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성범죄자, 합의했다고 감형…'처벌 불원'이 대체 뭐길래?

<앵커>

성범죄와 관련한 재판에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에 그치는 약한 처벌만 내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점을 들어 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합의'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더 나은 법원 판결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인지, 박하정 기자가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기자>

한 대형 매장에서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도, 집 앞에서 만취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도, 최근 모두 집행유예가 나오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성범죄 선고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실제 사건을 분석해봤습니다.

재작년 한 남성이 모텔로 들어가는 한 여성을 뒤쫓아가 잠든 여성을 유사강간하고 신체 일부를 촬영까지 했습니다.

재판 결과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A 씨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범죄에 적용되는 양형 기준을 볼까요.

A 씨가 저지른 범죄는 제2유형으로 기본 '5년 이상 8년 이하 징역'입니다.

그런데 '처벌 불원', 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을 줄여주게 돼 있습니다.

'3년 이상 5년 6개월 이하'로 형이 깎였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 재판부는 여기서 하한선인 '3년'을 고르는데요.

역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고려해서 5년 동안 이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집행유예 5년도 덧붙였습니다.

2016년부터 4년 동안 선고가 내려진 성범죄 중 집행유예가 1만 1천300여 명인데, 합의를 했다는 이유, 즉 처벌 불원이 적용된 경우가 절반을 넘습니다.

하지만 1년에 200건 이상 피해자를 도와온 국선변호사는 이런 합의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신진희/대한법률구조공단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 '정말 선의로 자발적으로 그런 진정한 의사가 담겨 있는 처벌불원서를 (피해자가) 썼다'라고 제가 평가할 만한 그런 사건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처벌 이후 보복이 걱정되거나 아니면 피해 치료, 생계 유지 때문에 경제적 합의가 필요해서 합의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형을 줄여보려는 가해자 합의 요구에 시달리는 일도 있습니다.

[장다혜/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처벌 불원이) 과중한 감경 요소의 역할을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합의 종용의 문제까지 가게 되는 거예요.]

아예 감형 요소에서 합의를 빼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다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신진희/대한법률구조공단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럼 민사 소송밖에는 길이 없는 것이죠. 그 절차가 또 몇 달 가겠죠. 근데 더 중요한 것은 민사 소송을 하면 피해자가 원고로서 가해자에게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다 알려줘야 돼요. 그래서 합의를 하게 되는 겁니다.]

법원이 계속 처벌 기준을 보완하고는 있다지만, 피해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는 것이, 왜 가해자의 처벌을 덜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해야 하는지, 좀 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 영상편집 : 이기은, 디자인 : 성재은 · 전해리)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