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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삿포로 싫다고 후쿠시마에서 마라톤을?

도쿄 도(都)의 '폭염 올림픽 마라톤' 대책 논란

[취재파일] 삿포로 싫다고 후쿠시마에서 마라톤을?
지난 1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내년 여름 도쿄올림픽의 남녀 마라톤과 경보 경기를 도쿄가 아닌 홋카이도의 삿포로로 옮겨 개최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IOC는 지난 10월 6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면밀히 주시했는데, 더위 대책으로 마라톤 등의 경기 시간을 야간으로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포기하는 선수가 속출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무덥고 습한 도쿄의 여름 날씨 때문에 이미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유치 당시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하기로 했던 마라톤 경기 시간을 새벽 6시로 앞당긴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OC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니 아예 장소를 삿포로로 옮기는 계획을 조직위와 도쿄도에 제안하고, 제대로 협의가 오가기 전에 '기정사실화' 한 겁니다.

도쿄의 더위가 어떻길래 IOC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걸까요. 현재 일정으로는 도쿄 올림픽의 남자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건 2020년 8월 9일 오전 6시입니다. 올해의 경우 같은 날 같은 시각의 도쿄 기온은 섭씨 27.5도, IOC가 대안으로 제시한 삿포로는 22.7도입니다. 약 5도 가까이 낮으니 확실히 삿포로의 환경이 쾌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IOC 바흐 위원장도 삿포로 변경안을 발표하면서 "선수의 건강 보호가 최우선적인 목표"라는 설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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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가 개최지를 변경한다면, 먼저 도쿄 조직위와 도쿄도 측의 '양해'를 얻은 뒤 IOC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도쿄 조직위 측은 '선수 보호'라는 대의에 따라 양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도쿄도는 아직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조직위와 도(都)가 IOC의 변경안을 놓고 내부에서 대립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지난 18일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도 "협의도 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IOC의) 제안이 튀어나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쿄에서 (마라톤 등을) 개최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나마 이건 다소 정제된 발언이고, IOC의 발표 직후에는 "그럴 거면 북방영토-러시아와의 반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오호츠크해 도서 지역 4개 섬-에서 하지 그러냐"라는 날 선 발언까지 했습니다.

도쿄 조직위도 '도쿄도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어중간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도쿄도 측은 마라톤 경기를 삿포로에서 개최하자는 IOC의 제안에 어깃장을 놓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24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도에서는 두 가지 '대안'을 다시 IOC에 제안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도쿄 2020올림픽 주요 경기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먼저 원래대로 도쿄에서 개최하되, 출발 시간을 1시간 더 앞당기는 방안입니다. 그렇게 되면 새벽 5시가 출발 시간이 되겠죠. 8월 9일의 평균 기온을 감안하면 기온이 30도가 되기 전에 2시간여가 소요되는 경기를 끝내버리자는 겁니다. 현재 신축 중인 도쿄 시내 요요기의 신(新) 국립경기장을 출발해 아사쿠사와 긴자, 왕궁 등 도쿄 시내의 명소를 통과하는 42.195km의 마라톤 코스도 이미 결정됐고, 경기 관람 티켓도 판매가 끝났습니다. 게다가 각종 물품 조달, 자원봉사자와 경기 관계자들의 숙소 확보, 테러 대응 대책 등이 도쿄 경기를 상정해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개최도시 변경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반영된 대안입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도쿄도 내부에서 나온 두 번째 대안입니다. 도쿄 올림픽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일본의 '부흥(복구)'를 상징하는 의미도 담고 있는데, 이를 살려(?)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자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는 않고 있지만 도호쿠 지역이라면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후쿠시마현을 포함해 아오모리, 이와테, 아키타, 미야기, 야마가타 현입니다. 특히 태평양 연안인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지역은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피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곳들입니다. 이미 올림픽 성화 봉송으로, 또 올림픽 야구와 소프트볼 일부 경기 개최(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로 이미 논란이 된 이 지역에서 어쩌면 마라톤과 경보 경기까지 열릴 가능성이 생긴 셈입니다.
도쿄 2020올림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수 보호'의 관점에서 나온 IOC의 삿포로 개최안에 대해 도쿄도가 '일단 반발'하는 것은 개최도시의 입장에서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삿포로시는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쿄도의 대안, 특히 두 번째 '도호쿠 지역 개최안'은 'IOC가 삿포로를 제시했으니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일종의 '몽니'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부흥 올림픽'이라는 명분은 끼워 넣었지만 도쿄도가 당초 '삿포로 개최안'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제시했던 숙소 문제, 대테러 대책 등을 감안하면 도호쿠는 삿포로에 비해서도 인프라가 부족한 게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도쿄도가 경기 시간을 조정하더라도 '도쿄 개최안'을 고수하면서 IOC와 협의를 해보겠다는 입장을 정리한다면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IOC의 조정위원회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그리고 도쿄도는 오는 30일부터 사흘 동안 도쿄에서 조정 회의를 갖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라톤 경기 관련 계획에 대한 협의가 가장 큰 초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도쿄도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입장을 정리할지, 특히 도쿄도의 '도호쿠 개최안'에 대해 IOC 측은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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