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끝까지판다] "다시 안 들어간다" 진술 바꾼 염전 노동자들, 왜? (풀영상)

<앵커>

전남에 있는 염전에서 여전히 노동 착취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저희 끝까지판다팀이 전해드린 적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저희가 취재 갔을 때는 피해 사실을 부인하던 염전 노동자들이 최근 진술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그걸 숨겼던 사람들이 뒤늦게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가 뭘지, 먼저 원종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원종진 기자>

지난 1월, 소금 생산을 쉬는 시기지만, 지저분한 화장실이 딸린 염전 노동자 숙소에는 박영근 씨 동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취재진에게는 피해 사실을 부인하기 급급했습니다.

[피해 염전 노동자 동료 (지난 1월) : 아닙니다. (월급은) 매달 나옵니다. 억울한 거 없으니까 빨리 가시라고.]

전남도경이 추가 조사를 위해 섬 밖으로 데리고 나온 이들 중 2명을 최근 다시 만났습니다.

진술이 달라졌습니다.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이게 뭐 일을 못 한다고 어쩌고 하고. 소금삽 그런 걸로도 때리고, 주먹으로도 때리고. 불안을 갖고 항상 일을 해요. 또 언제 때릴지 모르니까.]

본인 통장은 염전 주인이 관리했고 10년 정도 일했지만,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10년을 일했는데 통장에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요?) 예.]

지난해 11월 증도 파출소에서 이뤄진 첫 조사에서는 왜 피해 사실을 부인했던 걸까.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내가 얘기해봤자 어차피 사장님이나 누구나 또 알게 되면… 저는 이제 그게 또 겁나죠. 아무리 내가 얘기해도 그러겠죠. '주인한테 직접 한 번 이야기를 해 봐라']

염전 주인과 사실상 공동생활을 하고 오랜 기간 좁은 지역 공동체에만 머물다 보니 항상 감시당하는 불안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같이 방 자는 사람도 몇 명 있고 그러니까 가려고 해도 못 나가지. 두려움에.]

염전 주인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심리적 예속 상태에서 회유와 압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동 학대 피해자들이 간혹 드러내는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을 이 노동자들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염전주 가족 : 너희들 진술서 잘 써야 돼. 말 잘해야 돼. 있는 대로.]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염주가) '너 가면 조사 똑바로 받아라. 네가 조사 잘못 받으면 너도 구속될 수가 있다.'(라고 했어요.)]

염전 주인으로부터 확실히 분리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조사로 밝혀내지 못한 착취 피해가 더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추가 구출된 염전 노동자 : 증도대교 딱 건너자마자 그 생각을 했어요. '아, 이 때다, 이 때다.' '(전남)경찰청한테 가서 그 사실대로 가서 얘기를 해주고 더 이상은 염전은 두 번 안 들어간다.']

전남도경은 탈출 의사를 밝힌 이들의 장애인 등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희철/전남경찰청 피해자보호계장 : 나오신 분들이 다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생계비, 주거지원 등을 다른 기관과 연계해 끝까지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노동 착취 피해자가 더 있는 건 아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위원양, VJ : 김준호)

---

 
<앵커>

모든 곳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염전에서 이런 노동 착취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을 말합니다. 주변에서 방치 된 채 격리와 감시 속에 일하는 환경인 데다가 복지 체계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가운데 저희는 복지 체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 봤습니다.

염전을 힘들게 빠져나와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보니까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는 실태를 정반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정반석 기자>

박영근 씨 폭로 이후 염전 주인이 구속되자 지난해 말 염전을 뛰쳐나온 A 씨.

임시 거처를 전전하다 결국 인력소개소를 찾아왔습니다.

[인력소개업자 가족 : 먹고 자고 할 데가 없다고 나한테 그 얘기를 하더만.]

A 씨가 아는 삶,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달리 없었습니다.

[인력소개업자 가족 : 염전을 넣어달라고 하더만. 나한테 염전 일을 시켜달라고.]

A 씨는 인력소개업자가 운영하는 여관에 머물렀고,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 여관에 재워주거나 의복 등을 사주는 것을 빌미로 각서를 쓰도록 요구 받았다고 진술하고 계시고요.]

소개업자는 새 염전을 물색해 줬습니다.

[인력소개업자 가족 : 염전 사장님이 얘 앞으로 통장에다 100만 원을 (선불금으로) 줬는가 보더라고 얘가 돈이 없다고 하니까, 일을 시킬 애니까.]

갈 곳 없는 장애 노동자들을 염전 노동에 옭아매는 전형적인 경로를 다시 밟은 겁니다.

장애인 단체로부터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A 씨의 염전 재취업을 가까스로 막았습니다.

또 인력소개업자 등의 장애인 약취 유인 여부에 대해 수사 중입니다.

A 씨 사례는 염전 노동 착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염전을 빠져나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줄 복지 전달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전라남도에는 염전의 장애인 노동자들을 수용할 쉼터는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옛 전남 피해장애인 쉼터 직원 : 12월 말에 쉼터 계약이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

오는 5월에나 새로운 장애인 쉼터가 문을 여는데, 장애인 등록이 안 된 염전 노동자는 받을 수 없다는 게 전라남도의 입장입니다.

[서연수/전라남도 장애인시설팀장 : 장애인 등록하기 이전에 이런 지원을 해서 등록을 하고 하는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잘못된 행정입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 : 미등록 장애인이더라도 입소 가능하다고 회신을 했습니다.]

[김강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 : 염전 피해자들 중에는 장애가 있는데도 스스로 등록을 하기 어렵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등록하지 못한 미등록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이미 장애가 있다고 조사가 됐는데도 전남도에서 쉼터 입소를 거부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장애인 복지 전달체계의 개선이 없는 한, 피해 사실조차 진술하지 못하고, 탈출했다가도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끊기 어렵습니다.

(영상편집 : 윤태호, VJ : 김준호)

---

<앵커>

그런데 이 문제를 최근 미국 대사관에서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정반석 기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Q. 미 대사관도 염전 사건 조사?

[정반석 기자 : 네, 주한미국 대사관 관계자가 지난달 목포에 직접 내려가서 전라남도 수사기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과 이번 사건의 관련성, 수사 상황, 관련 기관의 시각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했다고 합니다. 미 대사관은 조사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미 국무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국무부가 매년 6월 발표하는 인신매매보고서와 같은 공식 문서에 언급될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공식 질의를 했는데요. 미 대사관은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국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 부분이라며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 근절을 위해 한국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이렇게 답변해 왔습니다.]

Q. 인신매매 여부가 문제 되는 이유는?

[정반석 기자 : 2015년 우리나라도 비준한 UN인신매매 의정서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의 취약성을 이용하거나 선불금을 주는 방식으로 예속시키는 것도 인신매매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문제는 국제적 개념의 인신매매, 이 개념에 해당한다고 해도 현행법으로 형사 처벌이 어렵다는 점인데요. 지난해 만들어진 우리 인신매매방지법에는 가해자 처벌 조항이 빠졌다는 그런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판단력이 취약한 사람들을 유인하여서 염전으로 보내는 소개업자라거나 임금을 착취하는 염전업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기업이나 지자체가 모두 사실상의 인신매매 카르텔은 아닌지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지점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