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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사는 지역은 '여성안심귀갓길'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②

- 서울편

[취재파일] 내가 사는 지역은 '여성안심귀갓길'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②
늦은 밤, 20대 남성이 혼자 사는 여성을 문 앞까지 뒤따라 간 뒤, 현관문이 닫히려는 찰나 집 안으로 침입하려 했던 '신림동 사건'. 현재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로 재판 중인 이 사건은 혼자 사는 여성들의 주거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혼자 사는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학교 다니느라, 돈 버느라 외지에 나가 있는 딸을 둔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혼자 사는 누나와 여동생을 둔 남성들에게 1인 여성가구의 주거 안전 문제는 바로 내 가족의 일이기도 합니다.

SBS 이슈취재팀은 위기에 처한 1인 여성 가구의 주거안전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오늘(14일)부터 '1인 여성 가구 주거안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8시 뉴스를 통해 혼자 사는 여성들의 주거 안전 문제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드리고, 이어서 정부 대책의 허점을 짚어드립니다. 이어 주거침입 성범죄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 돈과 맞바뀌는 청년 주거 안전
서울 1인 여성가구 현황 (39세 이하)
지난해 서울시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청년 (39세 이하) 1인 여성 가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관악구 (34338 가구) 입니다. 2위인 강남구 (19042 가구)보다도 2배 가까이 많은, 압도적 수치입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이 올해 국토부 실거래가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관악구는 일자리가 많은 강남권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평균 월세는 서울에서 4번째, 한강 이남에서는 두 번째로 저렴합니다.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모아둔 돈이 적은 청년 여성들이 몰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서울 구별 월세 평균 거래가 (자료 출처 : 직방)
윤정원 (20대 대학생) / 여성가족부 '성평등 드리머' 주거분과 참여자
옛날에 고시촌에 자취방을 구할 때였어요. (너무 열악해서) 처음 봤을 땐 '이런 데를 어떻게 사나, 왜 사나' 싶었어요. 그런데 알겠더라구요. 굉장히 싸고, 보증금도 거의 제가 둘러봤던 다른 곳의 5분의 1 수준이고...그때 제가 인상 깊었던 게, 저와 나이가 비슷한 사회 초년생 여자 분이 살고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아 이렇게 해서 돈이랑 안전을 바꾸게 되는구나. 교환을 하게 되는구나'


● 혼자 사는 여성 압도적으로 많은 관악구…여성안심귀갓길 방범 시설은 미흡

1인 여성 가구의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 정책은 '여성안심귀갓길'입니다. 이 정책은 1인 여성 가구가 많고, 여성 대상 범죄 우려가 높은 골목길을 '안심귀갓길'로 지정한 뒤 지자체 예산으로 CCTV, 비상벨, 보안등 같은 방범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입니다.

SBS는 이 '여성안심귀갓길' 정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봤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 지역 안심귀갓길 지정 현황과, 안심귀갓길에 설치된 방범시설의 종류, 개수, 형태를 전수조사 했습니다.
서울 여성안심귀갓길 CCTV·비상벨 현황
위 그림은 서울 자치구별로 여성안심귀갓길에 설치된 대표적 방범시설, CCTV와 비상벨 개수를 조사해 등급화 한 것입니다. 여성안심귀갓길에 CCTV와 비상벨을 가장 많이 설치한 동대문구 (210개)와 도봉구 (37개)를 최대값과 최소값으로 놓고 5등급으로 나눠 평가했습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지자체가 여성안심귀갓길 방범시설 설치에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자치구의 여성안심귀갓길 안전도를 평가하기엔 무리입니다. 앞서 보셨듯, 직장과의 거리,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지를 선택하는 1인 여성가구는 자치구 별로 편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CCTV · 비상벨 1대당 1인 여성가구 현황
이를 반영해 조사한 결과가 위의 그림입니다. 각 자치구 여성안심귀갓길에 설치된 CCTV와 비상벨이 1인 여성 가구를 얼마나 담당하고 있는지 나타냅니다. CCTV와 비상벨 한 단위가 담당하는 1인 여성 가구 숫자가 작을수록, 여성안심귀갓길의 방범시설이 1인 여성가구수 대비 더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림동 사건'이 일어난 관악구는 압도적으로 많은 1인 여성가구 인구에 비해 안심귀갓길 방범시설이 상대적으로 적게 설치됐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또 '여성안심귀갓길' 방범시설에 대한 투자가 자치구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강남구와 강서구에는 비슷한 숫자의 1인 여성가구가 살고, 안심귀갓길 수도 비슷하지만, 강남구 여성안심귀갓길엔 2배 넘게 많은 CCTV와 비상벨이 설치돼 있습니다. 때문에 강서구 여성안심귀갓길 방범시설은 강남구보다 2배 많은 1인 여성가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규정 없고 예산 기준도 없는 여성안심귀갓길…"전시행정 같아요"

이처럼 자치구별로 여성안심귀갓길 수준에 차이가 생기는 건, 여성 대상 범죄가 빈발하니 정책은 내놨지만 디테일은 챙기지 못한 탓입니다. '여성안심귀갓길' 지정은 대부분 각 지역 관할 지구대가 담당하고 있는데, 통일된 최소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지구대는 골목 구석구석을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해 안전시설들을 꼼꼼히 설치한 반면, 어떤 지구대는 역 앞 대로변을 일직선으로 안심귀갓길로 지정해놓기도 했습니다. 이런 주먹구구식 지정에 지난 5월 감사원은 경찰청에 '여성안심귀갓길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산도 문제입니다. 현재 안심귀갓길 지정은 경찰이 하지만 방범 시설 설치 예산은 대개 시 · 군 · 구에서 알아서 지원하도록 돼 있습니다. 관리 주체가 둘로 나뉜 상태에서 안심귀갓길에 써야 할 최소 예산 기준도 없습니다.

역시 지난 5월 감사원 감사 결과 전국 2875개 안심귀갓길 중, 안심귀갓길 노면 표시와 신고 안내판이 없는 곳이 75%에 달했습니다. 여기가 안심귀갓길인지 알기도 힘든, 무늬만 안심귀갓길이 허다하다는 겁니다.

● 우리들의 안전한 집을 위하여

정수미 (30대 직장인) / 여성가족부 '성평등드리머' 주거분과 참여자
어쨌든 1인 가구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분리되거나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좋은 정책인 것 같아요.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해 임시적으로 데려다줘야겠다', '혼자 사는 여성이니까 길을 반짝반짝하게 해줘야겠다' 이런 게 근본적인 게 아니란 말을 하고 싶어요. 여성안심귀갓길 좋은 정책인데 이것만으론 되지 않겠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건 주택법상 최저 환경에도 안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떠한 성이든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주거권을 지켜달라는 거예요.


지난 9일, 혼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청년 여성들이 SBS 이슈취재팀과 집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건 '안전한 구역'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년들의 '주거 환경' 자체를 안전하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현재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 차원의 '여성안심귀갓길' 정책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 차원의 청년 주택 공급, 도시형생활주택 안전 기준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정책들마저도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SBS는 앞으로도 계속 시청자와 함께 1인 여성 가구의 주거 안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작게는 '여성안심귀갓길'부터 크게는 주거 정책에 이르기까지 청년 시청자들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기자가 직접 나가 현장을 점검하고, 전문가와 함께 환경 개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또 이 결과는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계속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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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박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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