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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대 평가 조건' 내건 특검…'삼전 주식 매각 계획' 연내 나올까

[취재파일] '5대 평가 조건' 내건 특검…'삼전 주식 매각 계획' 연내 나올까
지난 월요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이 다시 열렸습니다. '재판 진행이 편파적'이라며 특검이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에 대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면서 중단된 지 9개월 만입니다.

부친상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출석하지 않은 법정에서 특검과 삼성 측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오간 주제들은 '신경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꽤나 무거운 것들이었습니다.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평가와 관련해 특검 측이 5가지 평가 요소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재용 영장실질심사 출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특검 "준법감시위원회 넘어 '승계 전반' 점검하자"

이재용 부회장은 대법원에서 50억 원 넘는 뇌물 액수가 인정돼 또다시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50억 이상의 뇌물죄는 법정형이 5년 이상인데,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려면 3년 이하의 형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있습니다. 재판부가 재량으로 절반까지 형을 깎아주는 '작량 감경'을 통해 2년 6개월의 형량을 선고받으면 이재용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승계 작업이 급해진 이 부회장에게는 절실한 시나리오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삼성이 똑같은 권력형 범죄에 가담하지 않을 시스템을 갖추는지 보겠다'며 재판부가 제안해 운영되고 있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필수적입니다. 재판부는 이미 '준법감시위'를 평가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해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재판부에서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삼성 측에서는 김경수 전 고검장을 전문심리위원단에 들어갈 위원으로 추천한 상태입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봐주기 판결을 위한 장치'라는 입장이었던 특검은 당연히 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할 전문심리위원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 기피신청이 최종 기각된 뒤, 지난 21일과 23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특검은 전문심리위원단에 특검 측 인사를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함께 특검이 제시한 다음의 5가지 조건입니다.

(1) 미래전략실의 지시 등 기업 총수의 이익과 계열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에서의 범죄 예방 가능 여부
(2) 보험업법 개정 등 향후 '승계 작업' 관련 이슈에 대한 준법 의지 확인
(3) '승계 작업'에서 비롯된 불법 행위에 대한 피고인 이재용의 '진지한 반성' 여부
(4)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평가
(5) 삼성 측 전·현직 임직원들이 회사 부담으로 변호사 비용을 지원받는 것에 대한 검찰 수사 협조 의뢰 관련 평가

특검은 전문심리위원단에서 단순히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넘어 삼성의 승계 과정 전반에 대해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특검 관계자는 "기업 총수도 두려워할 만한 준법감시위를 만들자는 게 재판장의 뜻 아니냐"며 "재판부 기피 기각 결정문에도 '이 사건과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느냐'가 판단 요소였다고 했기 때문에, 이 사건과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승계 과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특검의 평가 기준은 삼성 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평가기준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삼성 측은 지난 9월 29일 재판부에 평가 기준을 제출하면서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한 준법감시제도와 관련한 유효성 평가 항목들이 포함돼 있으므로 피고인들이 약속하였던 내용들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문심리위원단의 평가가 '준법감사위원회'의 활동 영역에 국한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특검 측은 10월 23일 자 의견서에서 "삼성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상법, 금융관계법 등에서 이미 구현돼 있는 일반적인 준법감시제도와 동일한 수준의 평가만으로는 그 실효성을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검 측은 의견서에서 삼성의 '승마 지원', '영재센터 지원' 등의 뇌물 범죄도 삼성그룹 내부 법무팀 검토를 거쳐 이뤄진 것이라며, 준법감시위원회 만으로는 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삼성 이건희, 이재용

● 이건희 사후 승계 작업·'불법 합병' 재판에도 영향 끼칠 특검의 질문들

이건희 회장의 장례가 엄수되고 이 부회장이 본격적인 상속·승계 문제를 대면하게 된 지금,
특검이 제출한 5가지 평가 요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 보험업법 개정 등 향후 '승계 작업' 관련 이슈에 대한 준법 의지 확인 항목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건희 회장 사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삼성그룹이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시 행동 시나리오를 확정해 공표하지 않고 있는 상황 속, 특검이 이 부분에 대해 삼성 측의 입장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특검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1심과 2심 판결문에 모두 보험업법 개정안 내용이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1, 2심 판결문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 배경이 된 '승계 현안' 중 하나로 언급되는데, 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삼성 측이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시 생기는 주식 매각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절대다수를 점한 상황 속,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통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습니다. 특검 측은 승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전 정권에 뇌물을 제공했던 이재용 부회장에게 '현 정권에서 보험업법이 통과 됐을 때 발생하는 승계 현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특검이 제시한 이 항목이 전문심리위원단에서도 평가 기준으로 채택된다면, 삼성 측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 계획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도 (1) 미래전략실의 지시 등 기업 총수의 이익과 계열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에서의 범죄 예방 가능 여부, (3) '승계 작업'에서 비롯된 불법 행위에 대한 피고인 이재용의 '진지한 반성' 여부와 같은 항목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승계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조작했다'는 검찰 논리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은 '승계 작업은 실무진이 한 것이며 지시나 보고가 없었다'는 취지의 변론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막바지에서 승계 과정에서 비롯된 불법 행위에 대한 입장을 내놔야 할 경우, 이 부회장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선 '승계 불법 행위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놔야 유리하지만, 불법 합병 혐의 관련 재판에선 '승계 현안을 상세히 보고받지 못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준법감시위' 평가 항목 최종 선정할 전문심리위원단 구성 오늘 윤곽

특검 측이 제시한 5개 평가 기준들이 100퍼센트 반영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재판부, 삼성, 특검이 추천한 3인의 전문심리위원들이 각자 제출한 의견을 바탕으로 최종 평가 기준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구속과 소환조사, 부친의 별세 등으로 최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삼성 불패'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곤 했습니다. 공평해야 할 공화국의 법 잣대가 유독 삼성에게만 유연하다는 의심은 일종의 상식처럼 통용됐습니다. 막바지에 이른 이재용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은 그 비뚤어진 상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특검은 오늘(29일) 마지막 1명의 전문심리위원을 재판부에 추천할 예정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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