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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정수석 조국, 절제와 개입 사이④

-두 개의 법정, 두 개의 혐의

[취재파일] 민정수석 조국, 절제와 개입 사이④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까지 묘사했던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다. 변호사들과 소송 당사자들, 그리고 언론이 각자 무자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쫓는 그런 세계다. -켄들 코피,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 中

미국 연방검사 출신의 저명한 변호사 켄들 코피가 쓴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은 현실 세계에는 법리 다툼이 펼쳐지는 '법률의 법정'과 함께 여론의 재판이 이뤄지는 '여론의 법정'이 공존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 재판에서 마이클 잭슨 재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다양한 역사적 재판 실례를 통해 때로는 무자비하고 무질서하게 보이는 이 두 법정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줍니다.

이 두 개의 법정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 책에 등장하는 미국의 '세기의 재판'에서만큼이나 또렷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핸드폰으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재판이 없는 기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의견을 피력하는 소송 당사자들. '법률의 법정'에서의 재판과 별개로, 법원 밖 '여론의 법정'에서 조 전 장관 재판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여론의 법정선 "사표 받았다", 실제 법정선 "사표 요구 권한 없다"

조국 전 장관의 입장은 실제 법정에 들어서기 전, 여론의 법정 끝자락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납니다. '균형 잡힌 보도'를 당부할 땐 언론을, '수사의 진정성'을 언급할 땐 검찰을 향하는 조 전 장관 발언은 지난 5회 재판을 앞두고 한층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쇠방망이' 비유와 검찰과의 비교도 등장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수차례 말씀드렸지만 민정수석실은 강제 수사권과 감찰권이 없습니다. 감찰 대상자가 감찰에 불응하여 합법적인 감찰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어 감찰을 종료하고, 그 대상자의 사표를 받도록 조치한 것이 형사범죄라면, 강제수사권과 감찰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에 묻고 싶습니다.
검사의 개인 비리의 경우에 있어서 감찰조차도 진행하지 않고 사표를 받은 사례는 무엇입니까,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불문곡직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내부비리에 대해서는 솜방망이조차 들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이상입니다.
-조국 전 장관, 8월 14일 5회 공판이 열리는 중앙지법에 출석하면서


지금까지 조 전 장관은 더 이상의 감찰이 어려워 유재수의 사표를 받기로 결정한 것이지, 유재수 의혹을 덮은 게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 답변에서도, 장관 후보자 청문회 과정에서도 유재수 사표를 받는 것으로 '정무적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해명해왔습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또한 2018년 12월 국회 정무위 답변 과정에서 같은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해명이 사실이라면 "사표를 받으라"는 민정수석 결정을 전달받았어야 할 사람들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날, 조 전 장관은 다시 한번 '여론의 법정'을 향해 '당시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검찰의 사례와 자신의 사례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 언급한 '개인 비리 감찰도 없이 사표를 받은 검찰' 사례는 지난 2015년 성범죄 혐의가 불거지자 사직한 남부지검의 진 모 검사의 일로 보입니다. (검찰 조직에 대한 비판을 이어오고 있는 임은정 검사는 조 전 장관이 5회 공판 출석하기 5일 전인 지난 9일, 페이스북 글에서 진 모 검사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사직 뒤 추미애 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문찬석 검사장이 남부지검 공보관 시절 사건 관련 허위공보를 했다고 주장한 것이 글의 요지였습니다. 임은정 검사의 글은 문찬석 검사장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조 전 장관 발언 이후 지지자들 사이에 공유되며 '여론의 법정'에서 다시 회자됐습니다.) 조 전 장관은 성 비위 검사에 대해 감찰도 진행하지 않고 사표를 받은 검찰이 최소한 감찰은 하고 사표를 받은 자신을 기소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법률의 법정'에선 양상이 조금 달랐습니다. 증인들의 입에서 조 전 장관 주장과는 다른 증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 결과를 전달받은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청와대로부터 '사표 받으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재차 증언했습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연합뉴스)
▶검사 : 2017년 12월에 백원우에게 전화가 왔다고 진술했는데?
▷김용범 기재부 1차관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 2017년 12월 5일에 그런 (유재수 비위 의혹 관련) 보도가 나왔고, 금융위에서도 해명이 나갔고 금융정책국장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언론에서 보도되고 해명을 하게 돼서 특정이 돼서 세상에 드디어 공식화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그전에는 풍문 정도였는데. 이런 것은 당연히 금융위에서도 챙길 일이었고 청와대에서도 알았을 텐데… 보도가 있고 멀지 않은 시기에, 12월 초순으로, 분명한 것은 보도가 있었고 그게 저희한테는 상당히 큰일이라서 그 이후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백원우 비서관에게 전화가 와서 내용은, '투서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감찰을 했다, 대부분은 클리어됐는데 일부는 해소가 안 됐다 참고하라, 금융정책국장 자리에 계속 있기는 어렵겠다'라고 했습니다.
(중략)
▶검사 : 피고인 백원우 주장은, 처음에는 '고위공직자로서 품위 유지의 문제가 있고 인사 조치가 필요한 상태이다' 정도로 이야기했고, 이후에 김용범 부위원장이 청와대 회의 때 들어와서 저를 만나서 '청와대 입장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청와대는 사표 수리로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습니까?
▷김용범 기재부 1차관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 그 내용은 들은 바 없습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당시 청와대의 감찰 결과 통보를 '사표 받으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사 : 청와대로부터 유재수 청와대 입장은 사표수리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죠?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네 저는 모든 이야기 김용범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부위원장이 그런 내용 저한테 들었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이들은 또 유재수의 사표를 받은 것은 징계 차원이 아니라, 금정국장 퇴임 뒤 유재수 본인이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추천을 희망해 절차상 받은 거라고도 증언했습니다.

