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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제노동'에 눈 돌리는 日 정부…시민단체의 '당부'는?

'벽' 두드리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

[취재파일] '강제노동'에 눈 돌리는 日 정부…시민단체의 '당부'는?
군함도 등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 역사를 왜곡하는 전시가 설치된 일본 도쿄의 '산업유산 정보센터(이하 센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몽니'가 변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SBS는 지난 6월 예약제로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센터를 취재해 일본 정부의 유네스코 대사가 지난 2015년에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가혹한 환경에서 노역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던 약속이 실제 센터의 전시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고 (6월 14일 8뉴스  ▶ 군함도 전시하며 '차별 없었다'…약속 저버린 日), 광복절에는 이 센터를 일본정부의 위탁으로 운영하는 '산업유산 국민회의'가 전형적인 극우 단체이며 아베 정권이 이 단체에 위탁비 명목으로 56억 엔을 지원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8월 15일 8뉴스 ▶ '군함도 강제동원' 입 싹 닫은 日…아베가 56억 퍼줬다)

일본에서도 제국주의 일본 시절의 강제노동에 관심을 갖고, 특히 올해 개관한 센터의 전시 내용과 취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온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를 근거로 활동하는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지난해 11월 1일에 '산업유산 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일본 식민지배 피해국들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부정하는 내용의 연구내용에 따라 센터를 꾸미고 있는 것을 우려하며 일본 정부, 정확하게는 당시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그리고 내각 관방(우리나라의 총리실)의 담당 부서인 산업유산 세계유산등록추진실에 일제시대 산업 노동에 관한 재조사를 요청하는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극우적 색채를 가진 '산업유산 국민회의'의 조사 결과만으로 센터를 만들지 말고 정부가 직접 당시 실태를 조사하든가,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대학 등 연구기관이 당시의 강제노동 상황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본 도쿄 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에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와 가족 등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연합뉴스)

그러나 위의 보도대로, 이런 지적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센터가 6월부터 일반에 공개된 것입니다. 일반 공개는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고, 그 가운데 하루 15명을 '선별'해 거의 일대일로 '가이드'가 붙어서 일제시대 산업유산의 '우수함'과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는 이에 반발해 일반 공개 한 달 뒤인 지난 7월 14일에 한일 양국의 역사 운동 계열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센터의 전시 내용에 항의하고 강제노동 피해의 실패와 증언을 '역사적 사실'에 따라 전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 시에 약속했던 '관계국과의 계속적 대화'에 나서야 하고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의 결의, 즉 강제노동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 등과도 센터의 전시 내용에 대한 의사소통에 나서라고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7월 27일에 '네트워크'는 다시 일본 정부에 요청서를 보내면서 요구사항을 아래의 네 가지로 집약합니다.

1.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시의 발언을 뒤돌아보고, 각지에서의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할 것.
2. 군함도뿐만 아니라 전시 강제노동이 있었던 현장 피해자의 증언과 기록을 수집해 전체적인 역사를 전시할 것.
3.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 등 '관계자'와 대화할 것.
4. 민족차별과 강제노동의 존재를 부정하는 전시와 가이드 안내를 재검토하고 국민회의에의 위탁을 중지할 것.
도쿄 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 입구 (사진=연합뉴스)

역시나 일본 정부는 이번 요청서에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요청서를 보내고 한 달 뒤, '네트워크' 측과 일본 정부 내의 담당부서인 세계유산등록추진실의 '야마다'라는 공무원이 다음과 같은 전화통화를 합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네트워크 : (요청서의 답변에 대해)
야마다 : 문서로 답변을 할 예정은 없습니다.

네트워크 : 전시내용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에 따른다고 생각합니까?
야마다 : 2015년 세계유산위원회의 성명에 근거해 징용(강제동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했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도 일본인도 상당히 비참한 환경 아래서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 강제노동 희생자를 추도하는 전시가 아닙니다.
야마다 : 비참한 환경 아래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 강제노동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전시되고 있다는 겁니까?
야마다 : 개념적으로 징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전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약속한 내용으로 전시가 되고 있습니까?
야마다 : 일본 정부의 발언으로는, 징용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 (일본 정부가 약속한) 한국과의 대화는 진행되고 있습니까?
야마다 : 그건 정부 사이의 외교 행위이므로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마치 '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통화는 지난 3일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야마다'의 발언으로 시작됩니다. 8월 대화의 막바지에 있었던 '한국과의 대화'로 시작됩니다.

야마다 : 한국과의 의사소통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번 했다, 이런 식으로는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국과) 대화는 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 2019년 유네스코에 제출한 산업유산 보전상황 보고서에는 한국과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야마다 : 명시적으로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 왜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습니까?
야마다 : 외교 사안이고 그 뒤에도 센터의 개설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정을 써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니 '네트워크'의 시민 운동가들은 정말로 일본 정부가 센터의 전시 내용 등에 대해 한국 정부와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지난 9일에 다시 야마다와 통화해서 이를 확인해봅니다.

네트워크 : 제42회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인 대화 촉진의 대상에 한국 정부가 포함돼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야마다 : 그렇습니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기자회견

어제(18일)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이런 통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고 일본 정부의 '무성의'를 성토했습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하고 있다는 '한국과의 대화'란 실은 센터의 전시 내용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일방적인 '설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 측에서 센터의 전시 내용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인 반응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네트워크'에게 그랬듯 한국 정부에게도 그저 기존의 틀에 박힌 설명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에 대해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된 문제이며, 2018년 대법원 배상 판결을 포함한 모든 움직임은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말로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이 문제를 해결할 어떠한 의지도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새로 출범한 스가 내각도 한국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의 노선을 답습하는 데 그칠 거라며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기자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있었던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정부가 방관하고, 고치라는 요청에도 계속 귀를 닫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한국인들이 일본에 이런 노력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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