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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트] 아프간 철수를 대성공으로 분칠한 바이든…단기악재로 끝낼 수 있을까

"미국을 위한 최고의 선택"…아프간 철수 논란 정면 돌파 선택한 바이든

미국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카불 공항 항공 철수 작전은 보름 넘게 미국 언론의 톱뉴스였습니다. C-17 수송기에 태워달라며 아프간인들이 매달려가다 결국 떨어져 숨지는 참혹한 장면은 베트남전 패전을 연상시키며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철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IS-K의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아프간 철수는 그 장면 자체가 바이든 대통령 임기를 규정짓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될 거라는데 미국 내 이견이 없습니다.

철수 작전이 종료된 다음날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시작부터 매우 강한 어조여서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미군 사망 직후 했던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군인들을 애도하면서 울먹이고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 당시 폭스 뉴스 등에서는 바이든을 작전에서 실패한 '약한 대통령'이라며 조롱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까지 들었던 연설 가운데 가장 강한 어조로 이번 사태를 정면 돌파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 연설에서 제일 마지막 문장이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I give you my word: With all of my heart, I believe this is the right decision, a wise decision, and the best decision for America."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결정이 미국을 위한 최선이며 현명한 결정이라고 본인은 철석같이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카불 공항 철수 작전은 대단한 성공(extraordinary success)으로 규정했는데, 12만 명 이상을 항공기로 구해낼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미군 사망자와 부상자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번 연설은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비판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기도 했습니다. 철수 작전을 진작 서둘러서 6월, 7월부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내전 중간에 사람을 빼오는 일을 하면 공항에 사람이 몰리고 혼란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위험도를 낮추고, 비용을 덜 들이는 방식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지 않았냐는 비판에는 그런 전쟁은 없다고도 일축했습니다. 군인들이 생명을 바쳐야 하고, 하루에 3억 달러씩 돈을 퍼부었던 전쟁을 이제는 끝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 피터 베이커 같은 경험 많은 백악관 출입 기자도 진작부터 바이든에겐 확전, 종전 말고 중간 지대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단호함을 강조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된 단어와 문장으로 연설문은 짜여 있었지만, 사실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자신의 결정에 오류가 없다는 강한 독선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준비 부족과 정보 실패에 대해서 미국 내에서도 수많은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당신들 말대로 해도 이 정도 혼란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버린 셈입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30만 아프간 군대의 느닷없는 항복에 대해서 "잘 싸울지 알았는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하고 대충 넘어갔습니다. 판단 착오와 의사 결정 과정의 오류를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미군들이 사망하고, 아직 아프가니스탄 안에 미국인 100~200명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공화당에서는 이번 철수를 대실패로 규정하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 본인은 이런 비판에도 대성공이라고 분칠해버린 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철수 작전은 대성공이었기 때문에 사실 책임질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이든 말대로 아프간 철수가 성공이라고 한다면 미국 내부가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여야 하지만, 죽을 고생을 하고 기적적으로 돌아온 군인들까지 동료들의 덧없는 희생 앞에 망연자실한 상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방역에 처참하게 실패하고도 내 덕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자화자찬했던 것이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백악관 앞에서 아프간계 미국인들의 시위가 종종 열리는데, 이곳에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장 큰 문제는 바이든의 배신"이라고 거칠게 공격하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었다며, 미국이 시작했으니 미국이 끝을 내야 하는데 이렇게 철수를 하면서 아프간만 피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김수형 취파용

