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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불온한 청년, 김해영

[그사람] 불온한 청년, 김해영
● 불온한 청년, 김해영

민주당 소속 의원 중에서 노무현을 팔지 않고 문재인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정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해영이 그렇다. 그의 적지 않은 인터뷰 기사를 보면 노무현, 문재인이란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특별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부산 출신 청년 정치인 입에서 왜 문재인이나 노무현 이름이 나오지 않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개인적 만남이 없다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그렇지도 않다. 그가 사법연수원생 시절 법무법인 부산에서 시보 생활을 할 때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운명'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매일 그 사무실에 나왔다. 문재인 변호사는 후배 법조인 김해영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와의 인연이라면 한 겹 인연도 열 겹 스무 겹으로 만들어 포장하기 십상인데 그는 그 인연을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

김해영 의원의 21대 선거 홍보물

4·15 총선 그의 공식 선거 홍보물에는 모두 11장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가족 사진 한 장을 빼면 나머지 10장은 모두 김해영 독사진이다. 대통령이나 유명인사, 외국의 알 만한 인물들과 악수하는 사진 한 장쯤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사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정부 질문, 국회 상임위, 당 최고위원회의 같은 여러 명이 동시에 등장할 만한 사진에서도 그의 얼굴만 나온다. 다른 인물들은 모두 가려져 있거나 지워져 있다. 사진만이 아니다. 그의 선거 홍보물에는 다른 정치인의 이름이 단 한 명도 적혀 있지 않다. 당의 공약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같은 수사적인 표현도 없다. 오로지 김해영의 이야기만 담겨 있다. 이거 우연인가?

김해영 의원의 20대·21대 선거 홍보물

이번 21대 홍보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무명 신인이었던 20대 총선물도 마찬가지다. 이때도 책자형 선거 공보물에 실린 열 장의 사진 가운데 유권자와 찍은 세 장의 사진을 빼면 나머지는 그의 얼굴 사진만 대문짝만하게 나온다. 다른 사람은 그의 홍보물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이름 자체가 2016년 공식 선거 홍보물에도 없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같은 정치 거물들도 그의 홍보물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오직 김해영만이 존재한다. 지명도가 낮은 정치 신인인 만큼 유력자와의 친분이나 인연을 강조할 법도 하건만 그는 자신의 이름 석 자로만 승부하겠다는 도전 정신이 그때부터 가득했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다. 선거 홍보책자를 그렇게 만든 것이 의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잠시도 틈을 두지 않고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정치는 자기 이름 걸고 하지 것이지 남의 이름 팔고 다른 사람과의 친분 내세워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게 국회의원 아니겠습니까"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부산 민주화 운동 세력과도 별 인연이 없는 그의 이런 모습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 서 보자면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케 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국 사태를 비롯한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집권여당 안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의 발언은 그때마다 화제가 되었다. 그의 발언에 반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에게 호의적인 반응으로 그의 용기를 북돋우곤 했다. 그가 낙선한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고 그의 낙선을 드러내 놓고 안타까워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는 언론의 입맛에 맞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 당선 사례하는 김해영 의원

