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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 법원, 국민 신뢰도 최하위…직접 겪어보니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인-잇] 한국 법원, 국민 신뢰도 최하위…직접 겪어보니
대한민국 법원은 OECD 국가 중 국민 신뢰도가 최하위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법원을 신뢰하는 사람은 판사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왜 우리는 법원을 신뢰하지 않을까? 가끔씩 언론에 보도되는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 때문일까? 나는 사건 당사자들이 법원에서 경험하는 불친절함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만날 때마다 약속시간을 어기고, 만나기로 한 날짜에 임박해 일방적으로 약속을 미루면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할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겪는 이야기이다. 다만 이런 말을 하면 사건 결과에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차마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일 뿐.

첫 번째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문제다. 재판부는 사건 당사자에게 구체적인 변론 시간을 지정해 통보한다. 변론 시간은 재판부가 사건 당사자에게 한 약속이다. 그런데 약속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루에 여러 사건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도 있겠지만, 애초에 약속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진지하게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난 3월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9호에서 겪은 일이다. 오후 3시 36분경 동료 변호사로부터 이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후 3시 50분 재판 위해 법원 왔는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오후 2시 50분 재판이네요. 이거 한 시간은 더 걸리려나요. 불안해서 다시 사무실로 갔다가 오기는 좀 그런데..." 혼자 기다리는 동료를 찾아간 오후 4시 30분에도 아직 오후 3시 30분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고, 법정 앞은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앞에 아주 중요한 사건 처리 때문에 사건이 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법정 앞에 붙은 '오늘의 재판안내'를 훑어보면서, 우리는 애초에 판사가 약속시간을 지킬 마음이 있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최정규 인잇 표
판사는 1시간 20분 동안 무려 46건의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리와 한 약속을 지키려면 모든 사건을 건당 2분 이내로 종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애초에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런 식의 일정을 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변호사야 이게 직업이니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것을 감내한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에게 1시간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재판시간을 준수하지 않은 판사의 이런 식의 불친절함은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까?

판사라면 당연히 재판 당사자를 배려할 의무가 있고 자기가 약속한 변론 시간을 준수하는 것도 그 의무 중 하나일 텐데, 어쩔 수 없이 지키기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지킬 생각이 없어 발생하는 재판 지연에 대해서는 최저시급 8,350원이라도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버스, 기차, 비행기의 출발시간 지연의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약속 날짜 변경의 문제다. 형사사건에서 재판부는 공판기일을 미리 지정해 재판 당사자에게 통지한다. 공판기일은 재판부가 재판 당사자에게 한 약속이다. 재판 당사자는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그날의 일정을 비워둔다. 직장인이라면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휴가를 냈을 것이고, 자영업자는 그날 가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태도는 어떤가.

최근 1심에 무죄를 받고 검찰이 항소를 한 사건을 맡아 변론을 맡고 있다. 검사는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겠다며 증인을 신청하였고, 재판부는 그 증인에게 먼저 진술서를 받아 제출하면 증인 채택 여부를 고려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후 공판검사는 제출하겠다는 진술서는 제출하지 않고 공판기일에 임박하여 두 차례 기일 변경신청서만 제출하였다. 9월 6일에 잡힌 공판기일을 앞두고는 4일 전에, 10월 16일 잡힌 공판기일을 앞두고는 2일 전에 제출된 검사의 공판기일 변경 신청을 재판부는 모두 허가해 주었다. 두 번 모두 전화 한 통으로 변경 사실은 통보되었고, 그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우편으로 송달받은 공판기일 변경 통지서에도 변경 이유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공판기일 변경이 재판부와 공판검사 입장에서는 그 날 진행되는 수십 건의 사건 중 하나를 그날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 일방적 약속 파기 때문에 여러 계획들을 다 따라서 수정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재판 관련 일정은 특별하고 중요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판기일 변경은 신중해야 하며, 어쩔 수 없이 변경하는 경우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게 마땅하다.

법원에 대한 비판은 자칫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을 위한 독립이지 법관 스스로를 위한 독립이 아니다. 약속시간과 날짜를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과 더 친절한 공공기관으로 거듭나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법원이 더 진지한 답변을 내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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