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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그 자리'의 무게가 버거웠던 사람, 문재인

[그사람] '그 자리'의 무게가 버거웠던 사람, 문재인
1.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했던 사람이다. 정치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십자가였고 권력은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무거운 짐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편해 보이지도, 몸에 잘 맞는 옷도 아니었다. 왕관의 무게가 늘 버거워 보였던 사람이다. '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고민과 보람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지만 '인간 문재인'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써온 입장에서 떠나는 대통령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졌고 쓴다면 이 사람이 단 하루라도 현직에 있는 동안 쓰고 싶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박수현에게 지난해부터 두 차례 문자로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예상대로 답이 없었다.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못 쓸 것은 없었다. 자료는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마침 지난 달 손석희가 이 사람과 대담을 했다. 그 대담 내용과 동영상이 도움이 되었다. 묻고 싶은 거야 비슷할 터였다. 현장 분위기를 못 느끼는 게 아쉬웠지만 그 대담을 기획한 탁현민 취재를 통해 보완하려고 했다. 이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일했던 몇 사람에게 취재 협조를 요청했는데 절반쯤은 거절당했다. "…정치에 모질고 무책임한 언어가 범람하는 이 상황에서 저까지 뭘 보태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양정철의 거절 문자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2. 임기를 마치기 전 재임 5년의 소회를 밝힐 자리는 있어야 했다. 기자회견, 국민과의 대화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대담 형식으로 결정이 났다. 대담자로 유시민이나 김어준 같은 친문 성향 인물도 생각했지만 '고생하셨다', '애쓰셨다'는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을 이 사람이 원하지 않았다. 손석희는 결코 대통령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이 불편하거나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도 다 질문을 할 거라는 참모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굳이 손석희를 선택했다. 날 선 질문이 있어야 날 선 대답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손석희와의 대담은 작심하고 나온 자리였다. 남 듣기 좋은 소리 따위 하지 않을 테고 마음에 없는 표정도 짓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손석희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고 말과 말 사이에 날이 서있었다. 질문자의 말허리를 서슴없이 자르고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답변을 거부했다. 그럴 때 어투가 퉁명스러웠다. 자기 말을 평가하거나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 달라는 말을 할 때는 울분과 노기마저 느껴졌다. 천하의 손석희도 당황했던 것일까, 화를 내는 모습은 편집을 하겠다고 하자 괜찮다고 맞받았다.

-대통령께서 저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손석희 앵커도 많이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가까이서 모셨던 것 중에 대통령께서 가장 감정을 잘 드러낸 자리였습니다. 지난 5년 동안 항상 즉답을 피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뭔지 이야기해라 이런 질문이나 비난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 비난과 요구를 받아왔기 때문에 임기 마지막에 대통령이 가졌던 솔직한 생각들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

조용히 잊혀 지기를 원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이제부터 새롭게 싸우겠다는 사람의 태도였다. 선거 결과가 나오는 날 이미 권력은 넘어갔으니 이제 자신이 도전자가 되어 리턴 매치라도 갖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도발적일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은 링 위에 서보지도 못했다는 말은 그런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일부러 어깃장을 놓는 듯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다는 말은 일부러 국민들 염장 지르려는 소리 같았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언급은 겨우 봉합되는 듯했던 신구 권력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사람의 트레이드 마크인 절제와 신중, 배려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지금껏 우리가 알던 문재인의 모습은 분명히 아니었다. 임기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렇게 엇박자를 내려는 이 사람 속내가 궁금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당신 표현을 빌면 완전히 방전돼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그 힘마저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저도 현장에서 그 장면들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오늘 다 이야기를 하기로 작심을 하셨구나. 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유보하였던 이야기, 대통령으로서 임기 중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다 끄집어 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집무실 이전 문제에 대한 언급은 후임 대통령에 대한 나름의 선의로 충고를 하신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탁현민/청와대 의전 비서관

