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사실은]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의 전말

[사실은]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의 전말
지난주 통계청에서 2020년 사망 원인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자살이 줄고 있는 추세 속에서 10대~30대의 자살률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청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사망한 10대 가운데 41.1%, 20대의 54.4%, 30대 39.4%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안타까운 결과에 언론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원래는 왜 이렇게 청년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지, 코로나와 관련성이 있는지, 청년 우울증 통계도 모으고 분석하며 팩트체크 기사를 준비했었습니다. 취업난, 주거 문제 등 기사에 지렛대 삼을 소재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전 인상 깊게 읽었던 판결문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2년 전, 울산에서 발생한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의 판결문이었습니다. 청년 자살 관련 팩트체크 기사를 준비했던 이유가 청년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공익적인 이유였다면, 딱딱한 통계를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것보다는 당시 판결문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팩트체크보다 삶에서 벗어나려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로 갈음하겠습니다. 자살과 관련된 내용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가족, 돈


90년대생 김철수 (가명) 씨는 1남 1녀 중 첫째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선수가 꿈이었습니다. 밝고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철수 씨의 생활기록부에는 "행동이 민첩하고 친구들과 사이가 좋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행실이 바르다"고 쓰여 있습니다.

철수 씨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사이가 좋았지만 아버지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외도가 잦았고,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할머니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운동도 그만뒀습니다.

사춘기가 된 철수 씨는 아버지와 사이가 더욱 멀어졌습니다. 결석도 잦았고 가출도 몇 번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가정환경으로 학습 의욕이 없고 기초 학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적혀있습니다.

철수 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합니다. "너 같은 XX가 고등학교 나와서 뭐할래"라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여동생이 눈에 밟혔지만, 결국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아버지와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관련 이미지

그래도 철수 씨는 열심히 살아보기 위해 애썼습니다. 오토바이 면허를 따 음식 배달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대학에 가려고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도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대학 갈 형편은 안됐습니다. 궁핍한 환경은 철수 씨의 미래를 옭아맸습니다.

아버지와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철수 씨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은 여전히 소중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철수 씨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십수 년 가까이 병을 앓으면서도 공장을 전전하며 철수 씨의 고시원 비용을 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 때문에 제대로 몸 관리를 못한 게 컸습니다.

철수 씨는 그 충격과 슬픔에 몇 달 동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우울감으로 일까지 관뒀습니다. 하루에 1~2시간밖에 잘 수 없었습니다. 줄담배만 피우며 하루를 버텼습니다.

결국, 철수 씨는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신의 SNS에 죽음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죽음의 문턱


2명의 다른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철수 씨는 이들과 SNS로 대화를 나누며 죽음의 동행을 준비했습니다. SNS 대화 내용은 판결문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관련 이미지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피고인들이, 전혀 일면식조차 없던 상태임에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눈 마지막 대화가 자살에 대한 것이고, 사심 없는 순수한 생의 마지막 호의가 죽음의 동행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죽기로 마음먹었을 때에야 비로소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서글프기 그지없다. 인터넷이 이제 사물에까지 연결되고, 소셜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이 시대에서 고립감을 견딜 수 없어 자살에 이르렀다는 이 사실은 너무나 역설적이고 가슴 아프다.
-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 판결문 中에서

그렇게 만난 그들은 함께 울산의 한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는지 죽음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정신을 잃었고, 두려움을 느꼈던 다른 한 명이 119에 신고하면서 상황은 끝났습니다. 철수 씨는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주동자였던 철수 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보호관찰관은 철수 씨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이지만, 자존감이 낮아 자기비하에 시달리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성격 평가서에는 "법과 사회 질서에 순응하고 살아왔으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어떤 때는 입고 다닐 옷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궁핍하여 부모가 조금만 도와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차분하게 진술했고 눈물을 자주 보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왜 주변에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철수 씨는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관련 이미지
피고인의 믿음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철저히 타자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하고 축소시킨 다음,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밀봉해온 사회다. 설령 한 개인이 열등하고 못나서 그와 같은 처지에 빠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를 잘라내고 도태시켜서는 안 된다. 개인의 능력 때문이든, 환경 탓이든, 그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못 본 척 할 순 없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생존 방식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가 그곳으로 빨려 들지 않으리라는 장담 역시 할 수 없다.
-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 판결문 中에서

삶의 의지

구속된 이후에서야 철수 씨는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회와 단절돼 홀로 고통받았던 철수 씨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주변의 지지를 느꼈습니다.

철수 씨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여동생은 오빠의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빠를 보살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재판부에 탄원서도 냈습니다.

관련 이미지

동료 수감자들은 젊은 나이에 죽음을 선택하려 한 청년에게 깊은 공감을 나타내줬습니다. 철수 씨의 사연을 귀담아 들었고, 정서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한 수감자는 철수 씨를 선처해달라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관련 이미지

그렇게 철수 씨는 삶의 의욕을 되찾았습니다. 출소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재판부에 약속했고, 어떻게 살지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판사에게 약속했습니다.

관련 이미지

그렇게 최종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관련 이미지

죄가 가볍지는 않지만,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이 참작됐습니다.

하지만 인생 선배의 또 따른 판결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판사는 따로 준비해온 종이를 꺼낸 뒤 담담이 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 형의 선고로 모두 끝났지만, 이후 이야기는 직접 써 내려가야 합니다. 그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하며, 설령 앞으로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절대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겁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됐고, 듣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 판결 당시 판사의 발언

판사는 여동생을 찾아갈 차비가 넉넉지 않았던 철수 씨에게 "밥 든든히 먹고, 어린 조카 선물이라도 사라"며 20만 원을 건넸습니다. 철수 씨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우리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철수 씨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판결문 몇 장으로 철수 씨의 인생을 모두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해결되지 못한 슬픔들이 고여 있습니다. 우리가 그 슬픔을 외면하고 혹은 알아채지 못한 사이,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은 독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정치는 슬픔이 덜 고이도록 제도를 만들어야겠지만, 우리의 공감과 지지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타인의 잔혹함 때문에 받았던 상처는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지지를 통해 치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 공동체에 남겨진 인간적인 숙제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불가해 한 것이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 울산 청년 자살 방조 미수사건 판결문 中에서



(인턴 : 송해연, 권민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