20대 총선 승리 이후 그의 정치 인생은 승승장구였다. 20대 총선 민주당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그가 가장 어렸다. 그가 장관 경력을 가진 재선 의원 출신인 김희정 후보를 꺾은 것은 20대 총선의 이변 중의 하나였다. 구청장 후보를 두 번이나 내지 못했을 만큼 민주당 당세가 약하고 보수 색깔이 강한 부산 연제구에서 첫 출마에서 그는 승리했다. 2년 후에는 집권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너무 잘 나간다는 말이 들릴 만큼 거침없는 행보였다. 이런 성취가 남의 어깨에 기대어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평가할 만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그의 당선이 이변이었듯이 그의 낙선도 이변이었다. 무명 신인이었던 4년 전에 비하면 이번 총선 여건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부산 시장, 연제구청장이 김해영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고 자신의 손으로 공천한 사람들이 시의원, 구의원이었다. 4년 전에는 중앙 정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었지만 지금은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왜 떨어졌을까? 김해영 의원과 그의 참모, 그리고 민주당 당직자들은 지역구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해영은 지역구 관리 소홀이란 말이 마치 자신이 게을렀다는 말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는 눈치였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의원회관에 아침 7시에 나와 밤 10시에 퇴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그는 게으름의 미덕을 전혀 모르는 인물 같다. 지역구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그에게는 불편하게 들렸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합니다. 비행기 타고 4년 동안 서울 부산을 오간 횟수만 504회나 됩니다. 지역구 열심히 다녔습니다. 다만 예전 방식으로 조직을 만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낡은 정치 행태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그런 점이 지역구 소홀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일주일에 월, 수, 금 세 번 열린다. 김해영은 여기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금요일 최고위원회의 마치고 지역구에 간다고 해도 일요일 저녁에는 그 다음날 회의를 위해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 게다가 김해영의 본회의 출석률은 96.8%로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높다. 최고위원 활동과 국회의원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지역구를 자주 찾고 그 지역에 자기 조직 만들어 운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그 지역구는 서울에서 제일 먼 부산이 아닌가. 서울에서 잘 나간다고 부산에서 얼굴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을 그인들 몰랐을 리 없다.

올 1월부터는 모든 것의 최우선을 지역구 활동에 두자고 했는데 아뿔싸!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유권자와 직접 접촉이 불가능해졌고 김해영의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김해영은 이 때 초조함을 느꼈을 법하다. 경쟁자는 지역에 깊게 뿌리내리고 몇 년 동안 밑바닥을 맹렬히 다지고 있었다. 선거는 이름 석 자만 보고 뽑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부산은 아무리 달라졌다고 하지만 보수세의 근거지라는 것, 자신의 지역구는 두 차례나 구청장 후보도 낼 수 없었을 만큼 부산에서도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이라는 것을 그가 잊고 있을 리 없었다.

김해영 낙선의 보다 큰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부산 지역의 침체된 경기, 가덕도 신공항 문제에 대한 부산 지역 주민들의 실망감은 김해영만이 아니라 부산 지역 민주당 후보들이 이번 총선에서 고전한 공통된 이유였다. 여기에 선거 막판 터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180석 발언은 부산 지역 보수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4천여 표 차로 떨어진 김해영은 이런 것들로 자신의 실패를 설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이런 것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성공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었듯이 실패 역시 오로지 자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낙선했다.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

김해영은 언론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전학과 입학을 반복한 끝에 고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스토리, 전교 꼴찌 수준의 성적에 고3 때는 진학반이 아닌 취업반에 편성되었다가 수능 석 달 전부터 공부에 전념해 부산대 법대에 진학한 이야기, 집안이 어려워 동생과 고모 집에서 살았다는 이야기,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5년간 간병하면서 고시 공부를 병행한 사연, 그렇게도 자신의 사시 합격을 원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사시에 합격한 사연 등등 그의 10대와 20대는 인간 승리 요소로 가득하다. 아직도 다 말하기 어려운 듯한 어려웠던 가정 형편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 외모는 정치인으로선 큰 복이다. 낙선한 직후 옷깃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출연한 방송에서도 그는 전혀 위축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여당 내에서 소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소장파 의원이란 점도 언론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소수자를 응원하는 심정이든 아니면 김해영의 목소리를 빌려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키우려는 쪽이든 김해영은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적인 성향의 언론들에게도 우호적인 평을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는 언론이 그에게 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말은 대중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았고 언론이 원하는 말을 적시에 터트리는 감각이 탁월했다.