이 사람의 말과 태도를 두고 모처럼 속이 시원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하다 못해 어이없었다는 사람도 많았다. 지인 중에 한 사람은 그 인터뷰를 보다가 속이 터져서 채널을 돌려버렸다고 했다. 누적된 피로 탓일까, 아니면 일흔이라는 나이 때문일까, 조명으로 가리고 분으로 덮었음에도 얼굴은 부숭부숭했고 피곤이 더께더께 내려앉았다. 좀처럼 웃음기를 보이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길을 이제 다 왔다는 안도, 여유, 홀가분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재임 5년 기간이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섭섭함과 아쉬움,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이 사람을 지배하는 듯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인데 그것을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청와대 홍보 참모들은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노무현 문재인

3. 2011년 <운명>이라는 책을 내면서 정치를 시작했으니 정치 경력은 불과 11년이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타계 이후 벼락 스타처럼 정치권에 불려 나왔다. 김경수는 신부님을 시장바닥으로 끌어낸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시장 바닥이 아니라 전쟁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정치권에 나올 때 이미 차기 대선 후보였지만 '준비된 정치인'은 아니었다. 진보 진영 역시 이 사람의 비전과 철학을 보고 정치권으로 불러낸 것은 아니었다.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은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로 이 사람 만한 인물이 없었다.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을 마지막 보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절제력과 진정성 있는 태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도 정치권에 소환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부산에서 총선 출마, 안철수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 등을 통해 정치권의 문법을 익혀 나갔고 제1 야당 대표 자리에도 수월하게 올랐다. 정치 입문 이후 5-6년 동안 여의도 정치의 주역이었고 거의 흔들림 없이 독주하는 야당의 원톱 대선후보였지만 묘하게 여의도 정치 본류와는 겉돌았다. 정치에 완전히 녹아 들지 않고 한 발 비켜 서있는 느낌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권 불가론'이 득세했다. 불가론의 핵심은 이 사람이 권력 의지가 없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제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 정치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극단적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정치 부적격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야당 지도자 시절 이 사람이 뭘 보여주었던가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라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은 하지 않겠지, 부패하지는 않겠지 정도가 아니었을까. 자리가 높아지고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 따위는 손톱 밑 때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 이 사람도 그런 사람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를 다하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강제 징집을 당해 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했다. 의외로 군생활을 잘해서 직업 군인이 되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치인의 생활도 군 생활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을까. 의외로 잘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겠지만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

아득하게만 보였던 대권은 의외로 쉽게 거머 쥐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사건으로 기우뚱하더니 국정농단 사건에 이은 대통령 탄핵으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당시 국면을 주도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비상 상황이 되었을 때 이 사람 외에 야당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안희정, 이재명과의 당내 경선이 다소 시끄러웠고 본선도 다소 정신없이 진행되긴 했지만 청와대 주인이 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날 바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4. 국회의사당에서 치러진 대통령 취임식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단 하루의 준비 기간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거함의 키를 잡은 긴장감이 온몸에서 느껴졌고 얼굴은 진땀으로 번들거렸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수만 명이 모인 광장에서 성대하게 취임식을 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300명 남짓 참석한 초라한 취임식을 그 어떤 취임식보다 기억에 남도록 만든 것이 이 사람의 취임사였다. 취임사 원고는 이명박의 그것에 비하면 3분의 1 남짓, 박근혜에 비하면 절반 정도로 짧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훨씬 무거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미 수없이 인용된 이 구절은 그 어느 취임사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전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 했다가 탄핵 당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었고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과 자신의 정부를 평가해도 좋다는 호기로운 선언이기도 했다.

