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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판다] '유능한 이재명의 수완'이냐 '이권 유니버스의 표본'이냐

[끝까지판다] '유능한 이재명의 수완'이냐 '이권 유니버스의 표본'이냐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판다> 팀은 지난 7월 성남FC 내부자료와 성남시 공문을 입수해 '성남FC 제3자 뇌물 의혹'과 관련한 중요 사실들을 보도했습니다. 정자동 병원 부지를 용도변경해 고층 사옥을 짓는 과정에서 ▲두산건설이 성남FC에 수십억 원의 후원금을 납부한 내역과 ▲용도 변경을 대가로 광고 후원금 지급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성남시-두산건설 간 공문이었습니다.

▶[단독] "사옥 짓게 되면 성남FC 후원"…두산건설 공문 입수
▶[단독] 성남FC 후원금 일부, 측근에 '성과금' 지급

2달 뒤, 당초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경찰은 결론을 뒤집었고,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 수사팀은 전 방위 압수수색에 착수했습니다. 어제(26일)는 두산건설 외에도 성남FC에 후원금을 납부한 다른 기업과 단체들을 압수수색했는데, 네이버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성남FC에 광고금으로 집행한 시민단체 '주빌리 은행'도 포함됐습니다.

이처럼 거대 야당 대표와 그 측근들을 겨냥한 수사가 확대되면서 정치적 공방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여의도에서, 수많은 라디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각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말을 쏟아내고 있고, 이 말들을 실어 나르는 보도들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공방의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관계를 비틀고 축소하고 과장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남FC 의혹의 법적 쟁점과, 이 쟁점에 대한 판단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치권의 '권력관계'보다는 '사실관계'에, '한 정치인의 앞날'보다는 의혹의 해결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더 관심이 있는 기자로서,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정치권 공방 뒤에 자리한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합니다.
 

'시민구단' vs 측근들이 일하고 돈 받은 '주식회사'

저희 <끝까지판다>팀은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들을 바탕으로 판사와 검사 출신 법조인 5명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먼저 성남FC 광고 후원금 납부가 '제3자 뇌물'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세부적인 의견은 달랐지만, 자문에 응한 5명의 법조인들은 모두 중요한 쟁점으로 '성남FC라는 법인의 성격'을 꼽았습니다. 뇌물죄를 포함,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의 법조인 A 씨는 "성남FC가 공익성이 강한 '시민구단'이라고 하더라도 제3자 뇌물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성남FC를 통해 이재명 의원이나 주변 사람들이 사적 이익을 본 사실이나 정황이 풍부해진다면 재판 과정에서 혐의 성립이 쉬워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성남fc/CG1 리사이징


이재명 의원 측은 의혹 초기부터 '성남FC는 공익적 성격을 가진 시민구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주인 없는 지역 구단을 인수해 시민구단으로 탈바꿈시켰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비롯해 다양한 공적 기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성남지청 수사팀은 성남FC의 성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남시를 거쳐 경기도까지, 이재명 의원과 행보를 같이한 이들이 성남FC에 근무하면서 광고 후원금 유치에 따른 성과금은 물론, 급여를 받아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성남FC로 납부된 기업들의 광고 후원금은 성과금이나 구단 재원으로 활용됨으로써 결국 측근들의 경제적 이익으로 귀결된 게 아니냐는 겁니다. 수사팀은 또 성남FC를 운영하는 동안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정치인으로서 얻은 부수적 효과들 또한 눈여겨보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 초기 가장 큰 차원에서 벌어질 프레임 싸움은 이처럼 성남FC가 '공익적 시민구단'이었는지, 아니면 '측근들이 일하며 돈 받던 주식회사'였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부정한' 것인가


취재에 응한 법조인들 중 특히 판사 출신 법조인들은 '청탁의 부정성' 입증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청탁 없이도 현안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었는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법조인 B 씨는 "정자동 병원 부지의 용도 변경이 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성남FC도 공공적인 차원으로 기부를 받은 거라면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용도 변경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남FC 광고 후원금 납부가 조건이 되어 거래를 한 것이라면 뇌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청탁 없이는 용도변경이 어려웠을 경우에는 성남FC가 공익적 성격의 법인이라 하더라도 제3자 뇌물죄로 판단될 수 있다"며 지난 2006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 제3자 뇌물죄' 사례를 들었습니다. 당시 이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SK텔레콤으로부터 기업 결합 심사와 관련해 선처해 줄 것을 부탁받고, 자신이 다니던 절에 10억 원을 시주하도록 했다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시주를 받은 '절'은 종교 기관이고, 시주를 받은 '절'은 이 전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직접적인 이득을 준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결합심사'라는 직무와 관련해 제3자인 절로 하여금 금품을 제공받게 한 것에는 '부정한 대가성'이 있었다고 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성남fc/CG2 리사이징

