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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반려동물 시장 6조' 대박만 쫓다간 쪽박 찬다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요즘 부쩍 반려동물 산업이 성장한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펫코노미(pet+economy)라는 신조어도 이제 익숙하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 시장이 뜬다'라고 말한다. 반려동물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반려동물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말이다.

반려동물 강아지 개 멍멍이 (사진=픽사베이)

지난해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약 591만 가구 1천41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2019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400만 가구 1천만 반려인 시대'도 벌써 옛말이 됐다. 반려견이 598만 마리, 반려묘가 258만 마리로 조사됐는데, 2018년에는 각각 507만 마리, 128만 마리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 중소기업, 개인 할 것 없이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반려동물 산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다.

최근 CJ제일제당이 펫푸드 사업을 접기로 했다. 2018년 반려동물 전용 우유를 선보였던 빙그레 역시 1년 만에 반려동물 시장에서 철수했다. OO펫, ~~~~펫, 펫△△ 이라는 이름의 서비스가 계속 생겨나고 있지만 상당수는 몇 년 안에 사라진다. 여러 반려동물 스타트업들이 조언을 구하며 나를 찾아왔는데, 최근 5년 사이에 만난 회사 중 80% 이상은 없어진 것 같다.

진정성이나 철학 없이 "반려동물 시장이 뜨고 있어서" "반려동물 아이템이 투자받기 좋아서"라며 회사 소개를 시작한 곳들이 주로 사라졌다.
'반려동물 전용 우유'를 내놓은 빙그레도 사업 1년 만에 철수했다.
이런 분들이 꼭 인용하던 문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반려동물 시장은 2020년까지 6조 원 규모로 성장한다'는 문구다. 농협경제연구소가 2013년에 발표한 '애완동물 관련 시장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 쓰여 있던 내용으로, 이 연구소가 이듬해 사라지는 바람에 그 뒤로 관련 자료가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2016년 12월 '반려동물 보호 및 관련 산업 육성 세부대책'을 발표하면서 "2020년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가 3.5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시장 성장 규모를 축소하여 예상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2020년 6조' 문구가 사용되고 있고, 이를 인용하며 사업을 시작하거나 투자를 받으려는 기업이 상당수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반려동물 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정확하고 객관적인 미래 예측이 필요하다. 반려동물 시장은 생각보다 작은 시장이고, 영세한 업체가 많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대기업이 진출한 47개 상권 인근의 영세 펫샵 약 470개가 폐업했다"는 펫산업소매협회의 설명이 실상과 가깝다고 봐야 한다. 지금처럼 '6조 원'이라는 문구에 꽂혀서 큰 기대를 품고 마구잡이로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을 헤집어 놓고, "반려동물 시장 별거 없더라"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시장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동물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반려동물 시장은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마구잡이식 시장 진출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조 원, 6조 원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기 전에 반려동물 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관련된 산업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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