 취임 초기에는 서툴렀는데, 올 초부터는 많이 달라졌다."고 귀띔해줬습니다. 그 근거로 현장을 찾는 횟수를 대폭 줄였다는 것을 꼽았습니다. 박 시장은 두 달 전부터 요일별 테마 업무 방식을 도입해, 매주 화요일에만 현장을 찾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취임 초기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며, 가능한 현장에 자주 나갔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아마 현장에 나가면 민원인들의 각종 요구가 빗발치고, 시간도 많이 빼앗기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보입니다.
또, 사람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하는 말도 신중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지난 2월 박 시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서울 25개 구 구청장들과 동시에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선 각 자치구에서 쏟아내는 민원이 봇물이 터지듯 했습니다. 박 시장은 각 사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대답하거나 배석한 담당자들에게 설명하게 했을 뿐 즉답을 피했습니다. 취임 초기에 한 구청장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서울시 잘못”이라고 덥석 답했던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현장에서 하는 말도 신중해졌습니다. “당장 고치겠습니다.”, “빨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즉흥적인 대답이 “잘 알겠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와 같은 다소 유보적인 반응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험을 통해 ‘서울시장’의 말이 갖는 무게를 터득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원순 시장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는 인상은 ‘겸손하고,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런 박 시장도 한 꺼풀 벗겨보면 또 다른 면이 드러난다고 얘기합니다. ‘사람은 좋지만 시장을 설득하는 건 다른 얘기다. 들어주긴 하지만 개인적 고집을 굽히지는 않는다.’ 이런 의견도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돌고래 쇼 중단 발표입니다. 지난 3월 박 시장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고향인 제주도 앞바다로 돌려보낸다고 발표했습니다. 제돌이가 불법 포획된 돌고래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돌고래 쇼도 중단시켰습니다. 이에 동물원 측은 연간 100만여 명이 돌고래 쇼를 관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제돌이’가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반발했지만, 박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현장을 중시한다는 박 시장이 담당자 얘기는 는 다 무시하고, 동물보호단체랑 네티즌, 트위터 팔로워 말만 듣고 정책을 결정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
하지만, 공무원이 느끼는 박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문화정책 부서의 팀장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박 시장은 주무부서 담당자를 불러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과 철학, 가치관에 대해 길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책도 몇 권 권하면서 공부해서 정책을 추진하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시장이 얘기하는 총론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그 말대로 할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유토피아입니다. 어느 부서에 어떤 일하고, 이 사업은 어떻게 나눠서 이렇게 진행하라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총론만 얘기하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죠. 부서 간 다툼만 생기고요.”
이런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어느 교통정책 분야 팀장은 “간단한 사업이 있는데, 이걸 두고 시장께선 당신이 갖고 계신 아이디어를 모두 쏟아내더라고요. 말씀을 들으면서 맞는 말이긴 한데, 실무자가 볼 땐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다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들었던 얘기를 모두 녹취해, 이걸 다 풀어서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확인하라고 하니 업무량이 몇 배 늘었죠. 말로는 일찍 퇴근하라고 하는데 매일 자정 가까이 돼야 퇴근합니다.” 한마로 ‘총론’엔 강한데, 그 ‘총론’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할 ‘각론’이 약하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박 시장의 대표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정책의 대안으로 들고 나온 이 ‘마을공동체’ 사업은 한마디로 ‘사람 냄새 나는 동네 만들기’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민이 마을정책에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경제활동도 함께하면서 서울을 삭막한 대도시에서 골목길 네트워크가 가동되는 ‘마을’로 바꾸겠다는 계획입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만드는 등 올해만 1,340억 원을 들일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 비전에 대해 전문가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미래의 청사진으로 적합한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결정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을공동체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서울과 같은 세계적 거대도시에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란 것입니다.
공무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박원순 시장에게 성적을 준다는 어느 정도를 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B-”를 주겠다는 대답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제 갓 시작한 시장에겐 너무 야박한 점수가 아니냐고 했더니, 그래도 전임 시장들보단 후한 점수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대는 컸는데 아직 박 시장이 보여준 모습은 조금 실망스럽다’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공무원이 박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기존의 결과 중심주의, 엄격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소통’과 ‘과정’을 중시하는 박 시장의 행정스타일이 신선하고 기대되지만 동시에 낯설고, 비효율적이라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박 시장에게 주어졌던 ‘지난 6개월의 시간’은 ‘새로운 도전’, ‘더 좋은 행정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는 미명(美名)으로 포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한 비판과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올라서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이끌어갈 서울이 어떤 모습일지,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조금 더 냉정한 한 시선으로 바라보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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