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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2)

지난해 말, 세월호 가족들의 치유공간 '이웃'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로 송별회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이웃이 이렇게 조용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쓸쓸하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또 이런 공간이 나타날 수 있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내용일지라도 기록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일,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이웃에 들렀다. 이웃의 탄생과 끝을 모두 지켜본 이영하 대표를 만나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그 기록이다.

▶ [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1)
▶ [취재파일]'이웃'이 문을 닫는다 (3)


기자 : 이웃이 문을 연 게 언제쯤이죠?

이영하 치유공간 '이웃' 대표 : 2014년 9월 9일이에요.

기자 : 당장 공간도 필요하고, 여러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후원금이 본격적으로 모이기 전이던 초기에는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이영하 대표 :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해줬어요. 준비 서류도 간단했고 정말이지 물심양면 도와주었어요. 재단에서 해줄 수 있는 선 이상으로 도움을 받은 거죠. 후원금도 있었는데, 그 돈은 모아서 이후에 운영비로 아껴 썼던 거고요.

기자 : 당시 이웃 말고 다른 단체들도 있었나요?

이영하 대표 : 그즈음에 저희와 비슷한 단체로 '쉼과 힘'이 생겼고,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이용하는 '우리 함께'라는 공간도 생겼어요. 생존 학생과 가족들의 공간인 '소금버스'라는 곳도 생겼고요. '소금버스'가 먼저 문을 닫았고, 그 다음 '우리 함께'가 문을 닫았어요. 현재는 민간기관으로 '쉼과 힘', 그리고 '쉼표'라는 곳이 남아 있어요. 남아있는 단체들도 재정적으로 무척 어렵죠. 원 단체가 있는 상태에서 세월호 사업을 병행하거나, 모 기관이 주는 일부의 지원으로 버티고 있어요. 피해자 사업만이 아니라 지역 복지사업도 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유하는 역할들도 해요.

기자 : 단체마다 역할이 중복될 때도 있지 않나요.

이영하 대표 : 처음에는 좀 우왕좌왕했죠. 자연스럽게 관련 기관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어요. 기관별로 서로 하고 있는 일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했어요. 의견 교환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었어요. 2년쯤 지나니 굳이 회의를 거치지 않아도 역할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던 것 같아요.


기자 : 이웃을 포함해서 모두 민간 주도라고 이해를 하면 될까요?

이영하 대표 : 네, 그렇게 민간단체들이 있고, 피해자 심리 치유를 위한 '온마음센터'라는 공공 기관이 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공동체 회복 사업을 하는 '희망 마을'이라는 안산시 기관도 있고요. 몇 년 후에는 416재단이 생겼죠. 그동안은 민간과 공공이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진행돼 왔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공 중심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고 생각해요.

기자 : '이웃이 필요 없어져서 문을 닫는 건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하긴 어려우실 것 같아요. 결국 재정적으로 답을 구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건가요?

이영하 대표 : 그동안 각종 공모 지원금이나 후원금으로 운영해 왔는데 쉽지 않았어요. 정부나 지자체도 이미 공공으로 재원을 쓰고 있는데, 우리가 왜 또 다른 지원을 해야 하느냐고 하죠. 이번에 최종적으로 문을 닫기까지 백방으로 알아봤어요. 공공의 위탁 기관 형태로 진행해 볼까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런 형태로 가게 되면 공공 기관이 하나 더 생기는 꼴밖에 안 되는 거예요. 공공 기관이 하지 못하는 걸 하려고 이웃이 있는 건데, 똑같은 기관이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결국 재정적 독립이 없이는 본래의 기능을 하기 어려운 거죠.


만약 재정이 안정적이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델로 갔을 거예요. 하는 일이 같더라도 다른 목표, 다른 이름을 가지고요. 세월호 유가족만을 돕는 곳이 아니라 안산 시민을 위한 치유공간으로요. 이웃은 이미 그런 형태이기도 해요. 처음 2년 정도는 100% 유가족만 돌봤어요. 그러다 점차 희생자의 친구들, 지역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지역 주민으로까지 범위가 확장돼 갔거든요. 안산에는 유가족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피해자가 있어요. 친구를 잃었거나, 친구 잃은 아이가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 친척, 동네 이웃들까지. 이런 분들이 자식 잃은 유가족 앞에서 나도 힘들었다는 말은 차마 못 하는 거죠. 유가족을 비난하는 동네 분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들어보면, 지역사회에서 그렇게 큰일이 일어나고 난 후 주민으로서 겪었던 고통은 아무도 몰라준다, 어디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억울함이 커요. 나중엔 그런 그분들의 답답해하는 감정이 유가족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주민들까지 케어하게 됐어요. 세월호 특별법에도 참사 피해자를 유가족과 생존자 정도로 규정하고 있잖아요. 공공 기관도 자원활동가나 지역주민을 위한 케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법에 묶여서 실행하지 못하거든요.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특히 정치인들도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세월호 유가족 돌봄은 이미 공공에서 하고 있으니 그걸로 대체하면 된다, 그리고 지역주민은 피해자라 볼 수 없다라고요. 유가족만이 아니라 지역주민 전반을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민간단체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했지만 설 자리는 좁아졌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이웃은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만을 위한 치유 단체인 거죠. 기관의 고정된 역할 이미지가 변경되긴 어렵다고 봐요. 공공이 해야 할 일이 앞으로 더 많을 거라고 봐요. 관련 기관 대부분이 유가족 엄마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거든요. 상대적으로 아빠들, 형제자매들은 충분히 울지 못했고 충분히 말하지 못했어요. 적은 재정으로 적은 대상만 도울 수 있는 우리 기관으로는 역부족이죠.


기자 : 문 닫는다고 하니 누가 제일 아쉬워하세요?

이영하 대표 : 누가 더 슬프고, 누가 더 아쉬워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유가족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그렇죠. 하지만 동시에 사람마다 온도 차가 커요. 이곳이 2014년 9월에 문을 열었잖아요. 많은 엄마들이 왔다 갔고, 많은 생일 모임을 하고, 이곳이 매일매일 전쟁터 같던 2014년 말에 어떤 이가 "이제 긴급 상황은 끝난 것 같아. 우리 역할은 여기까지야."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벌써 긴급 상황이 끝났다는 거지? 하지만 그 뒤에도 심심치 않게 "문 닫지 그래?", "왜 꼭 거기 일을 계속해야 돼?"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여전히 저를 붙잡고 "해볼 만큼 해본 거냐", "방법을 더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를테면 진상규명 단체라고 한다면 진상규명 끝났으니 이 단체는 해산합니다. 이게 가능하죠. 무엇을 위한 대책위라면, 이 대책위가 어떤 걸 대책이라고 내놓았으니 끝났습니다, 하면 끝나요.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의 치유가 목적인 저희 기관이 '목적을 다했습니다', '할 일을 다 했습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들이 크죠.

하지만 어느 공간이건 어느 목적을 가진 기관이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고통,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애초에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잖아요. 그분들이 눈 감는 날까지 지니고 살아야 할 고통이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이웃 같은 곳이 계속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씀하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린 그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겠죠. 결국 끝은 우리가 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 긴급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부족한 것들로 어렵게나마 마음을 모았던 6년 반의 시간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요. 쉽게 떨어지는 말은 아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되지 않을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함께 한 그 마음과 시간들이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저대로, 또 자원활동가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류란 취재파일 리사이징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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