조 전 장관과 백원우 전 비서관 측 변호인은 당시 완곡하게 의사를 전달한 것 아니었겠느냐면서도,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집요하게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조 전 장관 측은 '감찰 결과를 전달한 백원우 전 비서관에게 분명 사표 받으라는 말을 했다'고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2018년 국회 운영위 발언부터 8월 14일 법정 앞에 이르기까지 여론을 향해 "사표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명확히 해명한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모습입니다.
▶조국 전 장관 변호인 : 지금 아까 증인이 마지막으로 말하신 부분 중에 이런 게 있는데, 백원우의 '국장으로 유재수 더 일하기 힘들 거 같다 인사에 참고하라'는 말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사표를 내라는 이야기의 완곡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거예요?
▷김용범 기재부 1차관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고 제가 뭐 조사 때 많은 심문 있었지만 저는 뭐 명시적으로, 만약 사표 받으라는 지시받았다면 공무원 조직이 했을 텐데... '그 자리에 있기 어렵다, 금융정책국장 자리에 있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 우리는 보직해임으로 생각했는데, 말하는 쪽에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니, 징계면직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할 수 없고 의원면직으로 그쪽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후에 생각 한 거죠. 당시에는 아니고요.

대신 '법률의 법정'에서 조 전 장관과 백원우 전 비서관 측은 법리를 파고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분명히 사표를 받으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항변 대신, '민정수석실은 금융위 구성원에게 사표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금융위에 부당한 압박을 가해 금융위가 유재수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했다는 검찰 공소 사실에 법리적 균열을 내기 위한 증인 신문이었습니다.
▶조국 전 장관 변호인 : '유재수 사표 받는 걸로 정리하자는 보고 받지 못했다, 청와대로부터 사표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바로 사표 받았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민정수석실에서 사표를 받으라는 지시를 할 권한이 있어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뭐 일반적으로 그렇게 안 하겠지만 한 달 이상 감찰 한 결과이기 때문에 사표 받을 만했다면 당연히 저희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사표 정도까지 받아야 한다면 내용 물어봤을 겁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사표 받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민정수석실은 금융위에 사표를 받으라는 지시를 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변호인 질문은 조 전 장관 측이 여론의 법정에서 해 온 '사표를 받기로 했다'는 해명과는 정확히 아귀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과 법정에 들어선 후, 한나절도 안 되는 시간 사이 드러난 이러한 입장 차이는 '두 개의 법정'에서 치뤄지는 이 사건 재판 양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라는 두 개의 혐의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금융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신문도 이어졌습니다. 민정수석실의 지시가 명확치 않게 느껴졌다면 금융위가 청와대에 감찰 자료를 요청한 뒤 자체 감찰을 했어야 했는데, 금융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변호인 : 묻고 싶은 건, 백원우가 김용범에게 청와대 감찰 결과에 대해 말했는데, 인사에 참고하라는 의미에 대해서 알 수가 없잖아요 무슨 의미인지? 부위원장 인사과장과 모여서 청와대에 물어보면 되잖아요. 못 물어볼 이유가 없잖아요. 자료 요구하면 되는 거고.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인사에 참고하라는 건 다른 예 비춰볼 때 징계사유는 아닙니다. 하지만 알아서 하라는 게 통상적입니다.