또 다른 판사 출신 법조인 A 씨도 "안 되는 것, 되기 쉽지 않은 것을 해달라는 것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며 "원래는 안 되는 것을 청탁을 받고 해 준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명목상으로만 공익이지,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남지청 수사팀은 두산건설이 용도변경 현안 해결을 위해 20년 가까이 노력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용도변경이 현실화되면서 지역 시민사회단체나 진보 언론에서도 "대기업 특혜"라는 주장을 제기한 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보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실제 2015년 용도변경 당시 <한겨레신문>은 ['두산 특혜' 현실로…분당 병원땅 결국 용도변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성남시는 일부 땅을 기부채납받지만 두산 쪽은 전체 부지의 90%를 일반 업무용지로 변경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게 돼 또 다른 방식의 '재벌 특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재명 의원 측은 용도 변경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기업 유치 성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기간 개발되지 못하고 방치돼 있던 의료시설 용지를 상업용지로 변경해서 7개 두산그룹 계열사를 유치했고, 기업 유치를 통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성남시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라는 겁니다. '기업의 현안 해결'이었다기보다는 용도 변경을 통해 공익을 증진하는 '실용적 결단'을 내렸다는 겁니다. 이 의원 측은 또 '용도 변경은 성남시 산하 위원회의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사 확대 핵심은 네이버…'가벌성' 더해질까

검찰, 네이버 압수수색

성남지청 수사팀은 어제(26일) 두산건설 외에도 성남FC에 광고 후원금을 납부한 네이버, 차병원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경찰에서는 두산건설의 제3자 뇌물 혐의만 송치 받았지만, 수사 범위를 확대한 겁니다. 그간 검찰이 수사를 확대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어제의 전방위 압수수색으로 이 관측은 현실이 됐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이 이 사건을 '두산건설 제3자 뇌물' 1개의 사건이 아니라 각 기업들이 관계된 여러 건의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수사 대상에 오른 여러 기업들 중 가장 주목받는 곳은 네이버입니다. 저희 <끝까지판다>팀이 확보한 성남FC 내부자료에 따르면, 성남FC는 지난 2015년~2017년 3년간 시민단체 '희망살림'으로부터 40억 원가량의 광고 후원금을 받고, '희망살림'이 운영하는 취약계층 빚 탕감 단체 '주빌리은행'의 로고를 유니폼에 노출했습니다.

▶[단독][취재파일] 성남FC 상세 후원금 내역을 공개합니다

그런데 '희망살림'이 낸 돈은 자체 자금이 아닌, 네이버로부터 후원받은 돈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네이버로부터 후원받은 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을 성남FC에 광고금 명목으로 집행한 겁니다. 이 과정에 대한 저희 <끝까지판다>팀 질의에 네이버 측은 "희망살림을 통해 지원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온 것은 성남FC 팀장 이 모 씨"라고 밝혔습니다.

성남fc/네이버 싱크 사진

성남FC 측은 이 의혹이 제기된 초창기부터 '합법적 후원 구조'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성남FC는 의혹이 불거진 지난 2018년 국정감사 당시 성명서를 내고 "협약에 의해 이뤄진 매우 합당한 집행이며 각 협약 주체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행위로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유니폼에 롤링주빌리 로고 노출 이외에도 홈경기 및 선수단을 활용한 다양한 캠페인 활동으로 '빚탕감프로젝트'를 홍보해 악성 부채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시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면 수사팀은 성남FC 측에서 이러한 후원 구조를 '먼저' 제안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후원한 돈 40억 원을 취약계층 빚 탕감 대신 광고비로 집행한 것은 시민단체 내부의 의사결정이라 치더라도, 성남FC 관계자가 이러한 우회적 후원 구조를 대기업에 '먼저' 제안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성남fc/cg4 리사이징

다른 기업들을 향한 수사 확대는 결국 '성남FC 제3자 뇌물 혐의'의 '가벌성'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검찰 출신의 법조인 C씨는 "두산건설의 후원금과 관련해 논쟁이 분분한 상황 속에서, 대가를 바라고 성남FC에 후원한 기업이 더 있는 것으로 나온다면 야당 대표를 기소하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공소 유지 과정에서도 '가벌성'을 높여 구형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유능한 정치인의 수완'이냐 '이권 유니버스'의 표본이냐

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러한 법적 쟁점 외에도 유심히 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의혹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앞으로 공직자들의 권한 행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거대 야당 대표가 연루된 이 의혹은 앞으로 공직자와 정치인의 '제3자 뇌물'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중요한 참조가 될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또 하나의 사회적 기준선이 그어지는 셈입니다. 판사 출신 법조인 D씨도 "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사례가 앞으로 어떤 규범으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 같다"며 "판례를 만들면 앞으로 '이렇게 해도 된다, 안 된다'를 정하는 것인데,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의혹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공직자나 정치인이 '공익 증대'를 내걸고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좀 더 큰 자율성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두산건설 용도변경 사례처럼 해결해야 하는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금권을 가진 주체가 '공익 증대'를 명목으로 제3의 존재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게끔 하는 일은 "실용주의적 결단"으로 판단 받을 여지가 커지게 됩니다.

반면 이 의혹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게 된다면,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행하는 의사결정은 '이권 유니버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 받을 여지가 커지게 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과 박스에 든 현금을 차떼기로 받던 시절을 지나, 측근들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이권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일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제동이 걸릴 수 있는 겁니다.

수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정치 공방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의혹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저는, 우리 사회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정치 공방' 외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 이재명이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사들의 시계열보다, 저와 주변 사람들이 살아갈 사회의 시계열이 훨씬 더 길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남FC의 광고 후원금 유치를 '유능한 정치인의 수완'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권 유니버스의 표본'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는 '정치인 이재명의 진로'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디자인 : 옥지수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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