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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초등생 겨냥한 펭수, 어떻게 '2030 아이돌' 됐나?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초등생 겨냥한 펭수, 어떻게 '2030 아이돌' 됐나?
얼마 전, 친한 50대 부장님이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인싸 용어는 무엇이냐 물으시더군요. 저는 짤방 하나를 보내드렸습니다. "펭-하!" 부하직원들에게 이렇게 인사하면 되냐시길래 "아뇨. 절대 안돼요. 놉 네버"라는 답장과 함께, 또 한 장의 짤방을 보내드렸지요. 바로 아래 사진을요.

펭수 눈치챙겨 (사진=EBS 아이돌 육상대회 유튜브 캡처)

어쩌면 다들 아실, EBS의 새로운 최고존엄(?) 펭수 이야기입니다. 나이는 10살이지만, 키와 목소리는 절대 10살이 아닌, 하는 행동은 더더욱 10살이 아닌 새로운 타입의 캐릭터지요. 고향은 남극. 최종학력은 남극유치원 졸. 뽀로로와 방탄소년단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한 이주민 조류. 등장한지 채 1년도 안되어 뽀로로의 아성을 밀어내버린 불타는 신인 펭귄입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친구의 핵심 팬층은 어린이가 아닙니다. 20대와 30대, 그중에서도 직장인들이 가장 열광적이지요. 이 꼬마 펭귄의 유튜브 자이언트펭 TV는 반년이 채 안되어 70만 구독자를 넘어섰습니다. 100만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EBS에서 갑자기 왜 청년층을 타깃으로 잡았느냐고요? 아닙니다. 이건 제작진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지요. 당초 기획 단계에서는 기존 뽀로로 팬층 어린이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 청소년과 어린이의 경계에 있는 초등 고학년을 위한 캐릭터로 기획되었습니다. 막 사춘기가 오는 그 나이대의 특징인 직설적인 말투, 거침없는 행동을 입혔을 뿐인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성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게 된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회사로 치면 1년차 신입사원 또는 인턴 정도의 위치인 이 녀석은 거침이 없습니다. EBS 사장님 이름을 막 부릅니다. "구독자 이벤트는 김명중(EBS 사장)의 돈으로 선물을 주겠다"라고 하거나 "맛있는 건 참치,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다 EBS에서 잘리면(?) 어쩌냐는 걱정엔, SBS 등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 거침없이 출연하며 '나 잘리면 갈 곳 많음'을 몸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거침없는 모습을 보며 직장인이 느끼는 대리만족감이 이해되시나요? 마음으로만 생각하던 감정들을 마구 표현해버리는 대상을 보았을 때의 시원함 같은 것이지요. 하루 대부분 선을 넘지 못하고 감정과 표현을 억누르고 지내는 한국사회 초년생들에게 말입니다. 펭수가 내뱉는 "어쩌라고?", "심기 불편", "실성했습니까?" 같은 속 시원한 말들은 짤방으로 재생산되고, 2030은 그 짤방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설정해놓으며 작은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올해는 이렇게 펭수의 탄생을 중심으로 유튜브 시장에서 새로운 '2030의 아이돌'이 크게 활약한 한해였습니다. 기존의 먹방, 게임방송 등이 주춤하는 사이, 단 3편의 영상으로 유튜브 여신으로 등극한 소련여자와 방송인 장성규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의 인기 요인인 '거침없는 표출'은 지금 2030이 가장 갈구하고 소구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 그 어떤 감정이든, 표현이든 가리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주는 대리만족의 힘이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슬픔과 기쁨, 분노와 즐거움 등이 반대적 의미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마음건강 측면에서는 어쩌면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픔, 기쁨, 분노, 즐거움 모두 '건강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표현함'과 '억누름'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닐까요?

희로애락 그 어떤 것이든 스스로 눈치 보며, 억누르며 살아가기에 바쁜 우리들에게, 저들이 멋져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내면에 봉인된 '표현의 욕구'를 조금 더 끄집어내 보이는 존재를 보며 "내게 필요한 것은 저것이었다"는 깨달음과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의 마음은 아닐까요?

(사진=연합뉴스, E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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