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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의 권리·의무·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검찰개혁?

[취재파일] 국민의 권리·의무·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검찰개혁?
저는 어제(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 전 유일하게 완수한 검찰개혁 과제인 '특수부 축소 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법무부 대변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은 15일 국무회의에 특수부를 축소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을 상정하겠다고 했는데 이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거쳤냐고 물었습니다. 입법예고는 행정기관이 대통령령 등 행정법규를 개정하고자 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40일 동안 개정안을 공개해 국민이 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만약 입법예고 기간이 있었는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담당 기자로서 심각한 실책을 저지른 것인 셈이라 저는 대변인에게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 입법예고도 없이 추진된 검찰개혁 최우선 과제

법무부 대변인은 '특수부 축소 방안'을 골자로 한 대통령령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대통령령을 개정할 때 입법예고가 의무 사항 아니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행정절차법에 의무로 규정은 되어 있지만,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될 단서 조항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특수부를 축소하는 개정하는 행정기관 직제 변경 사안으로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행정안전부가 법제처와 협의를 거쳐서 입법예고를 하지 않고 바로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행정절차법을 찾아보니 41조 1항에 "법령 등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입법안을 마련한 행정청은 이를 예고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고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었습니다. 특히 3호에는 법무부 대변인이 소개한 "입법내용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 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이란 단서가 명시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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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문을 읽어본 뒤 저에게는 다른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조국 전 장관이 이 방안을 발표한 어제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인 이인영 의원은 검찰개혁이 "가장 중요한 국가 1호 과제"라고 선언했습니다. 검찰개혁에 모든 것을 걸었다던 조국 전 장관은 여러 개혁 과제 중 유일하게 '특수부 축소'를 위한 직제 개정안만 마무리하고 법무부를 떠났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여당이 "국가 1호 과제"라고 규정한 검찰개혁의 구체적 추진 목표 중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한 과제가 '특수부 축소'인 셈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추진한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 스스로 이 방안은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과제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검찰개혁 결과 '특수부 축소'뿐
●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국가 1호 과제?

그렇다면 당연히 의문이 제기됩니다. 도대체 국민의 권리, 의무,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일이 "국가 제1호 과제"의 최우선 달성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특별수사를 포함한 검찰 직접수사의 축소 또는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입법과정을 통해 밝힌 입장처럼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특수부 축소는 여전히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청회나, 입법예고 등 정상적 절차를 밟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국 전 장관 본인이나 특정 정파의 이익에 치우친 졸속 개혁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검찰 특별수사 기능을 대체할 어떠한 대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청와대 소속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특수관계인들을 감시할 특별감찰관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기구조차 3년째 무력화되어 있는 실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게 아니라면…

입법예고 같은 행정적 절차를 무시한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고 물으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정청의 법령 개정과 관련해 입법예고 의무를 법률에 규정한 것은 행정청의 법령 개정은 국회의 법률 제·개정 작업과 달리 공개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의 법률 제·개정 작업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이뤄지고, 법안 심의 과정이 국민에게 대부분 공개됩니다. 관련 기록도 곧바로 공개됩니다. 반면, 행정청의 대통령령 등 법령 개정 작업은 공청회나 입법예고 절차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공개로 결정됩니다.

법률보다는 하위 개념인 대통령령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권리·의무·일상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개성을 확보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률로 입법예고 의무를 부여한 것입니다. 내가 뽑은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했으니 묻지도 따지도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행정절차라고 무시할만한 가벼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국가 제1호 과제"라고 선언한 일의 최우선 정책 목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국가 제1호 과제"의 최우선 정책 목표를 정상적 과정 없이 졸속으로 추진한 조국 전 장관과 정부 관계자들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별로 중대하지도 않은 과제를 국가 제1호 과제처럼 밀어붙인 이유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상식과 원칙을 바로잡는 일…남겨진 이들의 몫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 과정부터, 장관 임명, 관련 수사, 검찰개혁 정책 추진 과정까지 최근 2달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원칙과 상식이 무너졌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흐트러진 원칙과 상식을 하나하나 짚어서 바로 잡는 것은 결국 남겨진 이들의 몫일 겁니다. 저는 조국 전 장관이 사퇴를 했더라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 할 일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고]

아래는 행정절차법 관련 조문입니다.

제41조(행정상 입법예고)

① 법령 등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이하 "입법"이라 한다)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입법안을 마련한 행정청은 이를 예고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고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개정 2012. 10. 22.>

1.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또는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등으로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2. 상위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을 위한 경우

3. 입법내용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4. 단순한 표현·자구를 변경하는 경우 등 입법내용의 성질상 예고의 필요가 없거나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5. 예고함이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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