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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해법…"목사와 교회에 '평등'을 허하라!"

[취재파일]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해법…"목사와 교회에 '평등'을 허하라!"
어린 시절 몇 번 만났던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을 처음 만난 날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작은 체구에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젊은 분이 낡은 체크무늬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이 햇볕에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부모님 지인 분의 아드님이었는데 휴전선 접경 지역 작은 농촌 마을에서 개척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목사'라는 직함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모습이 너무 달라서 어린 마음에 속으로 '무슨 목사님이 저래?'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목회활동과 함께 농사도 짓고 계셔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신도 수가 수십 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 마을이다 보니 신도들이 모아 주는 월급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 목사님은 이후 시내에 나오시면 종종 들르곤 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집 앞엔 찌그러진 낡은 승합차 한 대가 서 있고 차 안엔 어르신들 몇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외진 마을인데 승용차를 가진 분들도 거의 없어서 한 달에 몇 번 씩 목사님이 직접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내 병원으로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요일엔 목사님이시지만 평소엔 마을 허드렛일 다 도맡아 하는 청년이었던 거지요.
 
아는 분 중에 '투잡족'인 목사님이 한 분 더 있습니다. 이 분은 서울에서 수십년 째 병원을 운영하고 계신 피부과 원장님입니다. 그런데 뒤늦게 신학대학에 입학해 공부한 뒤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토요일 오후까지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일요일이면 늘 새벽밥을 먹고 직접 차를 몰아 전방 군부대로 향합니다. 군목이 없는 작은 부대들을 찾아 다니며 예배를 집전하는 목회 봉사입니다. 

사례비 같은 게 있는지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군부대 찾아 다니는 '봉사' 활동에 사례비가 있어봤자 얼마나 될까 혼자 생각할 뿐입니다. 의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과 중 하나인 피부과 원장님이고 개업한 지 벌써 수십 년 됐으니 그 동안 모아놓은 재산도 꽤 되실 듯합니다. 대학 동기 분들은 대부분 일요일이면 골프나 치면서 여유롭게 지내겠죠. 그런데 그 원장님, 아니 목사님은 일주일에 딱 하루 뿐인 휴일마다 여전히 직접 차를 몰고 전방을 향합니다. 트렁크엔 골프백 대신 초코케익과 과자들이 잔뜩 담긴 박스를 싣고요. 모두 "예배 끝나고 애들 먹일 것들"이랍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명성교회 목사직 세습 논란'을 중계방송 하다시피 보도했습니다. 세간의 질타가 워낙 뜨거운 데다 매체를 가릴 것 없이 언론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지난달 교단 재판국에서 "헌법에 금지된 불법 세습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악습으로 지적돼 온 대형교회의 목사직 세습 문제가 이번에는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높았습니다.
 
총회장 김태영 목사, 104회 정기총회에서 명성교회 부자세습 거수로 표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교단 총회가 사실상 목사직 세습을 인정하는 '수습안'을 내놓으면서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수습안의 찬성률은 76%. 공개적인 거수 투표 결과인데 그렇습니다. 비밀 투표에 부쳤다면 찬성률은 훨씬 더 높았을 거라는 게 교단 안팎의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실제로, 수습안 표결 직전엔 거수 투표가 부담스럽다며 비밀 투표로 하자는 거센 요청이 나왔습니다. 찬반 양측에서 고성이 오간 끝에 거수냐 비밀투표냐, 투표 방식을 정하는 투표를 먼저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거수로 하게 되면 기자들은 내보내야 되는 거 아냐?" 하는 집행부의 대화가 마이크를 타고 전국에 중계됐습니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 '찬성'표를 공개적으로 던지는 데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도 찬성률이 76%입니다. 
 
스스로 "법을 초월했다"고 인정한 '수습안'을 내놓은 집행부의 논리는 간결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분열된 모습이 연일 적나라하게 세상에 공개되는 수치를 그만 끝내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화해합시다. "참으로 사랑이 넘치는 훈훈한 모습이로구나!" 감탄만 하기엔 너무 옹색해 보입니다. 이 중차대한 사안을 수습한다고 나서면서 너무 '논리'가 없습니다.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습을 밀어붙인 명성교회 측은 적어도 논리는 분명했습니다. 오로지 '부자 관계' 하나만을 이유로 김하나 목사 청빙을 막는 건 김하나 목사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교회에는 원하는 목사를 찾을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논리만 놓고 보면 딱히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물론,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이 건드리는 건 법전에 활자로 기록된 실제 법 조항들이 아닙니다. 국민과 사회의 '감정법'입니다. 그 바탕엔 대형교회들이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하는 헌금과 수억 원이 넘는 목사 연봉에 합당한 사회적 소명과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교회의 자유와 권리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통 만두가게 아들들이 3대째 가업을 잇는 건 미담이라고 하면서 목사님 아들이 교회를 물려받는 건 '불법 세습'이라고 하는 건 '내로남불'이라는 명성교회 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평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해결책은 어떨까요? 아버지가 세운 교회를 물려받고 싶은 아들 목사님들에겐 일반인과 똑같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게 맞겠지요. 대신 일반인들과 똑같은 납세 의무와 근로자의 책임도 부과하는 겁니다. 교회에는 직원을 구하는 일반 기업들과 똑같이 마음에 드는 목사를 청빙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게 맞을 겁니다. 대신 세금은 물론 회계, 감사 등 모든 분야에서 일반 기업과 똑같은 책임과 의무를 지게 하면 됩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듯이 법 앞에서도 평등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분 목사님들처럼 세상엔 여전히 존경받을 만한 목사님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파를 넘어 개신교계 전반을 보는 국민과 사회의 시선이 따가운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 교회는 처절하게 반성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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