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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日 후쿠시마현이 공개한 방사선 데이터…'착시'인 이유

이달 초, 일본 후쿠시마현을 다녀왔습니다. 후쿠시마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방사선량 측정기입니다. 후쿠시마현 곳곳에 설치돼 가동 중입니다. 이 측정값은 '공간 방사선량'이라고 부릅니다. 후쿠시마현이 관리하는 홈페이지( http://fukushima-radioactivity.jp/pc/)에 실시간 측정값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2011년 원전 사고 직후 수치와 현재 수치까지 이어서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이 그래픽을 보면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이 8년의 시간을 거치며, 꽤 나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원전 근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붉은 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후쿠시마현 상당 부분이 방사능 청정 지역처럼 보이는데, '착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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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측정한 데이터, 왜 착시를 일으키는가?

왜 착시일까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의 특성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할 때 나온 세슘은 지금 다 어디로 가 있을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위 그림은 '공기 중'의 방사선량을 측정한 값일 뿐입니다. 지금 공기 중에 세슘이 묻은 흙먼지가 있다고 해도, 사실 방사선량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공기 중의 방사성 물질은, 지난 8년간 수없이 비가 내리면서 이미 제거됐을 것입니다. 세슘은 물에, 그러니까 비에 잘 녹기도 합니다. 공간 방사선량으로 그래픽을 만들면, 당연히 청정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후쿠시마 취재 기간에 그래서, 측정기가 설치된 환경을 살펴봤습니다. 정해진 룰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설치 환경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 중 눈에 띈 측정기는 이곳입니다. 측정기 뒤편으로 엄청나게 쌓인 제염토가 보입니다. 까만 포대가 지금도 마을 곳곳의 임시 저장소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포대 속 흙에서는 지금도 방사선이 나옵니다. 까만 포대가 방사선, 즉 감마선이 방출되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포대는 세슘 흙먼지가 날리는 걸 막아줄 뿐입니다. 도쿄나 서울에서 0.1 안팎이 나오는 수치는 0.3 넘게 찍고 있습니다. 제가 가져간 측정기도 0.3 정도였습니다. 흙에서 이 정도가 나오면, 제염, 즉 흙을 걷어내야 하는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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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정기 바로 아래, 두꺼운 시멘트가…

그런데 사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제염토가 아닙니다. 저런 제염토는 후쿠시마현에 가면 정말 이곳저곳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측정기 밑에 시공된 시멘트 구조물입니다. 세슘은 물에 잘 녹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비에 녹아 땅에 스며듭니다. 스며든 세슘은 흙에 잘 달라붙습니다. 후쿠시마에 제염을 한다면서, 곳곳에 흙의 윗부분을 긁어내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흙 위에다 두꺼운 시멘트 시공을 해놓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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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기 설치를 하자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시멘트 구조물이 바로 공간 방사선량 측정값에 영향을 줍니다. 측정기 바로 밑 흙에도 세슘이 녹아 있을 수 있겠지요. 그 세슘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저 시멘트 구조물이 막아주는 겁니다. 세슘에서는 '감마선'이 주로 나오는데, 이게 투과력이 좋습니다. 사람 몸을 그냥 통과하기도 합니다. 근데 저렇게 두껍고 밀도가 높은 시멘트를 시공해놓으면, 감마선이 뚫지 못하고 일부는 막힙니다. 원전 건물에 두꺼운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이런 곳은 공간 방사선량 수치가,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시멘트 아래쪽에 방사능 오염이 있더라도, 그 오염된 곳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시멘트를 통과하게 되면 거기서 흡수가 되니까, 측정치를 좀 줄여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시멘트 옆 수풀 흙바닥에 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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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서 시멘트 구조물 바로 옆 수풀 바닥에 측정기를 갖다 대봤습니다. 얼마나 높게 나오는지 비교하려고, 바닥에 바짝 갖다 댔습니다. 수치가 민감하게 요동 쳤습니다. 0.46μ㏜/h가 나왔습니다. 1시간에 0.46μ㏜의 방사선량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저 값은 계속 움직이는데, 제가 측정값이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찍은 겁니다. 일본 정부는 저 수치가 0.23을 넘으면, 흙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 2배 정도가 나왔습니다. 

● 시멘트 위에 대면…방사선 얼마나 걸러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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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측정기를 시멘트 바닥 위에다 바짝 대봤습니다. 저게 같은 곳입니다. 측정기만 시멘트 위로 올렸을 뿐입니다.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0.15μ㏜/h가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서울의 공간 방사선량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수치입니다. 시멘트 구조물이 없는 바로 옆 바닥에 댔을 때랑 비교하면 30% 정도밖에 안 나옵니다.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세슘 방사선을 저 시멘트가 어느 정도 막아준 걸로 보입니다. 시멘트 구조물은 높이가 30cm 안팎이었습니다. 이곳만 이런 게 아닙니다.