이에 대해 최종구 전 위원장과 김용범 전 부위원장은 '청와대 특감반이라는 기관이 감찰을 진행한 상황에서 금융위가 현실적으로 추가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고 항변했습니다.

책임 소재를 묻는 과정에서 또 다른 키워드도 등장했습니다. 직무상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직무유기'죄입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변호인은 최종구 전 위원장도 직무유기로 고발된 사실을 거론하며 '백원우 전 비서관은 직권남용의 주체이고, 금융위는 직권남용의 피해자'라는 검찰의 혐의 구도가 온당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직무유기'로 고발된 최 전 위원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압박을 받지 않았는지 물으며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던졌습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변호인 : 준비된 신문사항하겠습니다. 조사받을 때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 불리한 얘기 안 해도 된다, 진술 내용에 대해 본인 불리한 거 진술 안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그런 내용 들은 것 같습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변호인 : '자칫하면 나도 수사 대상 되겠구나'라고 인식했어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저는 뭐 제가 수사 대상 피의자가 되리라는 생각 안 했습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 변호인 : 첫 조사 받고 나서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고발된 적 있죠?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 네 그 때 야당에서 고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직무유기' 혐의는 지난 6월 5일 열린 2회 공판 초반 검찰의 입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검찰이 조 전 장관 공소장에 '직무유기' 혐의를 예비적으로 추가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과정에서였습니다. 검찰은 조국 민정수석의 행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해당될 소지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도 추가로 법률적 판단을 구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뭔가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상충되는 두 가지를 공소장에 욱여넣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검찰이 형사처벌을 위해 무리수를 둔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6월 5일 2회 공판 中

▶검사 : 피고인 측에서 말해서 하는데 지난번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 보면 피고인의 직권남용 방어하며 '직무유기는 성립 가능성 있으나 직권남용은 안된다'고 하는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는 작위범과 부작위범이라고 볼 때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가 흡수된다고 본 적이 없습니다.
▷조국 전 장관 변호인 : 우리가 직무유기가 된다고 한 적 없습니다. 판례에서 '직무유기'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는 것이고 '권리행사 방해, 의무 없는 일 시킨 것'과 서로 양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방어를 하는 것 보고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검사 : 무슨 스포츠도 아니고 우리가 응수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 사실이 동일하다면 판단을 구하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

'사표를 받기로 하고 감찰을 종료했다'는 조국, 백원우 피고인의 기존 주장과는 달리, '사표 받으라는 말 들은 적 없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검찰의 결정에 한층 더 관심이 쏠리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검찰은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재판 과정을 검토해 조만간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한 공소장 변경 신청이 들어올 경우 자신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검찰이 '쇠몽둥이'를 들이댄다는 조 전 장관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세 피고인들이 법리 공방에서 두고 있는 주안점의 차이도 다시 한번 드러났습니다. 한 차례 짧게 이뤄진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변호인 측의 증인신문에서였습니다.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변호인 : 이 무렵에 증인이 연락하고 직접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연락하고 싶어도 안 될 무렵에 특감반에서도 유재수에게 연락해서 감찰하고자 했는데 연락 안 받고 그래서 감찰도 진행하지 못했던 건 알고 있었나요?
▷김용범 기재부 1차관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그때는 몰랐고 사후 보도보고 알았습니다.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변호인 : 이상입니다.

