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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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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249 :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시칠리아?!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안의 어린 예술가와 혹시 내가 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학생들 내면의 어린 예술가들을 마침내 구해낸 것일까?"

7월이네요! 휴가 시즌이 돌아왔으니 어디로 멀리 떠나기는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때, 10년이 지난 그러나 최근에 개정판이 나와 따끈따끈하기도 한 여행 에세이를 가져왔습니다. 그 사이 제목이 바뀌고 몇 개의 글이 더해졌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입니다.

작가가 다녀온 시칠리아 여행기입니다. 2009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책의 맨 마지막 장 제목이기도 합니다. 시칠리아 여행을 마치고 페리 터미널에서 Memory Lost라고 적힌, 왠지 번역이 잘못된 듯한 이 문구를 보고 떠올린 문장이라고 하죠. 보통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아쉽긴 해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기념품을 포함한 추억을 떠올리며 '얻어가는 것을 기억'해야 할 텐 데 잃어버린 걸 기억하라니... 이 여행이 지나고 보니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였기 때문에 적절했던 문장이었습니다.

10년이 조금 더 지나서 새로 출간된 책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됐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왜 시칠리아였나'에 앞서는 질문은 사실 '왜 정돈된 삶을 벗어나 떠나게 되었나'입니다. 나이 마흔에 잘 나가는 소설가에, 국립학교 교수에, 방송 진행자까지 모든 걸 가진 듯했던 작가는 그러나 숨 막히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지를 자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 쉬익,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여러분의 임무는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상처 받지 않도록, 그가 겹겹의 방어막으로 단단히 자신을 감싸 끝내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정신적 불구가 되지 않도록 잘 아끼고 보호하여, 그를 학교 밖으로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배움은 다음 문제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막힘 없이 흘러갔다면 내 삶은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은 것이 샘솟았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충동적으로, 캐나다의 한 대학으로 떠나기로 하고는 그 사이 두 달 반 남짓한 기간에 여행 가기로 한 곳이 시칠리아입니다.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로 정하는 그 장면.

"시칠리아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았다. 그 자리에 앉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시칠리아에 가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긴 어쩐지 내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 그린란드나 남극 같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시칠리아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많은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떤 나라나 도시를 마음에 두었다 한동안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기로 다시 그곳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곳에 가 있다. 그런 여행은 마치 예정된 운명의 실현처럼 느껴진다."


"내게는 '과거의 내가 보내온 편지' 같은 책이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약속 같은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언젠가 시칠리아로 떠나게 될 것이고, 장담하건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읽고 나니 저 자신도 그 사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잃어버린 것들도 적지 않고 그중 기억하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을 테죠. 여행기의 제목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으로 바뀌었지만 저는 여전히 잃어버리고 또 얻으면서 다니고 있고 아직 준비한 대답은 부족하거나 없네요. 시칠리아는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전에 떠나고 싶고요.

*출판사 복복서가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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