2017년 5·18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5년 전 5월은 황홀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대통령 취임 연설, 광주 5.18 기념식 연설, 고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연설은 모두 기억할 만한 연설이자 말의 힘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대선 득표율은 40%를 겨우 넘겼지만 당선 직후부터 지지율이 무려 30% 포인트 이상 올라 70%를 훌쩍 넘었다. 전임 정권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새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지지율 폭등이었다. 지지율 상승의 원동력은 이 사람의 말이었다. 임플란트 영향으로 발음이 조금 뭉개지고 노무현이나 이재명 같은 열정적인 웅변가는 아니지만 이 사람 연설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말 못지 않게 표정으로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도 있다. 모든 국민들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 사람의 말에 대중들이 환호했다. 그것은 이 사람에게도 간절한 소망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2주일이 되던 날 고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먼저 간 고인과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제 가슴에 묻고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서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규정하고 보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런 마음을 접고 모두가 하나 되자는 설득이자 자기 자신부터 그런 원한을 더 이상 품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기대가 컸고 환호 소리 높았지만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많은 것이 장밋빛 환상이었다. 다짐과 맹세는 많았지만 결과로 나타난 것은 적다. 인수위가 없는 취임 초기였으니 대통령은 꿈과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이었고 국민들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때이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었고 지키려 했으나 역부족인 약속도 적지 않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는 지키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쇼'에 불과한 약속도 있었을 것이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의 취임사를 인용해 항의했다. 이게 당신이 말하는 평등한 기회이며, 공정한 경쟁이냐고, 이게 과연 정의냐고 따져 물었다. 각료를 포함한 9명의 주요 공직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탈락했고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됐다. 남에게 봄바람 같고 나에게는 가을 서리 같다는 말을 좋아하는 이 사람에게 춘풍추상이 아니라 내로남불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과 뜻을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말과 함께 험한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사람에 대한 지지의 강도는 한결 굳건해졌지만 지지층의 폭은 좁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비판자들의 선의를 헤아리기보다 정치적 의도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상대방은 좀처럼 그 손은 잡지 않고 발목만 잡으려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취임 첫날 진땀 흘리면서 야당 당사를 찾던 그런 집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이 사람의 꿈은 현실과 멀어져 갔다.

언제부터인가 반대 편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노력 대신 법을 들어 정당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행동이 옳은 일이라고 하던 사람이 나와 우리 편이 한 일이 위법이나 탈법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 진영에게만 왜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정의와 도덕의 테두리가 아닌 법의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두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마저도 조국 일가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인사하고 있는 윤석열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5. 정권 재창출이 누구보다도 간절했던 사람이다. 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는 지난 5년이 성공한 5년이라는 가장 확실한 인증이기 때문이었다. 표 차가 적었지만 민심은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정권 심판론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말이 많이 아픈 모양이다. 2019년 정초에 청와대 관저에 가까운 참모 몇 명이 모였다. 술도 한 잔 들어간 상황에서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대선 이야기를 꺼냈다. 이 사람이 꽝 소리가 나게 술잔을 내려 놓으며 정색을 하고 이야기했다. 이 대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가 있다, 나는 임기 마칠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대통령으로서 임무에만 집중할 거다, 여러분들도 나랑 같이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다음 대선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했다. 선거 개입 발언 논란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었던 전직 대통령의 일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선거 중립에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철저했던 이 사람이 손석희 대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은 이번 대선에서 링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링에 올랐다면 선거에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대통령이 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룰 아니냐는 말에 우리나라만의 위선적인 법 해석이라고 일갈했다. 무슨 일을 할 때든 헌법과 법률을 먼저 따지는 사람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이의를 제기할 만큼 선거 패배가 아팠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적극적인 정치 행보를 보였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태연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대선 패배는 악몽이다. 노무현의 비극이 정권 재창출 실패에서 시작되었다. 더구나 새로 정권을 잡은 사람은 자신과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헤어진 사람이다. 지난 5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통째로 부정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 사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선거 이후 전례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대선 패배와 무관하지 않다.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가 절실한 또 다른 이유는 노무현과 참여 정부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년 넘게 자신이 몸 담았던 참여 정부는 실패한 정부였다.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정부가 성공해야 참여 정부의 명예도 회복될 것이었다.
"(참여 정부는)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안보도, 경제도, 국정 전반에서 훨씬 유능함을 다시 한번 보여줍시다…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모사 중

