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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직도 포기 못한 상명하복 '검사동일체'

문제의 '지침'을 '블랙리스트'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취재파일] 아직도 포기 못한 상명하복 '검사동일체'
검찰을 관철하는 단어가 있다.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다섯 글자에 불과한 이 원칙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지금의 검찰을 만든 단어라고 여겨도 될 만큼이다. 2004년 검찰청법 7조 명칭이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검찰사무 지휘 감독'으로 바뀌고, '명령'과 '복종' 표현도 삭제됐다. 표면적으로 다섯 글자는 자취를 감췄지만, 다른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법무부 예규 1146호)'에서다.

● 7년 만에 공개된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

국회, 법무부, 검찰을 통해 해당 지침을 확보하려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비공개"였다. 지침의 잠재적 적용 대상군은 전체 검사이지만, 지침의 접근 권한은 오직 법무부 검찰국 소수 검사에게만 있을 정도로 은밀했다. 문제의 지침은 MB 정부인 2012년 6월 권재진 법무장관 시절 만들어져 올해 2월 28일 폐지됐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7년 넘게 법무 검찰이 감춰왔던 지침을 국감장에서 공개하면서, 그동안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함께 드러났다.
법무부 국정감사 검찰 블랙리스트 의혹 제기
'비위 발생 가능성이 있거나, 업무수행이 불성실한 검사를 집중 관리 대상 검사로 선정 관리해 검사의 복무 기강을 확립'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 1조 목적>

이 조항만 보면 얼핏 지침의 취지와 목적은 정당해 보이지만, 선정 기준과 관리 방법을 들여다보면 '불순한 의도'는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철희 의원의 발언대로 "검찰판 블랙리스트"로 볼 수밖에 없는 조항들이 열거돼 있다.

'평소 성행 등에 비춰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자'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 또는 해태한 자'
'동료 검사나 직원과 자주 마찰을 일으켜 근무 분위기를 저해하는 자'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 <지침 2조 선정 사유>


비위를 저지른 검사가 아닌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검사'는 물론,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검사도 관리 대상이 됐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선정 기준에 따라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검사들은 지침 3조 1항에 따라 '대검으로 송부'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시작된다.

대검은 관리 대상자에 대한 직무감사 결과, 세평, 근무 태도 등 집중 감찰 결과를 서면으로 법무부 검찰국장에 통보 <지침 3조 관리 절차 3항>

법무부가 선정한 검사들은 집중 감찰을 받고, 그 결과는 '지침 3조 5항'에 따라 '검사 적격심사 및 인사에 반영'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법무부 국정감사 검찰 블랙리스트 의혹 제기
● 타깃 수사보다 더 무서운 '집중 관리 선정'…이의제기도 반박 기회도 불가

'지침의 목적'은 선정 목적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지만, '선정 기준과 관리 절차'는 정반대를 말해주고 있다. 비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나 근거도 지침엔 없다.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는 무엇이고, 정당치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 길도 없다.

절차도 문제다. 지침에 따르면, 조사가 이뤄진 뒤 '집중 관리 대상'이 되는 게 아니다. 법무부가 '집중 관리 대상 검사'로 선정만 하면, 대검은 세평 수집 등 전방위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쉽게 말해, 타깃 수사다. 혐의를 발견해 수사에 착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정해 혐의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타깃 수사보다 지침이 더 무서운 이유는 불투명성이다. '집중 관리 대상 검사'들은 자신이 세평 수집과 조사 대상인 집중 관리 검사인지조차 알 수 없다. 최소한의 변소나 방어, 이의제기를 할 기회와 절차도 지침은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다. 한 검사가 상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채 특정 사건을 기소하지 않았다. 상관은 정당하지 않은 지시 불이행으로 여겼지만, 검사 입장에선 정당한 지시 거부였다. 그런데도 이 검사는 '관심 검사'로 낙인찍히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문제적 검사'로 분류된 그는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지만 그 사유조차 알 수 없다. 이 모든 게 '집중 관리 대상 선정' 행위 하나로 가능한 일이다.

