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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20만 원짜리 위자료, 위로라고 생각하세요?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불법 행위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

위자료(慰藉料)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보통 손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건 재산상 손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갑자기 밀고 들어오는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면, 병원비와 치료받는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잃어버린 소득이 바로 재산상 손해다. 그 사고로 인해 횡단보도 건널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하는 등 정신적 고통도 일정 기간 지속되기 마련인데, 그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로와 도움을 주자고 만든 것이 바로 위자료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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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재판 재판장 판사 판결 (사진=픽사베이)

# 근거 규정은 있으나 산정 기준 관련 규정은?

현행 민법 제751조에는 '재산 이외의 손해의 배상'이라는 제목으로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에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위자료 청구의 근거를 두고 있으나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서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가 과연 적정한 것인지 논란이 있을 때가 종종 있다.

# 위자료 2천만 원, 모욕적 승소?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발생하기 5년 전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감염병인 메르스를 우리는 기억한다.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라 하루 감염자 숫자만 공개되고 있지만 메르스 국내 감염자는 186명이었기에 첫 번째 환자부터 186번째 환자까지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중 80번째 환자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였다가 다시 양성으로 확인되면서 메르스 마지막 환자로 남았고, 약 6개월 동안 격리되며 기저질환이 악화되어 결국 숨졌다.

유족들은 이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보건당국의 방역 실패로 메스르에 감염되었고, 격리 기간 동안 기저질환에 대한 치료에 집중할 수 없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기에 국가가 감염과 사망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난 2월 법원은 보건당국의 방역 실패로 80번째 환자에게까지 메르스까 전파되었기에 그 감염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사망에 대한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았고 국가가 배상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2천만 원으로 한정했다.

유족은 언론 인터뷰에서 "모욕적인 승소였다"며 울먹였다. 감염에 대한 책임만 인정되고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지만, 법원에서 인정해 준 위자료 액수 또한 유족들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법원이 선고하는 국가배상 위자료 액수가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아닌 모욕감을 주는 건 이 사건만이 아니다.

# 정부운영 우체국은행의 정신장애인 장애인차별

노인 및 정신 장애인들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여 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결정을 받고 있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도 공공후견제도를 통해 이 제도이용을 독려하고 있다.

법원의 후견 결정이 내려지면 30일 합산 100만 원 이상의 거래의 경우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거래하도록 하고, 300만 원이 넘는 거래의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30일 합산 100만 원 미만의 거래의 경우에는 이전과 동일하게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였는데, 보호도 중요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빼앗을 수 없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2018년 2월 후견 결정을 받은 18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우체국은행으로부터 비대면 거래를 금지당했다. 단 돈 1만 원을 인출하려고 하여도 은행 영업시간에 창구를 찾아가야 했고, 현금인출기(ATM), 체크카드 사용이 막혔기에 밤이나 주말에는 은행에 있는 돈을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30일 합산 100만 원 미만의 거래의 경우 단독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후견결정문을 들이밀어도 소용없었다.

결국 그들은 정부 운영 우체국은행의 장애인 차별행위를 중지해달라고 2018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에 이어 지난 5일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운영 우체국은행의 장애인차별을 인정했다. 항소심 진행 중인 지난 6월 뒤늦게나마 우체국 은행은 당사자들의 비대면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등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우체국 은행의 장애인차별로 인해 정신장애인들이 2년 4개월 동안 겪은 아픔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 장애인차별 피해 장애인의 정신적 피해보상은 얼마가 적절할까?

2018년 4월 23일 금융위원회 배포 "장애인 금융개선 과제 추진실적 및 향후계획" 12쪽.

첨부한 자료는 2018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장애인금융개선 간담회'에 논의되었다고 금융위원회가 2018. 4. 23. 배포한 보도자료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2018년 안에 추진하겠다고 장애인들에게 약속한 개선방안은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운영 우체국은행에서 2년 4개월 동안 차별을 당한 피해 장애인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보상할 위자료의 액수는 과연 얼마가 적정할까?

1심 재판부는 피해 장애인들의 위자료로 50만 원씩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50만 원에서 30만 원을 감한 20만 원을 위자료로 인정했다. 20만 원은 피해 장애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또 다른 고통을 주었을까?

# 국가배상 책임, 위자료 제도 자체가 옳은가?

피해자에게 위로는커녕 오히려 고통을 주는 위자료 판결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금전으로 위로한다는 위자료 제도 자체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국가가 자신의 잘못으로 상처를 입힌 시민들에게 위자료 몇 푼 주고 그냥 어물쩍 덮으려는 건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다.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정신적 고통을 위자료로 배상하는 제도가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볼 때다.

국가배상소송 패소확정시 판결의 내용과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일간지에 의무적으로 게재하는 제도가 시행되는 등 위자료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차별사건의 경우에 이런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금까지 장애인차별행위를 감행한 우체국은행의 책임자인 우정사업본부장이 피해 장애인들에게 사과하고 장애인들을 우체국은행에 초대해 체크카드를 직접 개설해 주면 어떨까?

개선방안으로 2018년 중 만들겠다는 장애인응대메뉴얼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금융위원장이 피해 장애인들에게 사과하고, 뒤늦게나마 장애인응대메뉴얼을 만들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

20만 원짜리 위자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피해자들을 진정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성추행·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노동자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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