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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버지는 가슴에 3발, 머리에 1발의 총을 맞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사람 1. '전쟁범죄 피해자 유족' 세르기이

[취재파일] "아버지는 가슴에 3발, 머리에 1발의 총을 맞았다"
'민간인 집단학살의 현장' 부차(Bucha)에서 20대 청년 세르기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부차에서 철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3월 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피란을 떠난 집에는 세르기이와 그의 아버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가 식료품을 구하러 옆 마을에 간 사이, 아버지는 러시아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뒀습니다. 다음은 세르기이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세르기이/'러시아군 전쟁 범죄' 피해자 유족, 인터뷰

# 3월 28일 걸려온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


3월 28일 오전 9시쯤이었어요. 아버지가 이웃 4명과 함께 머물고 있는 집으로 러시아군 5~6명이 쳐들어 왔어요. 러시아 군인들은 거기 있는 사람들의 휴대전화를 모두 가져갔고, 여기엔 아버지의 전화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다른 이웃의 휴대전화를 빌려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같이 있지 못할 때 서로가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오전 10시 통화를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날 저는 오전 10시쯤 알지 못하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였어요.

그즈음 아버지는 전화를 할 때마다 포격이나 주변 상황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는 했는데, 그날은 무척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러시아군이 와서 사람들의 전화기를 가져갔다고 말했고, 제가 괜찮냐고, 다친 데는 없냐고 묻자 다 괜찮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러시아군이 사람들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포착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는지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버지는 긴장하지 않은 매우 침착한 목소리였고, 저도 아버지에게 문제 될 만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없다고 생각해 별일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 뒤 내일 다시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어요.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세르기이/'러시아군 전쟁 범죄' 피해자 유족, 인터뷰

# 이웃들이 한밤중 몰래 옮긴 아버지의 시신


그날 밤 함께 있던 이웃으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텔레그램으로 받았습니다. 저와 통화를 하고 30분 뒤쯤, 러시아 군인들이 돌아와 아버지와 이웃 사람들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해요.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었던 1명을 제외하고, 아버지까지 모두 4명이 거리로 끌려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러시아군에게 자신의 휴대전화에는 그들이 찾는 게 없다고 설명했어요. 하지만 러시아군이 위협적으로 땅을 향해 몇 번의 총을 발사했고,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모퉁이를 돌아 러시아군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웃들은 1발의 총성을 들었고, 잠시 뒤 3발의 총성을 더 들었습니다. 이웃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알았죠.

러시아군이 돌아왔을 때, 이웃들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고 해요. 그러자 러시아군은 시신을 가져가는 누구든 그 시신 옆에 나란히 눕게 될 거라고 말했답니다. 결국 함께 있던 3명의 이웃은 '이제 가도 된다'는 러시아군의 말을 들은 뒤에야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밤 몰래 다시 나가 거리에 방치돼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와서 아파트 단지 한쪽 마당에 묻었습니다.

 

# 아버지의 시신에 박힌 4발의 총알


제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한 건 그로부터 3주가 지난 때였습니다. 그 사이 당국에서 단지 마당에 묻혀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처음 확인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4월 3일 부차 지역을 탈환하고,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을 때, 아버지가 가슴에 3발, 머리가 1발의 총을 맞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웃들이 들은 4발의 총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숨진 지 3주가 지난 시점이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생전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거든요. 다만 몸을 보고 아버지의 시신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피란을 떠났던 어머니가 돌아와 시신을 함께 화장하고 마을 공동묘지에 묘지를 마련한 건, 아버지가 숨진 지 석 달이 지난 6월의 일이었습니다.

 

#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처음 한두 달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기도 했고, 감정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했죠. 여전히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지금은 그래도 많이 담담해졌고, 매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특히 그에게 익숙한 물건, 그가 좋아하던 것들을 볼 때 더욱 그래요. 아버지는 생전에 낚시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가 자주 가던 가게 앞을 지나거나 그가 자주 쓰던 물건을 보게 되면, 아버지에게 전화해 "아버지가 무척 좋아할 만한 걸 발견했다", "이게 아버지에게 유용할 것 같다" 같은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분명 다른 말들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것 같지 않아요. 이제 와서 하는 생각들이죠.


세르기이/'러시아군 전쟁 범죄' 피해자 유족, 인터뷰

# '총살'의 이유 아직도 알지 못해


세르기이의 아버지는 철도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기술자였습니다. 겨울에는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잘라 파는 부업을 하며 열심히 가족을 부양해온 43살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왜 갑자기 러시아군에게 붙잡혀가 총살을 당했는지 그는 여전히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 역시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부차에서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여전히 주장하지만, 학살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증언들은 넘쳐납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해 8월 부차에서 모두 458명의 민간인이 총상과 방화, 고문으로 숨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부차 학살이 키이우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한 '조직적 청소'의 일환으로 자행된 '의도적 범죄'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분명한 건 이곳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살해 의도를 가진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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