아프간에 남겨진 미국인들이 변수

외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성공이냐 실패냐 단정 짓기 쉽지 않습니다. 혼란과 실수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사태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적인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은 여론의 절대 다수가 찬성했던(철수 과정의 혼란으로 이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악화된 상태이기는 합니다) 아프간 전쟁을 끝내는 옳은 결정을 했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하면서 국익이 없고 골치만 아픈 아프간 문제를 손절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아프간 내부에서 탈레반과 IS-K가 치고받고 싸우면서 테러가 일어나든, 대혼란으로 경제가 붕괴되든 일단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신경 쓸 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혼란 상태가 벌어진다면 '거봐, 우리 나오기 잘했지?'라는 여론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미군이 다 빠지고 난 뒤에 미국 언론들의 관심도 서서히 사그라지는 상황이어서 미국 국내 이슈에 집중하며, 아프간에서 절약한 예산으로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한다는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를 펼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아프간에 남겨진 미국인 100-200명은 두고두고 미국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국무부가 발표한 이 숫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기도 한데, 미국 영주권자와 특별 비자를 받은 사람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아프간에 발이 묶여 있는 건 분명합니다. 미국 언론에는 카불 공항에서 탈출하지 못한 아프간계 미국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인터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상황입니다. 카불 공항에서 언제 비행기가 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가지고 협상을 벌여 인질 빼오듯 빼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간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빠지면서 카불 시내 은행에서 돈도 못 뽑고 길게 줄을 서 있는 장면도 나오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사람들도 극도로 조심하는 상황입니다. 소개로 알게 된 아프간인들과 메신저 등으로 연락을 해봤지만, 이들은 카불 상황이 대단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이어서 신변의 위협 때문에 말을 하기가 너무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바이든이 사지에 자국민을 버리고 나온 최악의 대통령이 될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윤곽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탈레반과 협상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 정부는 도하에 있는 탈레반 대표부와 연락하며 후속 조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레반의 협조를 순순히 얻어내며 원하는 미국인이 출국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면 바이든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격이 되는 미국의 조력자까지 출국할 수 있다면 바이든 정부에게 최상의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셈입니다. 아직까지 모두 낙관적인 가정과 전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협상 결과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결과가 좋다면 내년 말 중간 선거에는 아프간 문제가 변수가 되지 않겠지만, 혹여나 탈레반이나 IS-K에 핍박받는 미국인이 나오고 이게 언론에 대서특필된다면, 바이든 정부의 악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미국과 좋은 관계 맺고 싶다"…예전과 다르다는 걸 강조하는 탈레반

이번 카불 탈출 작전을 할 때 탈레반의 협조는 여러가지로 의외였습니다. 철수 중에 공격하지 않는다는 게 트럼프가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의 핵심이기는 했지만, 카불 공항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로 탈레반이 미국인들을 직접 안내해주기도 했다는 CNN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은 20년 전 공포, 철권 정치를 하던 예전 탈레반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히잡만 쓴다면 여성도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고, 대사면령을 통해 통합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의사까지 발표한 상태입니다. 이제 경제 개발을 위해 모두가 소매를 걷어 올려야 한다는 새마을운동 시대의 표어 같은 말을 대변인이 하고 있습니다. 어제 카불에서 열린 정식 기자회견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대변인이 누차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조력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탈레반이 수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도 있고, 여전히 야만적인 폭력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런 보도는 모두 근거가 없는 거라고 일축했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탈레반의 공식 지시가 아니라며, 이런 일을 당하면 신고할 수 있도록 콜센터까지 만들었다고 외신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과연 이 콜센터에 누가 신고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전 메시지에 불과하더라도 탈레반이 일단 이렇게 나오는 건 과거 폭압 정치로는 국가 운영이 어렵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90억 달러에 달한다는 해외 자금부터 미국 정부가 풀어주지 않으면 탈레반은 정부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IS-K와 경쟁하는 구도에서 국정 장악을 하려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정부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과거와 달라진 탈레반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인권 탄압 행태가 워낙 심각해 새 사람이 됐다고 주장하는 걸 선뜻 믿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탈레반이 일단 미국과 협상할 자세를 갖기는 했지만, 미국이 탈레반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지 정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국인을 빼내기 위해서 탈레반의 협조가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유력 공화당 정치인인 니키 헤일리 전 UN대사는 기고와 방송 출연을 통해 바이든 정부가 탈레반같이 야만적인 정권을 정부로 인정하려고 한다며 선제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입니다. 아프간의 실질적인 통치 정부로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탈레반과 미국인들을 빼내 정치적 충격 최소화를 원하는 바이든 정부가 어떤 협상을 할지가 앞으로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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