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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유난 떨지 말라고요?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오해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인-잇] 유난 떨지 말라고요?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오해
"쪼코라는 푸들을 10년 동안 키웠다.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나서 충격으로 겁나서 (새로운 반려견은) 못 키우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슬픔과 충격으로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못할 것 같다는 이연복 셰프의 사연이 소개됐다. 일명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다.

펫로스 증후군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사람에게 나타나는 슬픔과 우울증 등의 정신적 장애를 말한다.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상당히 많으며,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도 있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물을 잃었는데 어찌 슬프지 않을까. 미국수의사회(AVMA)의 '펫로스 지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느끼는 슬픔은 실제 가족 구성원이나 절친한 친구를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과 비슷한 정도라고 한다.

반려동물을 잃은 뒤의 슬픔은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이런 슬픔은 피할 이유가 없고, 자연스럽게 애도하면서 감정을 시간에 따라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다른 슬픔들처럼 시간이 해결해주고, 이런 슬픔을 통해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거나 더 잘해줬어야 했다는 식의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돌아보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펫로스 경험자들끼리 모여 서로 슬픔을 공유하는 모임도 많다. 보호자들끼리만 모임을 하는 경우도 있고, 수의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가가 참여해 전문적인 도움을 주는 모임도 있다. 펫로스 증후군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면, 이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사랑하는 초롱이를 보내고 슬퍼하는 저를 보면서 회사 동료들이 뒷말하는 걸 들었어요. '개가 죽었다고 뭘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부모님이 돌아간 줄 알았다'며 비웃더군요."

과거 한 동물병원이 주최한 펫로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직접 들은 말이다. 울면서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던 한 참석자가 한 말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어떻게 그리 쉽게 말들을 할까?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펫로스 증후군이 '동의 받지 못한 슬픔'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펫로스 증후군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 사람을 위한답시고 어설픈 충고나 비난을 하는 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울증 전문가인 안용민 서울대 교수(전 자살예방협회장)는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 곁에 있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빨리 털어 버리고 이겨내라', '왜 그것밖에 못 하냐'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지적했다. <2018년 언론 인터뷰>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아픔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지는 못할지언정 "고작 개가 죽었다고 저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억지로 공감해달라는 게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사랑하는 생명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더 깊은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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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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