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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끝까지『거북이 수영클럽』- 이서현 [북적북적]

느려도 끝까지『거북이 수영클럽』- 이서현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13 : 느려도 끝까지『거북이 수영클럽』- 이서현

호주에 조지 코로네스(1918~2020)라는 할아버지 수영선수가 있었다. 올해(2020년) 102세로 세상을 떠나신 조지 할아버지는 수영 유망주였다. 할아버지는 2018년 열린 호주 퀸즐랜드 수영 대회에서 95~99세 그룹의 유일한 출전자로 자유형 50미터 신기록을 세웠다.
-『거북이 수영클럽』中

2021년 10월 24일 북적북적의 책은 『거북이 수영클럽(이서현 지음, 자그마치 북스 펴냄)』입니다. 부제는 '느려도 끝까지'. 책을 읽고 궁금해서 조지 코로네스라는 할아버지에 대해 찾아봤더니, 당시 이 분이 만 99세로 참가한 자유형 50미터 세계 기록은 56초 12였어요. 이전 기록은 2014년에 영국 선수가 세운 1분 31초 19였다고 하니, 기록을 굉장히 단축했죠. 조지 할아버지는 이후 열린 자유형 100미터에서도 세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유튜브에서 당시 할아버지의 경기 모습을 볼 수 있더라고요. 걸을 때는 저러다 넘어지시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물 속으로 점프를 하면서부터는 99세라고 상상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조지 할아버지는 어릴 때 수영을 잘 했지만 20대 이후로는 수영을 하지 않다가, 80이 되어서야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고 해요. 2018년 당시 대회 때 했던 인터뷰에서 '이게 나를 살아 있게 한다'고 말하던 할아버지의 빛나는 눈동자와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거북이 수영클럽』의 저자 이서현님도 자신을 3년차 수영인, '수영 유망주'라고 말합니다. 원래는 요가를 좋아했었대요. 5년동안 요가를 했는데, 출산하고 백일쯤 지난 어느 날 '후굴자세' 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고 병원에 갔더니 이 허리에 요가는 무리이니 수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합니다. 그렇게 '요가가 떠나고 수영이 찾아왔다'고 해요.

수영 새벽반에 등록해서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한창 수영에 재미를 붙여 가고 있었는데, 또 시련이 찾아와요. 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수술하러 입원하는 그 전날까지도 수영을 하러 갑니다. 이서현 님은 이렇게 썼어요. '암이든 뭐든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것에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나는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것, 나와 내 일상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요. 수술을 마치고, 저자는 다시 수영장에서 기운을 찾습니다. 수영에서도 삶에서도 쓸데 없이 힘을 줄 필요 없다는 걸 알아갑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참 힘을 뺄 줄을 몰랐다. 아니 사실 모든 순간마다 쓸데없는 힘을 들이고 살았다. …(중략)… 나는 단 한 번의 킥도 허투루 찬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다리에서 힘을 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않고 여전히 어정쩡하게 제자리에 둥둥 떠 있나 보다.
『거북이 수영클럽』中

이 책에는 작가의 표현처럼 '인생의 풍랑' 속에서 수영을 통해 삶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일단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 참 재미있어요. 우아한 평영, 천천히 오래 하는 자유형, '살려주세요' 하는 포즈 같아서 구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접영, 가뿐한 플립턴으로 가는 과정, 수영을 배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이 많아요. 수영이란 직접 하는 것도 좋지만, 동영상을 보는 것도 좋고, 글로 읽는 것도 참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보고 느낀 부분이 잔잔하게 감동을 주고요.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에서, 수영에 대해 글을 쓰겠다 했을 때 다른 무엇도 아닌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어요. 어깨 아프고 허리 아프고, 이제 곳곳이 편찮으신 어머니는 3년째 새벽반 1번을 지키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엄마가 나보다 잘하는 게 있어서 좋다'고 썼습니다. '나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고요. 앞으로도 계속 엄마가 자신보다 수영을 잘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수영장 할머니들 얘기도 많습니다. 젊어서는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한할머니들이 이제 다들 어딘가 수술한 흉터를 하나 둘씩 갖고, 안 아픈 곳 없는 나이가 돼서야 수영장에서 서로 격려해주면서 칠순 넘어 새로 뭔가를 배우는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수영하게 해주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할머니들 뿐 아니라, 저자가 수영장에서 응원의 시선으로 지켜본 사람들 이야기가 독자는 내 얘기 같기도 내 친구 얘기 같기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에게 왜 수영을 하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처음부터 배울 수 있어서'라고 답하겠다.
..(중략).. 직장에서는 뭐든 능숙한 척, 익숙한 척 연기해야 한다고 배웠다. 사회 초년병 때 누군가 나에게 그런 조언을 했다. 직장생활의 팔 할은 '기세'라고.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중략)..
물은 속 깊은 동료와 같아서 '척'하는 잔재주를 이내 알아챘다. 오히려 겸허한 마음으로 걸음마부터 배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빨리 곁을 내줬다.
나에게 왜 수영을 하냐고 또 다시 이유를 묻는다면 '물이 지탱해 주기 때문에'라고 답하겠다.
사람들이 수영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곳에 물이 있어서다. 접영 할 때 만세를 부르든 말든, 봉산탈춤 추듯 배영을 하든 말든 물은 나만 겸손하다면 내 우스운 실력은 눈감아 주며 오롯이 나를 떠받쳐 준다.
-『거북이 수영클럽』中

이 책은 수영과 관련된 책이지만 수영 얘기만 하는 책은 또 아니기 때문에, 수영을 할 줄 알아도 몰라도,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로 수영장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영장에서만큼은 나이를 잊었던 어머님들과 수영 밖에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는 아픈 벗들과 이제 막 재미를 알아가던 초급반과 이제 수영 좀 배워볼까 벼르고 있던 분들, 아무튼 세상의 모든 수영을 사랑하는 분들, 우리 마음 편히 수영장 다시 갈 그날을 '거북이 수영클럽'을 읽으며 기다려 봐요.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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