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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경비원의 죽음, 엄벌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코뼈가 부러지도록 맞고, 갑질로 인해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한 방송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여파는 엄청나다. 시민들은 가해자의 파렴치한 행동에 분노했고, 피해자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도 지난 13일 아파트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같은 날 페이스북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참담하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가해자에 대한 경찰수사가 진행 중인데, 가해자가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소식에 시민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청하고, 입주민이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 올린 청원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에 참여한 인원은 40만 명에 달하고 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라는 점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극단적 선택' 경비원 폭행 혐의 주민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사진은 연합뉴스)

"우리의 책임은,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두 달 전 발간된 책 <임계장 이야기-63세 임시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조정진, 후마니타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38년동안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60세의 나이로 퇴직한 뒤 2016년 8월 1일부터 2019년 3월 31일까지 약 3년 동안 임시계약직 노동현장에서 작성한 일지를 책으로 내놓았다.

'임계장'이라는 단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로, 저자는 임계장 이외에도 자신들은 '고·다·자'라고도 불린다며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에 10년 넘게 일한 선배가 경비원 일을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하며 손을 꼭 잡은 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 '임계장 이야기' 122p -


'극단적 선택' 경비원이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초소의 모습. (사진은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이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가 없는, 가혹한 노동환경을 제공한 건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가해자만의 책임일까? 어쩌면 피해 경비원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비극'은,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바로 우리의 비뚤어진 욕망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경비원은 경비업무를 맡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차관리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통 세척 등은 사실상 그 분들의 업무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잡무처리를 사실상 경비원에게 맡기고 있다. 그렇다면 맡긴 업무량만큼 경비원을 제대로 대우해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근로기준법 적용에 있어서 감시·단속직 근로자로 분류해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그리고 휴일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마저 적용을 '제외시켜' 버렸다.

실제로 경비업법 제15조의 2 제2항은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 업무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6항은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비원들은 이 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법이 지켜지지 않은 현실을 묵묵히 감내하는 이유는 임시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해고 등 불이익을 각오하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상태에서의 법과 권리는 그저 허울 좋은 액세서리일 뿐이다.

'극단적 선택' 경비원 초소 앞 분향소 (사진=연합뉴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총리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지금까지 지켜지지도 않는 법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위한 책임을 다했노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의 무책임한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경비원들이, 법이 금지하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안정적 지위를 확보해 주는 것이 우선인데, 과연 우리는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 새로운 해법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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