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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꼰대들이여, '1일 1깡' 신드롬을 주목하라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여러분은 요즘 '1일 1깡' 하고 계시나요? 앗. 아직 깡을 안 하고 계신다고요? 뭔지도 모르신다고요? 이런 이런. 힙스터들의 최신 유행인데요.

'1일 1깡'은 일종의 유행어입니다. 가수 비의 2017년 노래, '깡' 뮤직비디오를 하루에 한 번은 꼭 시청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식후깡' 이라는 말도 생겨났지요. "밥 먹고 나면 한 번씩은 꼭 '깡'을 봐야 한다" 라는 뜻인데요. 식사 직후의 흡연을 뜻하는 은어, '식후 땡'의 응용 버전입니다. 깡 뮤직비디오 시청은 흡연만큼이나 중독적인 행위라는 의미라고 할까요. 3년 전에 나온 뮤직비디오인데 2020년 지금에서야 조회 수가 치솟고 있지요. 최근 900만 조회 수를 돌파해, 곧 1천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비 깡
인잇 장재열 비 깡

얼마나 좋은 노래길래 뒤늦게 역주행하고 있느냐고요? 글쎄요. 비 씨에겐 죄송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당시엔 폭망(폭삭 망한)'한 노래였습니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각종 음원차트 100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했지요. '월드 스타'라는 유명세에 비하면 턱없이 안타까운 결과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다지 좋은 노래는 아니었다는 거지요. 정확히는 2000년대 초반의 모습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해서 "비도 아재 다 됐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결국 비의 '깡' 뮤직비디오가 맨 처음 유행했던 것은 그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조롱하는 댓글을 달러 누리꾼들이 모여들고, 누가 더 창의적인 조롱 댓글을 다는지 일종의 경연장이 열렸던 것입니다. 댓글 보는 재미에 사람들이 몰린 거지요. 거기다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까지 흥행에 실패한 이후로 '비'라는 연예인 자체가 하나의 조롱 대상이 되어버린 건데요. 그 댓글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비였으면 우울증이라도 오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조롱 일색이었거든요.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창작자라도, 자기가 만든 콘텐츠에 조롱과 비웃음만 가득한 것은 참기 힘든 괴로움일 수 있으니까요. 뉴스 댓글 창은 막혔다지만, 유튜브 댓글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가수 본인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반전이었지요.

토크쇼에 출연해 "모든 댓글을 다 보고 있다"며 당당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쿨하게 자학개그를 선보이면서 본인도 '1일 1깡'을 하고 있다며, 팬들이 만류하는 '철 지난 유행'은 이제 끊어보겠다며 재치 있게 넘긴 건데요. 자신을 소재로 형성된 유희 문화에, 자기 자신까지도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이며 '멘탈 갑'으로 대중의 찬사를 받은 겁니다. 이 반응을 계기로 대중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인잇 장재열 비 깡

여러분은 이 '깡' 신드롬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꼰대'가 참고해야 할 두 가지 덕목을 비가 확실하게 보여줬다고요. 소위 '본업 존잘'과 '비판의 선택적 수용' 이지요. 생각해보면, 비라는 가수는 가요계에서 그야말로 '대선배'입니다. 나이로도, 경력으로도 말이지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할 거리가 한가득인 소위 '레전드 가수'입니다. 그리고 '깡'이라는 노래에는 그 과거의 영광을 회상, 과시하는 가사가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아주 어렸던 지금의 20대는, 비를 '꼰대'로 인식, 조롱하기 시작했던 거지요.

하지만 비는 이 조롱에 대해 '선택적 수용'을 합니다. 대중이 조롱한 것은 '깡'이라는 노래이지 '비'라는 가수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1일 1깡'이라는 개그 코드에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조롱의 대상은 '내 노래 중 한 곡' 인 거고, '나 자신'은 아니니까. 라고 할까요? 대부분의 꼰대가 자신의 의견, 또는 결과물이 후배들에게 반박당하면 자기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하며 찍어 누르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또 한 가지, 조롱을 칭송으로 바꾼 핵심 능력은 '본업 존잘'입니다. 비록 '깡'이라는 노래 한 곡이 유치하고, 시대를 잘 못 읽는 '아재 같은 곡'이라고 한들, 가수 본인의 실력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비가 당당한 태도로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대중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 다음 곡은 제발 직접 만들지 말고, 좋은 작곡가 만나서 그 멋진 실력 다시 뽐내주세요!"라고요. '자기 고집에 빠진 아재'에서, '프로듀싱만 빼면 다 잘하는 우리 형'으로 인식이 바뀌는 지점인 겁니다.

결국, 가요계의 레전드 가수 비는 '현재 진행형 스타'임을 태도로 증명해낸 셈입니다. 물론 팬들은 여전히, 그럼에도 신곡이 나오기 전까진 모른다. 저 오빠 저래놓고 또 철 지난 체인 목걸이 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만, 그런들 어떻습니까. 적어도 우리는 그가 '철 지난 꼰대'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지 않았습니까?

그는 비웃음이 존경으로 바뀔 수 있는 모든 '태도'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인잇 장재열 비 깡

지금 이 땅의 꼰대들, 어떻게 젊은이들과 호흡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1일 1깡부터, 비의 태도를 참고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인잇 장재열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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