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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만남 대신 통화만…'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의 의미는?

[취재파일] 만남 대신 통화만…'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의 의미는?
지난 3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하 직책 생략). 방한 직전 하원의장으로서는 25년 만의 타이완 방문으로 미-중 갈등은 전에 없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 의전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20년 만의 방문. 국회 초청으로 온다지만 그 어느 때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될지 관심이 쏠렸다.

40분간의 장시간 통화가 있었지만, 만남의 이뤄지지 않았다. 펠로시는 아시아 순방길에 각국 정상들을 만나왔던 만큼 비판이 제기됐다. 중국을 의식해 타이완 방문을 마치고 온 펠로시와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중국에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를 기치로 내걸었던 만큼, 여권에서도 이번 펠로시와의 만남 불발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정은 (타이완 방문 전인) 2주 전쯤 협의돼 결정"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 때문에 펠로시 의장과 만나는 것 힘들다는 건 (펠로시 의장 방한) 약 2주 전에 이미 협의해 결정된 사안이다"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은 일주일 전 쯤 정해졌고, 윤 대통령과 만남이 어렵다는 협의는 그보다 앞서 결정된 만큼,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이 만남이 불발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 일정은 최근에 알려진 건 사실이다. 7월 중순 타이완 방문 가능성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타이완 방문 불과 며칠 전까지도 펠로시 측은 타이완 방문 계획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8월 첫 주 휴가 계획은 이보다 앞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문제로 휴가 취소 또는 연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난달 22일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칩4와 관련해 중국 고려한 결정으로 알아"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 펠로시 방한 2주 전 쯤, 그러니까 타이완 이슈가 불거지기 전에 방한 예정인 펠로시와의 만남을 사실상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휴가가 이유라면 휴가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타이완 방문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중국을 의식해 펠로시와 만나는 걸 피한 것 아니냐는 현재 시점의 질문이 아니라 협의가 진행됐던 2주 전에 시계를 맞춘 질문이 필요하다. '타이완 방문'을 삭제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기로 한 건 칩4 참여와 관련해 중국을 고려한 결정으로 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협의를 위해 한국과 일본, 타이완에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4 참여를 오래 전에 제안했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 그 답변 시한을 8월 말 정도로 제시한 것을 알려져 있다는 것, 홍콩까지 포함하면 한국 반도체 기업 수출액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은 칩4 결성, 특히 한국의 칩4 참여 가능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 펠로시는 대표적인 반중 인사라는 것, 그리고 이번 방한은 정부 초청이 아닌 국회 초청이라는 것 등이다.

이런 배경 지식을 전제하면, 여권 핵심 관계자의 이야기는 한국은 칩4 참여를 사실상 확정했는데, 한국 반도체 수출액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표적 반중 인사인 펠로시와의 만남을 피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만남이 불발된 원인은 타이완 방문이 아닌 칩4 참여에 있다는 것이다.

당당한 외교를 기치로 걸었지만,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그 중 중국(홍콩 포함)이 60%를 차지하는 현실. 그렇다고 중국이 반발하는 칩4에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미국)이나 장비(일본)를 공급 받지 못 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 이런 현실과 상황들을 고려한 결론이 펠로시와의 만남 불발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낸시 펠로시 의원-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의 의미는?

이런 전략이 실제 실행됐다면, 휴가에 대한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실행의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휴가는 서양에서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침해를 받지 말아야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침범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의미다.

반면, 동양권에서 휴가는 그것보다는 중요성이 아직 덜하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 휴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당연시 되는 문화가 아직 있고, 휴가 중에라도 중요한 손님은 직접 맞아야 한다는 생각도 아직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동서양의 인식 차이 때문에 휴가는 펠로시에게는 양해를 구할 명분이 되고, 중국에게는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데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과 윤 대통령의 지방 휴가 취소가 비슷한 시점에 결정되면서 문제가 복잡해 진 것으로 보인다. 타이완 방문으로 미중 갈등에 격화된 상황에서 펠로시와 만나지도 않고 전화 통화도 하지 않으면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나아가 굴종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지방도 아닌 서울에 있으면서 서울에 방문한 동맹국 귀빈을 홀대했다는 비판은 윤 대통령 지지층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휴가 중에 펠로시를 '공식 접견'하는 것은 칩4 참여를 위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기존 계획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만남 여부에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펠로시(미국 측)가 불쾌해 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이 전화 통화 아닐까.
 
미국 중국

미-중 양측을 향한 일관되고 정교한 메시지 관리의 필요성

이벤트는 끝났고 이제 남은 것 한국 정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그 과정에서 누군가 서운해 하는 쪽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우선 중국의 분위기를 확인하는 게 먼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중국에서 예정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칩4 참여와 관련한 논의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보면, 펠로시와의 만남과 관련한 한국 측의 의도가 중국에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칩4를 동맹으로 부르지 않겠다','누군가를 배제하는 협의체가 아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일관되고 정교한 메시지 관리는 필수다.

미국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타이완 방문으로 미국 내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펠로시지만,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에 대해 성의를 보이기 위한 조치에 미국이 불쾌함을 보인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일본과 대만은 칩4 참여에 대한 강한 긍정 입장을 표하며 달려가는 상황에서 한국의 속도 조절은 한국의 실제 의사와는 달리 전달될 가능성도 있다. 역시 미국을 향한 일관되고 정교한 메시지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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