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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멧돼지 방역 실패' 환경부의 말말말

전문가 지적에도 안이하게 대응하다 심각한 상황 초래

[취재파일] '야생멧돼지 방역 실패' 환경부의 말말말
"결국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10월 11일. DMZ 철책 바깥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감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철원과 연천 각각 1건씩, 총 2건이다. 앞서 DMZ에서 '양성' 야생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됐지만, 국방부와 환경부는 "멧돼지가 DMZ 철책을 넘어올 순 없다"며 야생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남쪽 전파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꾸준하게 야생 멧돼지를 통한 확산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SBS도 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비판 보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정현규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은 "결국 벌어지면 안 되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연구한 한 수의사는 "환경부의 대응이 매우 미흡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며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는 그동안 '야생 멧돼지는 괜찮다' '야생 멧돼지 대응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입장을 반복해서 발표해왔다. 그동안 환경부가 내놓은 입장과 비판 보도에 대한 주요 해명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돼지열병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첫 발병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 농가에서 발병했다. 지난 5월 북한 발병이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한반도에 공식 상륙한 지 약 넉 달 만이다. 우리나라에선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막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돼지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을 막지 못했다. 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두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추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9월 18일> 발병 2일째
환경부 "아프리카돼지열병, 야생 멧돼지와 관계없다"
발병 바로 다음날이었다. 환경부의 이 보도자료는 그동안 수많은 보도자료를 접해왔던 취재진에게도 이례적이고 당황스러웠다. 아직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았고, 역학조사는 이제 막 시작된 상황이었다. 취재진이 접촉한 상당수의 전문가들도 매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섣부른 판단이다.", "책임 회피가 먼저인가?" 등의 비판도 포함됐다. 환경부의 이 같은 입장 발표에 '야생 멧돼지' 이슈는 발병 초기 공론화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 "北 멧돼지 가능성 희박" 선 그은 정부…주민 "자주 목격" (9월 18일)
하지만 환경부의 설명과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만난 주민들의 얘기는 달랐다. 환경부는 "발병 지역에선 야생 멧돼지가 다니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멧돼지를 자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출입 통제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추가 의심신고 파주 양돈농가 인근 (사진=연합뉴스)
<9월 21일> 발병 5일째
▶ 야생 멧돼지 폐사체 뒷북 조사…감염 경로는 '미궁' (9월 20일)
환경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염 매개체'인 야생 멧돼지에 대한 대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환경부의 야생 멧돼지 폐사체 예찰 활동을 살폈다. 당시 환경부가 직접 고용해 운영하는 인력은 지자체마다 2명에 불과했다. 보도 당일은 이들이 예찰 활동을 시작한 첫날이었는데, 파주와 연천만 이날 예찰 활동을 시작했다. 환경부는 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SBS는 야생 멧돼지 관련 보도를 꾸준히 이어갔다. 환경부는 해명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나 야생 멧돼지 폐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반복됐다.
▶ 강화도 모든 돼지 살처분…사태 키운 '부처 엇박자' (9월 27일)
▶ [취재파일] [단독] 강화도 접경지 오가는 멧돼지 발견…"가능성 높은 전염 매개체" (10월 2일)
'DMZ 이남' 연천·철원 멧돼지 폐사체에서 양성
<10월 3일> 발병 17일째
경기도 연천군 DMZ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바이러스 첫 검출
농가에서 키우는 사육돼지에서만 확인됐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도 발견됐다. '주요 전염매개체' 야생 멧돼지를 확인하는 증거가 발견됐지만, 환경부의 대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방부도 '야생 멧돼지는 절대 DMZ 철책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힘을 보탰다. "직접 이동이 불가능하더라도 분변 등을 통한 접촉은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됐다.

이후 SBS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피해국이 최근 3년간 52개국에 달하는 유럽 사례를 통해 야생 멧돼지 포획·수렵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사육돼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국가는 한 곳도 없으며, 체코의 정책을 사례로 들어 환경부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 2년 만에 '돼지열병 박멸'…체코의 성공 비결은? (10월 5일)
▶ [취재파일] 사육돼지만 발병한 국가는 없다…구멍 난 멧돼지 방역 (10월 8일)

<10월 9일> 발병 23일째
환경부 "DMZ 철책 이남의 야생 멧돼지에선 바이러스 검출되지 않아"
앞서 국방부가 '야생 멧돼지는 DMZ 철책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SBS를 포함한 언론들은 야생 멧돼지를 통한 전염 가능성을 계속해서 제기했다. 환경부의 설명은 아주 조금 바뀌었다. "야생 멧돼지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에서 'DMZ' 관련 내용이 추가돼, "DMZ 철책 이남의 야생 멧돼지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로.

▶ 잠잠했던 돼지열병 연천서 '확진'…동쪽으로 번지나 (10월 10일)
10월 10일 연천군에서 14번째 확진 양돈농가가 발생했다. '양성' 폐사체가 발견된 위치로부터 불과 약 8km 거리, 강원도 철원군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농가였다. '야생 멧돼지를 통한 전염'이 본격화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동쪽 확산(강원도 전파) 우려를 전했다.

<10월 11일> 발병 25일째
'DMZ 철책 이남' 야생 멧돼지에서 바이러스 검출…사살한 개체에서 첫 '양성'
환경부가 확언하기 무섭게, 곧바로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DMZ 철책 바깥에서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한꺼번에 2마리다. DMZ 바깥에선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나올 수 없다는 환경부의 메시지가 무색해졌다.
철원군 원남면에서 군부대에 의해 신고된 폐사체는 총 4마리. 이 가운데 1마리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철원은 야생 멧돼지 서식밀도가 높은 강원도의 '입구'이자, 강원도에서 절반에 가까운 70여 농가가 돼지 사육을 하고 있다.
연천군 왕징면에서 발견된 '양성' 야생 멧돼지는 1마리. 이 멧돼지는 비틀거리는 상태에서 발견돼 엽사에 의해 사살됐다. 폐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멧돼지였다. 사살된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공식 확인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10월 12일> 발병 26일째
철원군 야생 멧돼지 폐사체 2개체 바이러스 검출
또 다른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데는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월 13일> 발병 27일째
관계부처 합동 '야생 멧돼지 발생에 따른 긴급대책 추진' 발표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방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긴급대책을 내놨다. 발병지를 중심으로 지역을 나눠 야생 멧돼지 이동 차단과 포획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뒤늦은'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3개 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했지만, 야생 멧돼지 관련 실무는 환경부가 그대로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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