고인 앞에서 했던 5년 전의 이 다짐을 꼭 지키고 싶었을 테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이겼어야 했다. 이달 23일 김해 봉하 마을에서는 추모제와 함께 노무현 기념관으로 통칭되는 <깨어 있는 시민 문화체험 전시관>이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그 행사에 참석한다면 무어라고 고인에게 인사를 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6. 백낙청이 이 사람을 두고 정말 착하고 열심히 애쓴 것은 맞지만 정치 지도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은 아닐 테지만 진보 지성계의 태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비전과 리더십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닐까 싶다. 기치를 높이 들고 앞에 나서는 지도자는 아니었다. 밀어붙이고 호령하고 장악하는 사람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대통령도 아니다. 지난 2011년 이후 줄곧 이 사람 곁을 지켜온 탁현민의 이야기다.
 
"청와대에서 5년 동안 대통령을 근접해서 모시고 일해보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자리 같아요. 항상 자기 마음을 숨겨야 되고 먼저 결론을 내리면 안 되는 자리예요. 먼저 결론을 정해버리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결론을 향해서 달려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항상 여지를 남겨 놓고 여러 가능성들을 놓고 최종의 최종의 최종 판단을 해야지 먼저 치고 나가거나 결론을 내리거나 시원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통령의 어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이 사람이 그런 대통령이었다는 것인지 다소 모호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즉답을 하지 않고 한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랬던 사람이기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고 감정도 숨기지 않았던 손석희와의 대담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날 대담에 대해 크게 만족해 했다고 한다. 진작 이런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청와대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이 사람이 머릿속에 그리는 10년 후, 30년 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궁금했는데 손석희가 이것은 묻지 않았다. 5대 국정 지표 같은 이야기 말고 이 사람의 진짜 꿈은 무엇일까. 혹시 그런 것을 제대로 고민하기도 전에 허겁지겁 정치판으로 끌려 나온 것은 아닐까. 어떤 꿈을 꾸기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너무 바쁜 자리가 아닐까, 특히 이 사람처럼 과하다 싶을 만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마음 편히 쉰 날이 하루도 없었고 퇴근 후 관저에서도 보고서에 묻혀 살았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주말이면 강아지를 데리고 청와대 경내를 몇 시간씩 도는 것이 낙이자 유일한 건강 유지법이었던 사람이다. 그 성실함과 노력은 알겠는데 문재인 시대의 비전은 뭐냐고 할 때 그에 대한 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재임 중 과소 평가되거나 아예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는 손석희 질문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것, 대통령 권한은 헌법과 법에 정해져 있고 마구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이 사람이 정권의 최대 주주였던 것은 맞지만 전권을 행사하였던 것은 아니다. 만만치 않은 주주들이 있었고 공동 경영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정권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참모들과 회의를 할 때 이 사람의 발언 시간은 듣는 시간과 비슷했고 당정청 고위 인사들을 만날 때도 입을 여는 시간보다 귀를 여는 시간이 길었다. 지난 5년의 국정 운영이 이 사람 뜻대로만 된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향해 국정의 무게를 더 두고 싶었지만 적폐 청산이라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검찰 개혁이라는 말을 5년 내내 끌고 다닐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내가 무슨 제왕적인 대통령이었느냐는 항변은 이런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려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오로지 자신에게만 묻는 것 역시 온당하지 않다는 말을 저렇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집권 기간 내내 이 사람 지지율이 집권당의 지지율보다 높았다. 그 힘으로 행사 했어야 할 '영향력'은 없었을까. 예를 들어 입법부의 일은 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은 문재인 정부의 이름으로 기록될 일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일지 모르지만 책임은 무한대이다. 임기 만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부랴부랴 처리한 검찰 관련 법안들도 박홍근이나 윤호중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한 일로 역사에는 기록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백낙청이 리더십의 한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서울공항 도착한 홍범도 장군 유해

