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2020 '도약' 노리는 황인범…'도우미' 자처한 기성용과 아저씨들

[취재파일] 2020 '도약' 노리는 황인범…'도우미' 자처한 기성용과 아저씨들
축구대표팀 '벤투호'의 황태자, 황인범(24)의 새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출발이 괜찮습니다. 붙박이 주전으로 풀타임 출전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엔 LA갤럭시 원정에서 시즌 첫 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지난 시즌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던 밴쿠버가 초반부터 '대어'를 잡은 셈입니다. 황인범은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습니다. 전반 26분 왼쪽 측면에서 골문을 향해 예리한 프리킥을 올렸는데, 로즈의 헤딩이 크로스바를 때린 장면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지난해 10월 일찌감치 시즌을 마친 뒤 5달 동안 잔뜩 벼른 시즌입니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에서 벤투호의 우승을 이끌며 반전의 신호탄을 쏜 황인범은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삼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폭발력과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쏟았습니다. 훈련이 한창이던 지난 1월, 황인범을 만났습니다.

● "동아시안컵 우승 이끈 두 골…조기축구회 아저씨들 덕분"

황인범에게 2019년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해였습니다. 미국 무대에 진출했고, 대표팀에선 기성용의 빈자리를 채울 대체자로 벤투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MLS시즌(Major League Soccer, 미국과 캐나다의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이 일찍 끝난 탓에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10월 평양원정, 11월 레바논 원정에서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습니다. 인조잔디에서 하는 개인훈련만으로는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12월 동아시안컵을 앞두고는 일단 훈련 장소부터 바꿨습니다. 대전월드컵 보조구장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곳에 특별한 도우미가 합류했습니다. 아버지가 소속된 조기축구회의 회원, 아저씨들이었습니다. 평일 오후 1~2시. 아저씨들은 생업을 제쳐놓고 모였습니다. 연습 상대가 되어주고, 빗나간 슈팅을 주워 날랐습니다. 홍콩과 1차전 프리킥 골장면, 한일전 결승골이 된 중거리 슛은 이렇게 연습한 결과였습니다.

"아저씨들이 아무리 축구를 좋아하신다고 해도, 또 친구 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하더라도 평일 낮에 그렇게 시간을 내주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덕분에 프리킥 연습, 또 중거리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렇게 훈련한 게 실전에서 오랜만에 나온 것 같아요. 정말 정말 감사하죠."


● 기성용의 전화 한 통…"힘을 키워라"

동아시안컵이 끝난 뒤에도 황인범은 쉬지 않았습니다. 기성용의 전화 한 통이 자극이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레바논전이 끝난 뒤 (황)희찬이와 같은 방에서 쉬고 있을 때였어요. (기)성용이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조심스럽게 말하셨지만 내용은 분명했어요. '형이 보기에 파워를 좀 키우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 '몸무게도 조금 늘려보면 어떻겠냐'고 했죠. 저 역시 느꼈던 부분이었는데 평소 존경하던 형이 해주는 말이니까 더 와 닿았죠. '동아시안컵 끝나면 잘 채워보겠습니다'고 대답했어요."


기성용은 단지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을 도와줄 지도자를 소개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황인범을 도왔습니다. 겨우내 기성용과 황인범의 피지컬 훈련을 도운 홍정기 차의과대학 교수는 "황인범 선수가 기성용 선수에 비해 왜소해 보이지만 실제로 측정해보니 근기능이 굉장히 좋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교수는 그래서 근육량을 늘리기보다는 근육을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추천했습니다. 황인범은 힘을 폭발하는 방법을 익히는데 집중했습니다.

"(황)희찬이처럼 근육이 크지 않다 보니까 제가 피지컬이 안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관절의 민감도를 높이면 힘을 몰아 쓰고 스피드 지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일단 이해하기보다는 믿고 따르고 있어요. 저도 달라진 제가 기대돼요."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황인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독일 관심…"꿈의 무대 꿈꿔요"

1996년생, 쥐띠 황인범은 올해 새로운 도전을 노립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 등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온 가운데, 여름엔 유럽 이적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동갑내기 '절친' 황희찬과는 꿈을 공유했습니다.

"희찬이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유럽 챔피언스리그 활약 모습을 보면서 제 꿈도 좀 변했어요. 꼭 빅리그가 아니더라도 유럽 대항전에 나갈 수 있는 팀으로 간다면 거기서 또 점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무조건 더 좋은 나은 선수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황인범은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겨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풀어냈습니다. 언변이 화려한 건 아니었지만 들을수록 곱씹을 말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훈련 시간이 다가와서야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꿈을 말했습니다.

"지금 저에 대한 평가, 축구 선수로서 평가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저도 은퇴하는 순간이 오겠죠. 그때 많은 팬들이 은퇴를 아쉬워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 많은 팬들이 (구)자철이 형이나 성용이 형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죠. 축구로 많은 분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 특출나기보다는 묵묵히 항상 준비하고, 낮은 자세로 노력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