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과 경보 경기의 개최 도시 변경과 관련해 지난 10월 30일부터 사흘간 IOC의 조정위원회 존 코츠 위원장이 도쿄를 방문해 협의를 가졌습니다. 협의의 하이라이트는 IOC 측과 도쿄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일본 정부와 어제(1일) 가진 4자 회담이었습니다. 이미 '삿포로 개최'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도쿄를 방문한 IOC 측은 도쿄도 측의 반발만 무마하면 사실상 성공인 상황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선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IOC의 삿포로 변경 이유에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았고, 대회 전체의 준비를 위해 '어디가 됐든 빨리 결정하자'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담당상)는 4자 회담의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논의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쿄도 측의 '몽니'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오후에 열린 4자 회담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IOC의 (삿포로 개최) 결정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종 권한을 가진 IOC의 결정을 방해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말하자면 삿포로 개최 결정은 '합의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면서 뒤끝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도쿄도의 입장에서 보면 IOC가 자기들과 사전 협의 없이 결정을 내려놓고 이를 '강요'한 것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그렇다면 개최지로 도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지, 얼토당토않게 후쿠시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도호쿠 개최'를 언론에 흘린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도쿄도가 가장 강력하게 제안한 대안은 마라톤 출발 시간을 이미 앞당긴 새벽 6시보다 더 앞당기는 방안이었고, '도호쿠 개최안'은 한 번 언론이 병렬식으로 다룬 이후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도쿄도의 '저의'가 의심된다는 겁니다. 꼭 마라톤 개최 도시를 변경해야 한다면 IOC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그게 어디가 됐든지) 도쿄도가 결정하겠다는 게 '몽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앞서 4자 회담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일본 정부는 이번 논의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정부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도쿄도는 올림픽 개최 도시면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는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넘어 '우익'에 가까우므로 아베 총리와 그 뒷배인 '일본회의'의 입장에서는 넓은 의미로 '같은 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좁은 의미로 고이케 지사는 자민당의 독재 체제, 특히 그 핵심인 아베 총리의 시선에서 보면 '문제적 인물'입니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2016년 전임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의 낙마로 치러진 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으로 입후보하려고 했지만 자민당 측의 거부로 실패하고 독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그 뒤 '중도 보수'를 외치며 '희망의 당'을 창당했지만 역시 자민당의 견제로 당세가 흐지부지되면서 중앙 정치판에서의 입지도 많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일본 정부(즉, 아베 총리)로서는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경기를 도쿄가 아닌 삿포로에서 여는 것에 크게 반대할 이유도 없고(이유가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선수 보호'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고이케 도지사가 '굽히는' 그림으로 정리되는 것이 가장 바라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막강하기 그지없는 IOC의 결정사항을 처음부터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 개최도시의 장(長)으로 개최가 다가올수록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고이케 지사를 견제하는 정치적 효과만 얻는다면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라는 판단도 정부 내부에 흐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