코로나19 와중에 치러진 지난해 8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은 독립 영웅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갖춘 행사였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실린 수송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왔을 때 공군 비행기 6대가 호위하며 맞았고 이 사람이 공항에 나가 거수경례로 서거 78년 만에 돌아오는 영웅을 맞았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식에서 연설을 하면서 이 사람 눈자위가 젖었고 목이 메었다. 재임 5년 동안 국내에서 1천 8백 건이 넘는 의전 행사를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군과 보훈 행사였다.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예우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애국이라는 가치를 앞세우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손석희가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언급을 했다. 어떤 대통령은 공이 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과가 큰 사람도 있지만 그런 모든 대통령과 국민들이 이룩한 총체적인 합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공과 과가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 기여한 사람들이라는 것,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품 안에서 배제될 사람은 없다는 말로 들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사람이 좋아한다는 도종환의 <멀리 가는 물>은 다시 읽어볼 만하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사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맑은 물'이 있고 '썩은 물' '더러운 물'이 있다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이 시의 저변에 있긴 하지만 결국 강물은 함께 섞여 흐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담겨 있다.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있다는 생각보다 다양한 가치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결국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검찰 개혁 법안 처리와 관련해 한동훈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의를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정의를 독점하려 한다는 비판을 숱하게 들어왔는데 이제 그 말을 이 사람이 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 말을 하는데 5초나 망설였다.

손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7. 잊혀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지만 조용한 은퇴자의 삶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뿌려 놓은 정치적 은원(恩怨)의 씨들이 너무 많다. 모든 인연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기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잘라낼 수도, 뿌리를 뽑아 버릴 수도 없다. 은퇴한 자신을 찾아오는 지지자들에게 집 밖으로 나와 손 흔들어 인사하는 일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지만 그럴 자유가 이 사람에게 주어질지는 의문이다. 이 사람에 대한 지지율이 40%를 넘는다. 퇴임을 앞둔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런 지지율을 보인 적이 없다. 심지어 신임 대통령보다 이 사람 지지율이 더 높은 여론조사도 있다. 높은 지지율과 강고한 지지층은 정치적 자산이지만 굴레이기도 하다. 찾는 사람도 많을 테고 도움을 청하고 한 말씀을 부탁 받는 일도 넘쳐날 것이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람이 국내 정치로 다시 불려 나오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 우리 사회에 불행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상과 퇴임 직전까지 친서를 교환할 정도의 개인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고 남북관계에서 전인미답의 경지까지 갔던 경험을 살리는 일로 불려 나온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 뽑힌 실향민의 아들이었고 의로운 일을 하다 제적된 대학생이었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생활의 규모를 키우지 않으며 살았던" 변호사였다. 이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친구 덕에 공직에 들어섰고 그 친구의 타계를 계기로 정치를 시작했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2011년 <운명>을 내고 북 콘서트를 할 때 우리 나이 예순이었다. 누구 못지 않게 세상의 간난신고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었는데 그 얼굴이 맑았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고 그 좋던 얼굴이 상했다. 단순히 나이 들어 상한 얼굴이 아니다. 이지러지고 바스러지고 곳곳이 상처투성이처럼 보인다. 길게 보면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가져다 준 상처일 테고 짧게 보면 대선 패배의 흔적일 것이다. 두 발로 온전히 서있기 힘들 만큼 지친 얼굴이다. 퇴임 후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우선 열심히 하고 고생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고맙겠고요. 욕심을 부리자면 우리가 많은 위기를 겪었는데 그게 우리 국민이 원했던 것은 아니고 다 주어진 위기였는데 그런 위기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오히려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것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면 최고의 영광이겠습니다."

부동산 정책은 유례를 찾기 힘든 정책 참사였고 코로나19 방역은 초반의 인상적인 선방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심혈을 쏟은 한반도 평화 이슈는 역사에 남을 극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극적인 성과는 없었다.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주도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거듭 실감했을 뿐이다. 이 사람 정부의 실정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선도 국가 도약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연민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선의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려 했고 그에 대한 보답 역시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경남 양산 사저로 돌아가도 앞으로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소환되고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사람이다. 신영복의 말을 빌어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자기가 바라는 대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의 엄중함을 아는 사람인데 앞으로 그의 삶이 편안하다면 이 사회가 편안하다는 뜻일 게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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