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염전 노예 국가배상 판결 이후…외면받은 사람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19.12.03 11:00 수정 2019.12.03 11: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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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승소한 분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염전에 갇혀 있었던 수십 명의 피해 장애인분들께 뒤늦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전 이맘때, 염전 노예 국가배상 판결 선고를 듣고 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내가 한 말이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에서 패소했던 피해 장애인 세 명의 손을 들어주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바람대로 이 승소 판결문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일단 승소 판결을 받고 기뻐했던 세 분은 보름도 채 안 돼 피고 대한민국의 상고장 접수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법무부는 2017년 국가송무심의위원회를 만들면서 국가소송에 있어 상고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이 사건에서 지켜지지 않았고, 2019년 4월 5일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이 날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렇다면 이 판결문은 승소한 세 분 이외 그 당시 염전에 갇혀 있었던 수십 명의 피해 장애인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다른 분들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배상 항소심 도중 밝혀진 사실들을 떠올리면 다른 피해 장애인을 위해 대책도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국가배상 항소심 과정에서는 신의파출소에서 2009년 2월 20일부터 2010년 7월 15일까지 근무했던 경찰관의 서면 증언이 나왔다. 그 당시 파출소에서는 염전 노동자가 섬에 들어올 때 신상을 파악하여 신상면담부를 작성하고 전남지방경찰청 내부망에 등록하였으며, 목포경찰서에서 분기에 한 번씩 염전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이 있는지를 조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염전 종사원 신상면담부'의 존재나 목포경찰서 차원의 일제조사를 전면 부인했던 피고 대한민국의 소송 수행자는 이 증언이 나온 뒤에야 관련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하지만, '염전 종사원 신상면담부'는 2015년 7월 폐기하였고, 전남지방경찰청 내부망에 등록된 신상면담 기록 내용도 삭제하여 남아있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국가배상 항소심에서 밝혀진 내용대로라면 그 당시 염전에 갇혀 있었던 피해 장애인들 대부분이 국가배상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다시 피해 장애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것일까? 승소판결문이 그 당시 갇혀 있었던 모든 피해 장애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국가에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국가배상소송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 '염전 종사원 신상면담부'를 확보하는 것이다. 전산에 기록된 내용이 삭제되었다고 하는데, 의지만 있다면 포렌식 기술 등으로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신상면담부를 통해 2014년 2월 당시 발견되었던 피해자와 대조하여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와 처벌을 피해간 가해자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제 그 당시 피해 장애인을 섬에서 빠져나오게 하여 목포에 있는 여관에 감금했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둘째, 신의파출소에서 '염전종사원 신상면담부'를 기록하고 보관하였으며, 목포경찰서에서 1년에 3~4차례 일제단속까지 벌였음에도 피해 장애인 수십 명의 인권침해사실을 2014년 2월까지 발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여야 한다. 그래야 재발방지대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염전 노예사건과 유사한 장애인 노동력착취사건이 2018년 상반기에만도 27건 발견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셋째,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김남현 전남지방경찰청장은 신안군 염전 노예 피해 장애인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건 사과에 그칠 일이 아니다. 국가배상법 제12조 제2항에는 손해배상의 원인을 발생하게 한 공무원의 소속기관 장은 피해자를 위해 국가배상신청을 권장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이라도 김 청장은 배상을 받지 못한 수십 명의 피해 장애인에게 국가배상 신청절차를 안내하고, 소송이 아닌 배상심의회 결정을 통해 피해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시 1년 전 국가배상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이 판결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피해 장애인들에게도 위로가 되길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년 동안 그러하질 못했다. 이제 내년 2월이면 그분들이 염전에서 탈출한지 6년째가 된다. 이제라도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시행하길 촉구해본다.

※ 염전 노예 사건 : 2014년 전남 신안군 등의 염전에서 일하던 장애인들이 수년간 노동력 착취와 감금·폭행 등을 당했다고 호소하면서 알려진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경찰과 지자체가 피해를 방관했다"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염전 노예 사건 국가배상에 대해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122회(2018년 5월 5일 방송,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신안 염전 노예 63인')를 통해 방송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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