● 원전에서 20km 떨어진 곳, 측정기 주변은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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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보도국 김관진 기자가 저보다 먼저 후쿠시마에 다녀왔는데, 그곳 측정기가 설치된 주변을 한번 보시죠. 역시 흙이 많이 안 보입니다. 시멘트로 보이는 바닥 위에, 다시 시멘트 지지대, 철제 구조물까지 세웠습니다. 여기도 장비 세우려면 저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깨끗한 환경과 하단 구조물 자체가 공간 방사선량을 낮추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측정기 주변에 세슘이 있어도, 빗물에 쉽게 씻겨나가는 환경입니다.

화면을 다시 찾아보고 놀란 것은, 저렇게 흙바닥이 아닌데도 방사선량이 3.7μ㏜/h 정도 나온다는 겁니다. 저 장소에는 하루만 서 있어도, 흉부 엑스레이를 1번 찍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방사선량을 받게 됩니다. 집을 세우고 살면, 물론 바닥이나 벽에 어느 정도 방사선이 막히겠습니다만, 하루 1번씩 엑스레이를 찍는 생활을 하게 되는 곳입니다. 만일 저 뒤편에 수풀로 들어가 측정기를 흙바닥에 댔다면 더 높은 수치가 나왔을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 또 다른 곳의 방사선량 측정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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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습니다. 지난 2일 후쿠시마 출장 때 처음 찾아간 측정기입니다. 여기는 측정기를 아예 주차장에 설치해놨습니다. 바닥은 일반적인 아스팔트였고, 그 위에 시멘트와 철제 구조물을 올린 뒤에 측정기를 세웠습니다. 공간 방사선량은 당연히 주변의 흙, 그 안에 남아있는 세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런 아스팔트에는 세슘,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흙보다 시멘트, 아스팔트가 많은 도쿄 도심의 방사선량이 높지 않은 이유입니다. 세슘이 흙에 잘 붙어서 망정이지,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잘 붙었다면, 도쿄는 재앙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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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측정기 바로 옆에는 논이 있고,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는 어딜 가나 벼농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측정기로 공기 중에서 쟀을 때는 1.28cps(1초에 평균 1.28개의 방사선 감지)가 나왔는데, 휴대용 측정기를 논 옆 바닥에 갖다 댔을 때는 2.95cps가 나왔습니다. 휴대용 측정기이긴 하지만, 공기 중의 측정값과 흙바닥에 댄 측정값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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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정기에서 멀어질수록…세슘 방사선량↑

또 다른 곳입니다. 여기 측정기 주변은 풀이 무성했습니다. 풀숲에 가려 시멘트 구조물이 있는지 확인이 안 됐습니다. 다만 공기 중의 방사선량과, 흙바닥에 댔을 때의 방사선량, 그리고 제염이 덜 됐을 만한 주변 야산의 방사선량은 역시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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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서는 0.29μ㏜/h 정도, 옆에 흙바닥에 휴대용 측정기를 갖다 대니까 0.64μ㏜/h. 숫자 위에 화살표는, 측정값이 계속 더 올라갈 수 있으니까,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제염 기준치 0.23을 많이 넘죠. 그만큼 측정값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이 화면을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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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측정기에서 2백 미터 정도 떨어진 야산으로 갔습니다. 제염토를 담은 트럭이 계속 오가는 가운데, 제염을 안 했을 것 같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속 바닥에 측정기를 대니, 1.23μ㏜/h가 찍힙니다. 그러니까 방사선량의 비율을 따지면, 후쿠시마현의 공식 데이터를 1이라고 했을 때, 흙바닥은 2, 주변 야산의 흙바닥은 3 이상, 4까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 비율은 장소마다 다르겠지만, 후쿠시마현 어딜 가든 흙바닥의 방사선량은 공간 방사선량보다 높게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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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치 환경에 따라…방사선량 데이터 자연스럽게 낮아져

후쿠시마현에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흙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이 곳곳에 설치해놓은 공간 방사선량 측정기, 그 값을 '안전'으로 해석하긴 어렵습니다. 공중에 붕 띄워놓은 센서, 거기 잡히지 않는 방사선은 지금도 많을 겁니다. 측정기 밑바닥 시멘트 구조물 하나에도, 측정값은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마치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후쿠시마의 방사선 값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전 근처에서 8μ㏜/h가 넘는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입니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료 조사 : 이다희,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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