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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우즈 사고 차, '안전도 톱' 발표에 쏟아진 비난 왜?

한국 차에 대한 한국인의 채권자 의식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제네시스 GV80 충돌 테스트 결과

차량 안전도를 확인하는 충돌 시험장 안. 최근 출시된 대형 SUV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다 운전석 쪽 차체를 강철 구조물에 강하게 부딪친다. 범퍼와 엔진룸이 순식간에 박살 나지만, 운전석을 포함한 차량 내부 공간에서는 에어백이 터지며 운전자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라 불리는 이 안전도 검사는 자동차 구조상 취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것으로 가장 가혹한 테스트로 불린다. 어쨌든 이 차량은 이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op Safety Pick Plus)'라는 최고 안전 등급을 받았다.

주인공은 국산 제네시스 GV80이다. 지난 달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미국 LA 부근에서 몰고 가다 큰 사고를 냈던 문제의 차량이다. 사고 직후 차의 안전장치가 잘 작동해 우즈의 목숨을 살렸다는 현지 경찰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차량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했지만 현대차 입장에선 전화위복이 됐다. 미국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다시피 했던 제네시스란 브랜드가 '타이거 우즈를 살린 차'라는 스토리로 일약 관심을 끌며 판매도 급증했다.

사고 당시 타이거 우즈 차량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국내 네티즌 반응은 싸늘했다. 대표적인 반응들이 "다른 차를 탔으면 다리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타던 독일차를 몰았으면 사고 자체가 안 났을 거다", "내수용 차는 박살이 났을 건데, 수출용 차라 우즈를 살렸다"는 등의 내용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미국 경찰이 블랙박스를 분석 중이라니, 우즈의 운전 잘못이든 아니면 차량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든 조만간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상당수 소비자들이 칭찬하는 한국 차에 대해 정작 상당수 한국인들이 폄하와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국내 자동차 업체에 대한 한국인의 채권자 의식

요즘은 어려운 일이 됐지만,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산 자동차가 눈에 띄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좋은 자동차는 제조사 국민들의 자랑인 동시에 국가를 알리는 움직이는 광고판이기도 하다.

그런 자동차가 왜 상당수 한국인들의 비난 대상이 됐을까. 어떤 이는 이런 비판이 착시현상이라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국산차 점유율이 지난달 기준으로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 보니 결함 건수가 많은 걸로 비칠 뿐, 판매 대수 대비 결함 비율로 보면 외국차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조사된 자료를 보면, 시기에 따라 세계 여러 브랜드가 엎치락뒤치락하기에 그런 설명이 일리 있기도 하다.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모든 불만의 근저에는 한국인들이 국내 업체에 가지는 채권자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한강의 기적'만큼이나 급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 초 외국 부품의 단순 조립에서 출발했던 한국 자동차산업은 70년대 양산 체제 구축과 함께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로 내수 판매와 수출을 동시에 공략했다.

고유 모델 개발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2번째였다. 그리고 지금은 연간 400만 대의 자동차 생산대국이 됐고 그 사이 현대기아그룹은 세계 5대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70, 80년대 고도 성장기, 자동차는 애국심 마케팅의 선봉대였다.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알리는 움직이는 광고판이었기에, 국산화율 100%라는 마케팅에 마치 주권 독립을 이룬 것처럼 국민들은 환호했고, 외국차에 비해 엉성하고 조악한 품질도 흔쾌히 감수했다.

국민들이 기꺼이 사준 덕분에 자동차 업체들은 더 탄탄한 입지로 수출 시장 개척에 나섰다. 약한 브랜드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보다 더 싸게, 더 유리한 보증기간으로 해외 시장을 파고들었다.

리콜도 국내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많은 시장이 열리고 국산차는 일본 차에 이어 싸면서 품질도 괜찮은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면서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첫 SUV 'GV80'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국민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내수와 수출을 차별화한다고?', '누구 덕분에 이렇게 큰 건데, 배은망덕이 따로 없네.' 자동차업체들로선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어쨌든 이런 서운함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커지면서 미움으로 변해간 것으로 보인다.
 

노조에 대한 불만도

사측에 대한 불만 외에 자동차 노조에 대한 불만 역시 국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수많은 인터넷 댓글에서 최근 발견되는 노조에 대한 반감을 추려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생산성은 외국의 절반인데 1억대 평균 연봉을 받으면서 해마다 파업을 벌이는 귀족노조, 특급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집단, 유튜브를 보면서 발로 차서 조립하는 생산라인 근로자, 일자리 없어질까 봐 미래차 개발을 막는 노조.

이 때문에 국산차가 결함투성이가 되고 값은 외국 최정상 브랜드만큼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게 많은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게다가 이런 인식이 모두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내수 차별' 인식의 개선과 품질 제고 노력이 필요

현대 기아로 대변되는 국산차가 우리 국민들의 진정한 자랑이 되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이런 채권자 의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해외 시장 개척이 만만한 일이 아닐 지라도, 지금의 거대 기업이 있게끔 기꺼이 국산차를 선택해 준 내국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품질 제고를 위해 조립이력제 등을 도입해 근로자의 책임 의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산품뿐만 아니라 농산물에서도 이미 채택되고 있는 생산자 이력제를 자동차라고 못할 리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자동차 근로자들이 개인의 역량 노출을 우려해 사측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 도입을 반대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는 거다.
 

맺음말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품질은 상향평준화를 거듭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들이 선발 후발 할 것 없이 성능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업체가 먼저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고, 제작라인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게 될 것이다. 이는 국내 업체들에겐 위기인 동시에 또 다른 도약의 기회이다.

기술과 효율을 위해 생사를 건 전략을 고민하는 우리 자동차업계에 국내 소비자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에도 관심을 주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도움에 의해 성장한 국내 대표 기간산업의 책무인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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