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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책과제 0건' 현대重, 기밀 도촬 뒤 0.056점 차 수주

[취재파일] '국책과제 0건' 현대重, 기밀 도촬 뒤 0.056점 차 수주
7조 원을 들여 스텔스 성능이 있는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해군 차기 구축함 KDDX 사업. 현대중공업이 사실상 수주했는데 KDDX 개념 설계도를 도둑 촬영해 훔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KDDX 본사업, 즉 기본 설계 및 초도함 건조 사업 제안서 평가에서 총점 100점 중 0.056점 차이로 대우조선해양을 앞섰습니다. 전례가 없는 간발의 차이입니다. 공식 발표가 안 됐을 뿐 현대중공업이 사업을 수주한 겁니다.

현대중공업의 KDDX 모형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이 해군과 함께 만든 3급 비밀인 KDDX 개념 설계도를, 현대중공업이 도둑 촬영해서 훔친 사실이 SBS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현대중공업이 본사업 제안서를 작성하는 데 훔친 개념 설계도를 단 한 톨이라도 활용했다면 현대중공업의 제안서는 위법한 문서, 수주는 무효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훔쳤을 뿐 활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목적 없는 절도', '절도를 위한 절도'라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KDDX 개발을 위한 해군과 방사청의 국책 연구과제를 단 한 건도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개발 과제도 하지 않고 훔친 설계도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데, 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수주를 눈 앞에 뒀습니다. 방사청과 안보지원사령부는 2년 여 동안 수수방관했습니다.

● 다시 보는 현대중공업 KDDX 설계도 도촬 사건

2014년 1월의 일입니다. 현대중공업 직원 서너 명이 잠수함 관련 업무 협조차 해군본부 함정기술처를 방문했습니다. 해군의 A 중령은 그들 앞에 KDDX 개념 설계 완료 최종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KDDX 개념 설계도입니다. KDDX 내외부 구조가 담긴 도면부터 전투체계, 동력체계 등 KDDX의 핵심 성능과 부품 관련 정보가 상세하게 담긴 보고서입니다. 3급 비밀입니다.

A 중령은 개념 설계도를 둔 채 자리를 떴고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설계도를 동영상으로 찍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으면 시간이 걸리니까 동영상으로 촬영한 겁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회사로 돌아간 뒤 동영상의 매 장면을 문서로 편집해서 개념 설계도를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4년여 뒤인 2018년 4월 기무사령부가 현대중공업에 대한 불시 보안감사를 실시했고 특수선 사업부의 비인가 서버에서 KDDX 개념 설계도를 찾아냈습니다. 4년 3개월 만에 현대중공업의 KDDX 개념 설계도 도둑 촬영 사건이 발각된 겁니다.

현대중공업, 해군, 기무사의 후신인 안보지원사가 공히 확인한 팩트들입니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얼굴 못 들고 다닐 정도로 창피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기밀 유출에 연루된 장교들은 군사재판을,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울산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 첨단 함형 적용 연구· 스마트기술 적용 연구도 대우조선이 수행

대우조선해양의 KDDX 모형

현대중공업이 훔쳐 간 KDDX 개념 설계도는 대우조선해양의 작품입니다. 방사청이 발주한 개념 설계도 입찰에 현대중공업도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기술 점수에서만 20점의 격차를 벌리며 개념 설계 연구사업을 따냈습니다. 기술 점수 20점 차이는 압도적인 기술의 격차를 의미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 10월 개념 설계도를 완성한 뒤 해군 전력분석시험평가단으로부터 감사의 글도 받았습니다. 해군 관계자는 "차원이 다른 개념 설계를 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5월부터 11월까지 KDDX 첨단 함형 적용 연구라는 해군본부의 연구과제도 수행했습니다. KDDX에 처음 적용되는 첨단 함정의 외형, 주요 제원 등을 설계하는 과제입니다.

2019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해군본부의 KDDX급 스마트 기술 및 무인체계 적용 연구도 대우조선해양이 맡았습니다. KDDX에 4차 산업혁명 신기술 및 무인체계를 적용하는 연구과제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KDDX 모형

현대중공업은 개념 설계 입찰에서 기술 점수에서만 20점 차이로 낙방한 뒤 나머지 2개 연구과제에는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대우조선해양이 KDDX 연구개발을 위한 3대 국책 연구과제를 홀로 모두 수행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현대중공업 측은 KDDX 연구개발의 국책 연구과제에 참여하지 못한 데에 대해 "자체 비용으로 전담 조직을 구성해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습니다.

● 막전막후 모두 아는 안보지원사· 방사청, 뭐 했나

현대중공업은 훔친 개념 설계도를 이번 KDDX 본사업 입찰 때 활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개념 설계도를 2014년 1월 훔쳤고 2018년 4월 기무사에 압수당했으니 2018년 말부터 KDDX 제안서를 작성할 때는 개념 설계도가 없었다"는 게 현대중공업 측 설명입니다.

현대중공업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2014년 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현대중공업은 훔친 개념 설계도를 비인가 서버에 눈길 한번 안 주고 고이 모셔둔 겁니다.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르면 군사기밀을 적법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수집한 사람은 10년 이하 징역형입니다. 수년 징역살이를 감수하고 개념 설계도를 훔친 뒤 그냥 처박아 뒀다는 현대중공업의 말.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현대중공업은 KDDX 국책 연구과제를 한 건도 하지 못했습니다. 연구과제 3건을 수행한 대우조선해양보다 기술적으로 앞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방사청과 안보지원사는 현대중공업이 KDDX 개념 설계도를 훔친 사실, 현대중공업이 KDDX 연구과제 실적이 없는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군함, 방위사업청, 현대중공업

그럼에도 방사청은 희대의 방산 비리를 구경만 했습니다. 안보지원사는 2년 반 전에 개념 설계도 유출 사실을 파악했지만 제동을 걸지 않았습니다. 수사와 재판 상황을 보면 구멍이 많습니다. 결과는 지난달 KDDX 본사업 입찰에서 현대중공업의 0.056점 차이 승리입니다.

방사청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입찰을 진행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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