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이 된 증언
내 번호는 12번이었습니다.
다다미 한 장 정도 크기의 방 앞에는 1번부터 40번까지 번호가 붙었습니다. 40명의 여자가 있었던 겁니다.
“빨리! 빨리!” 하루에 40∼50명의 군인을 상대했습니다. 그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욕보였습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20시간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12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어떤 때는 50명을 상대하다 몸이 견디지 못해 쓰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병사가 불붙은 담배를 내 코와 자궁에 넣었습니다.
“이제 나는 질렸으니 네 차례다!” 뒤이어 장교는 군견 셰퍼드가 나를 덮치게 했습니다. 나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놈은 확실히 하니까 써먹을 수 있다.” 나는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대장이 나를 살려냈습니다. 나는 죽음을 선택할 자유도 없었습니다.
패전이 명확해지자 일본군은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 150여 명을 두 줄로 세운 뒤 잔인하게 머리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피가 비처럼 쏟아졌고,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체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목숨을 유지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16살 때 위안부로 끌려간 故 김대일 할머니(1916∼2005)의 증언 내용입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기억. 듣기만 해도 끔찍한 할머니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름은 이토 다카시. 40년 가까이 아시아 전역에 걸쳐 위안부 피해를 기록해온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입니다.
“피해 여성들의 분노와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는 취재를 계속하던 기력을 순간 잃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여성이나 타민족을 차별했던 건 아닌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토 다카시
2014년, 그는 사과도 못 받고 떠난 대한민국 여성 9명, 북한 여성 11명의 증언과 사진이 담긴 책을 발간했습니다. 올해는 이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죽는 마음으로 괴로운 체험을 말해 줬다는 건, 그분들이 제게 맡겨준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다시 일본 사회에 똑바로 전하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 이토 다카시
오는 29일, 그가 기록한 이야기가 한국에 번역 출간됩니다. 보내주신 정성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다큐멘터리의 제작비에 쓰이며 사연이 담긴 책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방법 : 나도펀딩 (nadofunding.sbs.co.kr) 후원계좌 : 신한은행 56-100589259980 (예금주: SBS 나도펀딩 ) 문 의 : 환경재단 (02-2011- 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