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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TV 속 귀여운 동물들,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혹시 동물이 출연한 미국 영화에서 'No Animals Were Harmed'라는 문구와 함께 'American Humane Association'이라는 협회 로고를 본 적이 있는가? 꼼꼼히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이 로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전까지는 이 문구를 발견한 적이 없으니까. 2년 전, 영화 '베일리 어게인'을 보다가 무심코 자막을 봤는데, 이 문구와 함께 협회 로고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이학범 AHA 로고
사진은 영화 <베일리 어게인><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스틸컷" data-captionyn="Y" id="i201444028"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625/201444028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만약 당신이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No Animals Were Harmed®' 문구를 봤다면, 그 영화가 AHA(American Humane Association)에서 마련한 '영화 촬영 시 동물의 안전한 사용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촬영한 영화라는 뜻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촬영을 했으므로 그 어떤 동물도 촬영 과정에서 다치거나 해를 입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무려 132쪽이나 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면

- 촬영에 이용되는 모든 동물은 예방접종 등 필요한 수의학적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

- 촬영 중에 적절한 간격으로 먹이와 물, 휴식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 동물들을 데려오는 곳의 출처가 확실해야 하며, 동물의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보장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 유능한 핸들러, 훈련사를 촬영현장에 동행시킨다.

- 촬영시간을 줄이고,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훈련사에게 촬영에 요구되는 액션이나 카메라 위치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스크립트와 함께 미리 제공한다.

- 배우들이 미리 동물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하게 한다.

- 상처를 입거나 상태가 안 좋은 동물을 즉시 촬영에서 제외하고 수의학적 처치를 받게 한다.


등등 기본적인 내용은 물론, 동물 종류별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 개, 고양이, 토끼, 말, 새, 물고기, 파충류, 야생동물 등 각각의 가이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미 동물 촬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여러 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드라마 '연애의 발견'이다. 술에 취한 여자 주인공이 길에서 토끼를 우연히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는 장면이 있었는데, 방영 후 난리가 났다. 토끼는 목욕을 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데다, 감기 등에 걸려 죽을 수 있어 목욕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제작진은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시청자분들께 불편함을 드리게 되어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사과문을 냈다.

이학범 연애의 발견 토끼 목욕씬
드라마 <연애의 발견><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논란 불러일으킨 토끼 목욕 장면." data-captionyn="Y" id="i20144401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625/20144401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사실 우리나라에도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 있다. AHA처럼 자세하지는 않지만 일부 동물단체에서 만든 가이드라인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며 촬영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많지 않다. 왜?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자세가 중요하다. 동물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 광고를 볼 때 제작자가 동물복지에 신경을 썼는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등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한다. 그래야 동물 복지를 신경 쓰는 촬영이 늘어난다. 앞으로 우리나라 영화 자막에서도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 준수' 문구를 자주 보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보자.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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