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바뀐 건널목에 늦게 진입한 보행자 치었다면?

허윤석 기자 hys@sbs.co.kr

작성 2019.09.23 16:54 수정 2019.09.23 17: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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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신호대기 중인 복잡한 건널목에서 주행 신호로 바뀐 뒤 뒤늦게 건너려는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했다면 무죄일까 유죄일까.

배달원 36살 A 씨는 지난해 10월 오후 4시쯤 부산 중구 부평동 편도 2차로 중 1차로로 시속 47.5㎞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A 씨는 전방 건널목에 정지 신호가 켜졌지만, 멈추지 않고 신호대기 중인 승용차 사이로 차로를 변경하며 계속 달렸습니다.

그 사이 건널목 신호는 주행 신호로 바뀌었고 A 씨는 그대로 건널목을 지나다가 건널목을 횡단하는 75살 B 할머니를 치었습니다.

B 할머니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사흘 뒤 숨졌습니다.

A 씨는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가 있는지를 충분히 확인하는 등의 안전운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A 씨와 변호인은 "교통신호를 준수했고 오토바이 운전에 관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는 "재래시장 근처인 사고 현장이 평소 보행자가 많고 당시 토요일 오후여서 이곳을 자주 지나던 배달원인 피고인이 무단횡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운전해야 했다"고 맞섰습니다.

부산지법 형사5부는 "주행 신호로 바뀐 지 6초가 지났고 앞선 승용차가 건널목을 지난 뒤 사고가 난 점, 피고인이 1·2차로에 걸친 버스에 가려 건널목으로 진입한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하면, '신뢰의 원칙'을 배제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신뢰의 원칙이란 운전자가 주행 신호로 바뀐 건널목에서 보행자가 건너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지 아니할 것까지 예상해 주의 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