그의 이런 모습이 화장하거나 분칠한 얼굴일 수 있다. 혹시 언론에서 모르는 그의 또 다른 얼굴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언론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촉을 가진 유권자들이 그의 허상을 날카롭게 추궁한 것은 아닐까. 그는 옳은 말을 했고 성실했고 부지런했다.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가 그러하고 그의 의정 활동과 관련된 수치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김해영의 낙선은 금태섭의 실패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언론의 평가와 유권자의 평가가 어긋났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부분은 언론인들이 계속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지방 출신 초선 정치인이 가졌던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20대 당선되고 국회에 들어와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저는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부산 출신 빼고는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당선자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서로를 잘 아는 사이들이더라고요."

4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그에게 몇 차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었는데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몇 사람 이름을 말하긴 했는데 그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4년 동안 국회에서 누구와 나란히 서서 무엇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누구와 연대하거나 힘을 합하거나 어떤 그룹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많지 않았다. 금태섭이 궁지에 몰리고 조응천이 당 내외에서 집중포화를 받았을 때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힘을 보태거나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는 말을 별로 들은 적이 없다.

여론이 주목한 그의 몇몇 정치적 발언은 그의 독자적인 행동이었다. 동료들과 치밀하게 상의하고 조직된 행동은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언론의 박수를 받긴 했는데 산발적이었다. 그가 열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그를 편들고 옹호하는 동료 의원들이 많았던가? 쳥년 당원들이 나서 그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선 적이 있었던가? 민주당의 선배 정치인들이 김해영은 우리당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자, 미래를 담보할 인재라고 그를 옹호하고 격려하는 소리가 있었던가?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0일, 김해영은 작심한 듯 준비한 글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99명이 '예'라고 해도 잘못된 일에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수(選數)에 주눅들지 말고 본인의 생각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국회의원이 도리입니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를 강하게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를 낮은 자세로 섬기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선거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해영의 이 준비된 발언은 잔칫집에 재 뿌리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었다. 얼마나 절실했길래 김해영은 이 말을 작심하고 한 것일까. 민주당 안에서 그가 느낀 좌절감이 그리 컸나? 작심 발언을 한 이유를 물었더니 이 말을 꼭 민주당 당선자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야를 넘어 모든 당선자와 정치 지망생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필자는 이 순둥이 같은 얼굴을 한 정치인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래디컬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가 자신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적도 없었고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 급진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치권, 특히 민주당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의원들이 없다 보니 그의 상식적인 발언이 크게 들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가 교신하기를 꿈꾸는 대상은 특정 정파나 특정 세대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민주당 안에서 적극적으로 연대를 추구하지 않은 것도 그와 한 묶음으로 거론되던 정치인들이 겉으로 보기엔 같은 색깔인 듯하나 사실은 그 결이 다르고 뿌리를 파보면 더 다르다고 그 자신이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국회는 낙선한 의원들에게 오는 15일까지 의원회관 방을 비워 달라고 요청했다. 김해영 의원실도 이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이사를 준비하는 것, 옮겨갈 곳이 마땅치 않은 짐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낙선을 거듭거듭 실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통증은 마취가 풀린 뒤에 시작된다. 선거의 열기, 흥분, 환호, 깊은 탄식과 눈물은 고통을 잠시 잊게 한다. 눈물이 마르고 위로 인사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이다. 그의 얼굴이 밝다고 해서 고통이 없을 리 없다. 지금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고통과 좌절의 시간일 것이다.

낙선 후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언론은 늘 새로운 인물을 갈구하는 변덕스런 존재다. 그에게 오래 시선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진정한 위로는 그를 청년 정치의 기수라고 여기는 후배 정치인들이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각 정당은 몇몇 청년들에게 마치 시혜를 베풀듯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줬다. 자신의 힘이 아닌 당의 은덕을 입어 국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들에게 김해영이 걸어온 길은 자신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낙선한 김해영을 꼽는 후배 정치인들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4년은 그의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시간, 그의 그릇의 크기를 검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가 반짝 스타였는지, 웅숭 깊은 거인의 싹을 갖고 있는지를 유권자들이 4년 후에 판단할 것이다. 그가 꿈꾸는 정치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걸맞는 내용들로 자신을 채워 나간다면 이 급진적 청년 정치인에게 원외 4년은 보약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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