당시 '금융위 통보'보다는 '유재수 감찰' 영역에 좀 더 가까이 있었던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측은 '이렇게 직속 상사 연락도 받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반부패비서관은 할 수 있는 감찰을 다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표 수리 통보'의 진위 논란에서 조금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박 전 비서관 측은 이번 재판 증인 신문에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 수없이 놓쳤던 기회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진=연합뉴스)

한 고위 공무원의 비위 혐의가 법무장관이 기소되고 여론이 쪼개지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지나갔던 기회들도 증인신문과정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엘리트 공무원으로 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최종구, 김용범 두 증인들은 유재수 처리 문제에 대해 윗선인 청와대의 의중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범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은 유재수 감찰이 진행될 때, 유재수 비위를 통보받은 뒤, 그리고 유재수가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추천을 희망할 때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여러 번 문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언론의 취재와 보도과정도 드러났습니다. 김용범 당시 부위원장은 11월 경부터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는 유재수에 대해 여러 언론사의 취재가 있었고, 11월 말에는 '유재수가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조직 보호를 위해 '검찰 수사를 받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대응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재수 금정국장이 비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언론 보도는 잘못된 부분이 있었지만,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결여된 건 아니었던 셈입니다.

당시 금융위를 출입했던 기자가 지난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이 불거진 뒤 반성문 형식으로 출고한 칼럼도 재판에서 언급됐습니다. 중앙일보 한애란 기자는 2019년 12월 4일자 <유재수 사건을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2018년 1월 당시 금융위 고위관계자가 '유재수가 청와대 감찰을 받고 있지만 돈 받은 건 절대 아니다'라고 해 취재를 접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유재수가 돈 받은 건 절대 아니다'라며 취재를 무마한 고위관계자는 바로 자신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유재수 비위 의혹으로 시작된 여러 건의 수사와 기소, 그리고 지금도 재판 과정에서 소요되고 있는 사회적 비용까지.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일을 바로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건 이 비용들을 감당해야 하는 시민들 입장에서 분명 슬픈 일입니다.

● 잊혀질지도 모르는 과정들을 기록하는 이유

여론의 법정에서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법률의 법정에서 이기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책의 저자 켄들 코피는 '여론의 법정'에서의 대응 전략들을 조언하면서도, 결국 '법률의 법정'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론의 평가를 좌우하는 건 재판 결과이기에, 여론의 법정에서 하는 다양한 기술적 대응은 법률의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한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저자의 결론은 한 사건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재판 결과라는 점을 상기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선고 결과만으로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의혹'을 온전히 평가하는 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 이 사건 재판이 진행될수록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피고인들에게 유죄가 선고된다고 해서 '이 사건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양태에 돌아볼 점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법률의 법정이 무죄를 선고한다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여론의 법정'에서 보였던 모습들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겁니다.

'일개 금융위 출입기자가 반성문씩이나 쓰는 게 주제넘다는 걸 안다. 굳이 이 글을 쓰는 건 유재수 사건 책임자들의 반성을 바라서다.' 금융위 출입시절을 반성한다는 기자는 칼럼 말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싸우게 된 이 사건 두 개의 법정에서 '반성'이라는 단어가 나오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재판 결과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모든 것들을 잠식하지 않기를,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사회가 사람은 물론 제도에 대한 성찰을 하는데 이 과정에 대한 기록들이 의미 있게 사용되길 바랍니다.

재판은 다음 주 금요일, 당시 유재수 인사를 담당했던 금융위 인사과장 증인 신문으로 이어집니다. 재판부는 이후 유재수 증인신문을 거쳐 9월과 10월 조국, 백원우, 박형철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한 뒤 '감찰 무마' 혐의에 대한 재판을 일단락 짓기로 했습니다.

**참고문헌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 켄들 코피, 권오창 역
[노트북을 열며] 유재수 사건을 반성합니다, 중앙일보, 2019.12.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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