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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결혼 6년 차에 아기 없는 저, 이기적인가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결혼 6년 차에 아기 없는 저, 이기적인가요?"
얼마 전 집단 상담 중에 한 청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명절에 어른들이 그러시대요. 너는 너무 이기적이라고요. 결혼 6년 차나 되었으면서 아이도 안 낳는다고. 왜 부모님 생각은 안 하고 너만 생각하느냐고. 언제까지 너 기다려 주냐고. 제가 이기적인가요?"

그날은 '결혼, 출산'을 주제로 한 집단 상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놓고 대화가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함께 둘러앉은 청년들도 그만큼 할 말이 많았다는 뜻이겠지요. 서른 전후의 청년 10여 명이 각자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크게 두 부류로 나뉘더군요.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는 낳지 않겠다'와 '결혼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로 말이지요.

그런데, 결혼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다시 둘로 나뉘었습니다. '사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어른들이나 주변의 압박 때문에 아이를 결국 낳게 될 거다. 그래서 아예 안 한다'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싫다'로 말이지요. 전자의 청년들은 '결혼했으면 출산해야지'라는 압박 때문에 결국 떠밀리듯 아이를 낳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용어를 좀 뒤섞어서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이를 '안 낳겠다'인지 '못 낳겠다'인지 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스코어는 1:9, '못 낳겠다'의 압승이었습니다. '안 낳겠다'와 '못 낳겠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더 먹고살기 힘들었던 1970~80년대에도 아이는 잘만 낳았는데, 어른들 눈에는 훨씬 살기 편해진 지금 아이를 안 낳는 걸까요?

지금 청년 세대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다들 한 번쯤 이런 꾸지람을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가 너보고 돈을 벌어오라고 하니, 뭐 대단한 걸 하라고 하니. 그냥 공부하라는 거잖아. 너는 엄마·아빠보다는 낫게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러라고 우리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뼈 빠지게 네 학원비 대주는데, 너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거 하나를 못 해?"

이런 꾸지람에는 오늘의 우리는 '겨우 이 정도로' 살지만, 내일의 내 자식은 '이거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어떻게든 노력하면, 내가 희생하면 '우리 자식은 나보다 한 계단이라도 위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지요. 2000년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이 '내 자식은 나보다 삶의 수준을 한 단계라도 올려놓자'라는 다짐과 결의는 사회 전반을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 있었던 사례들이 존재했고요.

1940~50년대를 다룬 소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건 우리 사회의 오래된 믿음입니다. 그 어려운 피난 와중에도, 아버지 없이 혼자 바느질하며 끼니를 이어가던 어머니가 '내 아이들은 깨끗하게 빤 옷 입고 학교 다니게' 해야 한다는 모습. 지금보다 수십 배는 가난하고 참담했던 시절에도 그럴 수 있었던 건 '내 자식은 나보다 나아질 거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결국 핵심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좋아질 거냐, 나빠질 거냐 하는 문제겠지요. 그런데 '계층 이동 가능성'의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이 정말로 예전보다 나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땐 너네보다 훨씬 어려웠는데도 자식은 다 낳았다"는 말은 그 지점을 간과하고 있는 겁니다.

GDP도, GNP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계층 이동 가능성이라는 것도 GDP, GNP처럼 수치로 매길 수 있다면, 과연 상승 곡선일까요? 예전보다 지금이 더 나아졌나요? 자식을 낳아도, 입을 거 못 입고, 먹을 거 안 먹어도 계층 이동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매일 눈으로 똑똑히 느끼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요?

2016년 영국 BBC는 한 저널(Journal of Applied Ecology)에 실린 연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지대에 서식하는 코끼리가 밀렵이 두려워 새끼 낳기를 극히 꺼리고 있다는 내용이지요. 평균 12살이면 새끼를 낳는 코끼리들이 23살쯤 되어서야 첫 새끼를 낳기 시작하고, 출산 간격도 두 배 가까이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최대한 늦게 낳고, 덜 낳는다는 건데요, 이 과정을 통해 2002~2013년 사이 개체 수가 65% 감소했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밀렵을 멈춘다 해도 개체 수 복원에는 90년 넘게 걸린다는 결과도 함께 덧붙였지요.

그들은 새끼를 안 낳는 걸까요, 못 낳는 걸까요? 새끼를 낳아도 안전히, 무사히 살아낼 수 없다는 본능적 판단 아래 '비출산'을 택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낳아 기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겠지요. 밀렵이 난무하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의 생존조차 담보되지 않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자기밖에 몰라서, 요즘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일까요? 과연 우리는 이기적인 걸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박탈해놓고도 "너는 왜 네 생각만 하니?"라 말하는 기성세대가 이기적인 걸까요? 아프리카 코끼리들에게도 추석과 설이 있다면, 그들 역시 친척 어른 코끼리들에게 이기적이라고 혼이 나게 될까요?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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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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