● 검찰국장 한 마디로도 가능…누구나 '문제적 검사'가 될 수 있다

'집중 관리 대상 선정'이라는 막강한 권한은 검찰 내 '빅 4중' 한 명인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부여돼 있다. 선정 권한도, 조사 지시 권한도, 인사 불이익 권한도, 관리 대상 기간 연장 권한도 전부 검찰국장에게 있다. 심지어 검찰국장은 '긴급하게 집중관리가 필요한 검사를 발견하면 언제든지 관리 대상자로 선정(3조 2항)'할 수도 있다. 검찰국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문제적 검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역대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 검찰국장은 '청와대 몫'으로 분류돼 왔다. 법무장관의 복심이라는 보직의 특수성을 넘어 잠재적 검찰총장 후보군이었다. 현 정부에선 금지시켰다지만, 전국 검찰청에서 이뤄지는 수사 보고까지 수시로 받았다. 때문에 청와대에서 특히 신뢰할 수 있는 검사장만이 갈 수 있는 자리가 검찰국장이라는 게 통설이다.

이런 탓에 정권의 부당한 입김을 고스란히 받았고, 이를 '검사 인사'에 반영해 실현시켰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문제의 지침이 검찰 블랙리스트의 근거"라는 비판이 커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검찰
●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검사…복종에 길들여진 조직

지침이 공개된 후 대검은 "2012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검사 복무 관리 강화 차원에서 만든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지침의 내용만으로 이런 해명은 무색해졌다. 검찰 내부 사이트인 이프로스에서 검색도 되지 않아 검사들도 알 수 없는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 법무 검찰이 그동안 철저히 숨긴 이유는 간명했다. 이철희 의원 발언대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최소한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 있다. '복무 기강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만든 지침이 '검사동일체' 실현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지침에 근거해 상부 입장에서 불편한 검사를 언제든 솎아낼 수 있었고, 상부 명령에 순응하는 균질한 검사들로 채워나갈 수도 있었다.

검사동일체를 두고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필요성을 내게 이야기했었다. 법 조항에도 명시돼 있었으니 단순히 '나쁜 원칙'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고도 했다. 대표적 근거가 '통일적 법 집행을 위한 일사분란함'이었다. 어디서 수사를 받던 차이가 없어야 된다는 뜻이다. 그럴싸한 설명이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근거는 허약했다.

"잘못된 법 집행조차 모든 사안에 그대로 적용해야 할까", "상관이 잘못 판단해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위법한 결정에 이의 제기는 하면 안 되는 걸까" '검사동일체'는 검사들에게 이런 의문과 두려움을 심었다. 독립된 수사 기관을 자청했던 검사들은 복종에 익숙해졌다.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모난 돌'로 치부되는 조직 문화를 경험하며 본능적으로 순응하는 '둥근 돌'을 자처하게 됐다. 검사들은 길들여졌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검찰이다

검찰에서 통용되는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라는 말처럼, 모든 사건은 각자의 사연이 존재한다. 여기에 무미건조한 법 조항을 해석해 적용하는 건 검사들이다. 때문에 합리적 결론 도출을 위해 다양한 의견 개진은 필수적이다. 모든 증거가 CCTV 마냥 명확하지 않기에 일방적 판단은 오판의 지름길이었다. 검사동일체를 추구한 검찰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 집중 관리 대상 검사 명단이 공개돼야 하는 이유

법무 검찰(또는 정권이) 지침으로 구현하려 한 '바람직한 검사의 모습'은 단순 명료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검사'. 이를 통해 검찰은 대한민국 2천여 명의 검사를 '한 몸'으로 묶어 남다른 조직력을 키웠다. 이는 궁극적으로 검찰권 강화로 이어졌지만, 사회엔 어떤 이익을 남겼을까. 복종에 길들여진 조직에 남는 건 독선과 오만뿐이었다. 검사에겐 '검찰 지상주의'를 남겼지만, 그사이 검찰의 존재 가치에 대한 시민의 의문은 커졌다. 검찰이 수사 목적으로 내세운 정의의 회복마저 의심받게 됐다.

지침이 실제 '검찰 블랙리스트'로 활용됐는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문제투성이 지침만 공개됐을 뿐, 명단은 아직도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이철희 의원이 명단 공개를 요청하자,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집중 관리 대상 검사) 본인들이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작 명단에 있는 검사들조차 자신들이 집중 관리 대상 검사인지(였는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지침에 따르면, 법무부 검찰국장은 매년 1회 대검에 관리 대상 검사 명단을 넘겼다. 지난 7년 동안 얼마나 많은 검사들이 '문제적 검사'로 분류됐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이런 부당한 조치가 사건 처리에 어떤 악영향을 줬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순히 검사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검찰이 수사로 증명한 사법농단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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