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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오늘은 뭐먹지? - 핀란드식 계란 샌드위치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좋은 음식은 자주 먹어야 한다. 그러나 더 자주 먹어야 하는 음식은 간단한 음식이다 (Good food is very often, even most often simple food.)"

- 앤서니 보데인 (Anthony Bourdain) -

요즘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미니멀리즘적 멋만으로도 패셔니스타가 탄생하듯, 조리한 듯 안 한 듯한 '쿡안쿡' 음식도 맛있고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계란 버터' (핀란드어로는 munavoi 무나보이)는 아마도 핀란드에서 가장 간단한 음식이 아닐까.

내가 계란 버터를 처음 맛본 곳은 핀란드가 아닌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의 한 숙소였다. 같이 머물던 핀란드인이 다른 투숙객들을 위해 핀란드 전통음식을 만들어준다며 떵떵- 큰 소리를 치며 내놓은 음식이 바로 달랑 계란 버터와 빵이었다. 처음에는 조리 과정이 요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해 놀랐고(포크로 삶은 계란을 버터와 함께 으깬 후, 소금으로 간만 하면 완성) '대체 무슨 맛일까' 속으로 의심하며 혀를 갖다 대는 순간,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또 한 번 놀랐다. 계란 버터와 내 침샘의 역사적 조우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처럼 내 운명의 지침을 그때 핀란드로 돌려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계란 버터

핀란드에 살게 되면서 '그 맛'이 떠올라 복기하듯 만들어 보았다. 간단한 음식이라 너무 자신했던 탓일까? 의외로 몇 번의 실패를 맛보았다. 포크로 으깨는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아 믹서에 돌린 것이 처음 패인이었다. 계란 노른자의 선명한 빛깔과 탱글탱글한 흰자의 식감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 한 번은 계란이 많이 식어 버터와 잘 섞이지 않은 적도 있고, 반대로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찬 버터를 사용해 계란과 잘 섞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사람 사이도 마음의 온도가 서로 잘 맞아야 하듯, 이 음식도 계란과 버터의 온도가 잘 맞아야 한다. 완숙으로 익은 계란은 온기가 적당히 남아 있어야 하며, 버터는 실온에 두어 표면이 말랑해진 상태가 최적이다. 마지막으로 잘게 다진 파슬리(파슬리 가루도 가능)나 실파를 섞으면 상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계란 버터가 탄생한다.

영양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계란은 오메가3를 비롯해 비타민 B, D, E, D 등을 포함하고 있는 완전식품이며, 버터도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제 등이 풍부한 좋은 식재료다. 한때는 버터가 지방 덩어리라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마가린에 기세가 눌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천연 식품을 선호하는 추세여서 버터 소비가 마가린을 앞지르고 있다. 다이어트나 성인병 등으로 버터의 높은 열량과 지방 함량을 피하고 싶다면 코티지 치즈와 반반씩 사용하거나 코티지 치즈만 사용해도 무방하다.

계란 버터는 각종 빵(흰 빵, 호밀빵, 바게트 등)에 얹어 주로 아침 식사와 간식으로 먹으면 좋다. 크래커에 얹으면 훌륭한 애피타이저나 와인 안주가 되고, 구운 감자에 얹으면 맛있는 베이크트 포테이토로도 변신한다.

핀란드에서는 보통 쌀로 만든 핀란드 전통 파이인 '카렐리야 페이스트리(핀란드어: 카르얄란피라까 karjalanpiirakka)'와 함께 먹는다. 카렐리야 페이스트리는 이름대로 핀란드 동쪽 카렐리야(Karelia) 지방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남 지방이 맛의 고장이듯, 핀란드 맛의 고장은 카렐리야 지방이다. 안타깝게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 대부분을 러시아에 빼앗겼지만, 예전에는 동과 서가 만나는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로 풍성한 물자 덕분에 다양한 식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재배되지 않던 수입 식자재도 상대적으로 얻기가 쉬웠으며, 수입 고급 식재료 중 하나였던 쌀을 이용해 파이도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카렐리야 페이스트리와 계란 버터는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궁합이지만 출신 배경(?)은 서로 극과 극이다. 버터를 얻는 과정이 힘들고 귀했던 시절, 적은 양의 버터를 오래 먹으려 궁여지책으로 삶은 계란과 섞어 먹던 서민 음식이 계란 버터였다. 스위스의 대표적 음식 퐁듀도 추운 겨울에 딱딱하게 언 빵과 먹다 남은 치즈밖에 없어 만들어졌고, 샤부샤부도 징기즈칸이 투구를 냄비 삼아 끓여 먹던 전투 식량이었다고 한다. 유명한 음식 블로거 조 맥퍼슨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음식은 굶주림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계란 버터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통일된 레시피는 없다. 계란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란을 더 넣고, 버터 맛을 더 느끼고 싶다면 버터를 더 넣어 개인의 입맛에 맞춰 만들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핀란드 엿장수 맘대로다. 여러 번 만들어보면 자신만의 황금 비율을 찾게 된다.

외국인인 내 입맛에는 일본 편의점에서 사먹었던 다마고(계란) 샌드위치처럼 마요네즈를 첨가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은데,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전통음식을 망친다고 들고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안 그래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핀란드에서 태어난 딸이 "엄마, 절대로 마요네즈는 넣으면 안 돼요!"라고 단단히 일러둔다. 마요네즈를 꺼냈다 다시 넣어둔다. 그럼, 핀란드에서는 핀란드식으로!

<레시피>
- 완숙 계란 2개~6개
- 버터 50g ~100g (코티지치즈로 대체 가능)
- 소금 약간
- 파슬리 혹은 실파 (파슬리 가루로 대체 가능)

1. 완숙으로 삶은 계란이 약간 식으면 껍질을 까서 준비한다.
2. 계란 위에 소금을 뿌리고 큰 포크로 상온에 두어 겉이 약간 말랑해진 버터와 함께 섞는다. 다 뭉개지지 않고 계란의 식감이 어느 정도 살아있도록 적당히 섞는 것이 중요하다.
3. 마지막으로 잘게 썬 파슬리 혹은 실파로 장식한다.

P.S. 완벽한 완숙 계란 삶기:
완벽한 완숙 계란은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롭다. 먼저 계란을 찬물에 넣고 계란이 잠길 만큼 물을 붓는다. 거기에 약간의 식초와 소금을 넣은 후, 뚜껑을 덮지 않고 센 불에서 끓인다.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냄비에 뚜껑을 덮은 후 10~12분 그대로 둔다. 그 후 계란을 꺼내 얼음을 넣은 찬물에 넣고 5분 기다린 후 껍질을 까면 완벽한 완숙 계란을 얻을 수 있다.
 

인잇 이보영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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