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가해자 없는 왕따의 장례식장에서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19.10.30 11:00 수정 2019.10.31 13: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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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체로 제 직업에 보람도 느끼고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정말 더 이상은 못 하겠어" 생각하며 무너져 버릴 때가 있지요. 바로 제게 상담을 받았던 아이들의 부고를 받을 때입니다. 세상이 힘들어 떠나지만, 유서에 그래도 고마웠던 사람의 리스트를 남길 때 가끔 제 이름이 나오면 유족들이 연락을 주시곤 합니다.

1~2년에 한 번쯤, 그렇게 장례식에 갑니다. 어떤 친구는 온라인으로만 상담했어서, 그곳에서 처음 영정으로 만나는 친구도 있습니다. "아, 이 친구는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 티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구나." 멍하니 쳐다보곤 합니다.

어떤 날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나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걸까. 무력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를 둘러싼 환경에도 화가 납니다. 이렇게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청년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그 내밀한 이야기의 내막을 저는 전해 들었으니까요.

대부분은 '관계'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학창 시절 내내 냉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가족의 말이 너무 차가운 비수가 되어 그들을 찌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겁니다. "나에게 집중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던 정혜신 정신의학전문의의 말을 뒤집어 보면, 더 이상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고, 어쩌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고 느낀 거겠지요. 그들은.

그들의 빈소에 저는 대체로 혼자 갈 수밖에 없지요. 상담이라는 특수한 관계로 만나 같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사실 그 친구들의 빈소에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다른 때라면 혼자 간 빈소에서는 빨리 나옵니다만, 그 친구들의 빈소에서는 꽤 오래 앉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아니까요.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드문드문 조문객이 옵니다. 그리고 제 눈이 똥그랗게 떠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극단적 선택을 한 청년의 장례식에 직장 동료들이 단체 조문을 오거나, 학교 동아리 사람들이 오거나 뭐 그런 순간들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가만히 봅니다. 그들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니,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 혼자 '무슨 낯으로 온 거냐' 싶어서, 괜히 새빨개진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들은 무슨 낯으로 왔을까. 사실은 고인이 자신들 때문에 숱한 밤을 지새운 걸 알까? 안다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일 수 없겠지? 아니, 자신들의 집단 때문에 고통받은 건 알아도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려나?'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건 대체로 그들의 모습에서, 표정에서, 움직임에서 조의는 있으되 두려움이나 죄책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명 한 명은 전혀 가책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런 건 아니야'라고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인 것처럼 보일 만큼요. 아니, 아예 인지 자체를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고인의 '그 팀'이 맞는데, '그 동아리' 아이들이 맞는데, 분명 상담에서 숱하게 들었던 그 가해자들이 맞는데, 그들은 진심으로 "너무 안됐다", "정말 부모님 너무 힘드시겠다"고 말하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곤 합니다. 자신이 그 가해자 중 하나라는 걸 모르니까 진심으로 애도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 또다시 한 젊은이가 죽었습니다. 미소가 예쁘고, 자기를 표현하기 좋아하고, 재능이 많던, 그리고 전 국민이 다 아는 알려진 청년이었지요. 그녀는 타인의 숱한 말과 비난에 고통받았고 그것이 그녀를 떠나게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죽음에 아무도 책임진 사람은 없습니다. 인터넷 세상에 흩뿌려진 숱한 키보드 두드림의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 그녀의 죽음을 접하며 내담자의 장례식에 갔던 그날들, 가해자들을 직접 마주치고야 말았던 장면들이 떠올라 더 슬펐습니다. 어쩐지 묘한 기시감마저 들더군요.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직장의 집단 괴롭힘이든, 손가락으로 두드려 만든 대중의 폭언이든 끝은 결국 같습니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그 지점 말이지요. 집단이 모여 개인을 짓뭉개면, 끝내 그 개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순간조차도 죄의식이 없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가해자도 없이 상처만 남은 그들은 도대체, 왜 떠난 걸까요? 누가 그들을 떠나게 한 걸까요? 애도를 표하는 '우리' 중엔 정말, 진심으로 가해자는 없습니까?

(사진=SM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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