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실험의 끝은 안락사…'실험실 비글' 입양해주시겠어요?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인-잇] 실험의 끝은 안락사…'실험실 비글' 입양해주시겠어요?
최근 서울대 수의대에서 은퇴한 검역 탐지견인 비글 '메이'를 동물실험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현행법상 국가를 위해 사역하고 있거나 사역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먹는 약과 바르는 화장품 상당수는 동물실험을 거쳐 출시된다.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동물이 실험에 동원된다. 우리나라에서만 2018년 한 해 동안 372만 7,163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이용됐다. 간단히 말해 매일 1만 마리 넘는 동물이 실험에 동원되는 셈이다.

놀라운 건 5년 만에 국내 실험동물의 숫자가 2배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2013년 196만여 마리였던 실험동물 숫자는 지난해엔 372만여 마리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실험에 동원되는 원숭이와 기타 포유류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기타 포유류 중 한 종류인 개는 작년 한 해 동안 1만 3,470마리가 실험에 이용됐다.

그런데, 이 많은 동물들은 실험이 끝난 뒤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대부분 안락사된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실험 후 회복 불능이거나 고통을 계속 느끼는 동물이라면 사실 안락사가 인도적 조치의 일환일 수 있다.

실제로 동물보호법은 '동물실험을 한 자는 실험이 끝난 후 동물이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가능한 빨리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 동물을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회복될 수 있거나 고통을 받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실험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동물들조차 대부분 안락사 된다. 실험 후 동물이 건강한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건강한 개체로 판단되어도 구제할 방법이나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구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사용된 비글은 15만 마리인데 그중 살아서 실험실 밖을 나간 건 21마리뿐이다.

그런데 관련 근거가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 마련됐다. 실험 후 정상적으로 회복한 동물은 일반인에게 분양·기증할 수 있도록 지난해 법이 개정됐고, 최근에는 실험견 분양 가이드라인까지 생겼다. 실험동물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인 일이다.

물론 아직은 보완할 점도 많다. 동물실험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노출됐었기 때문에 분양이 가능한지 판정하는 것은 물론 분양 이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교육과 질병예방 활동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적절한 소유주(보호자)를 찾는 게 중요한데, 소유주는 입양에 전념하고 조언을 받아들이고 입양 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처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입양 후 해당 동물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평생 반려동물로 기르는지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잘 키우겠다고 입양해놓고 또 다른 실험이나 범죄 혹은 강아지 공장의 번식견으로 활용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법 개정을 통해 실험동물의 기증과 분양이 가능해진 만큼 앞으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실험의 고통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물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그게 순수 연구 목적 실험이든 규제 관련 실험이든, 인간의 필요를 위해 실험에 동원됐던 동물들이니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하지만, 실험동물 입양 문화가 정착되기에는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매년 발생하는 12만 마리의 유기동물 중 절반 정도가 새 보호자를 찾지 못하고 보호소 내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험동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편견을 없애는 활동도 필요해 보인다.

전 세계 실험견의 94%를 차지하는 비글은 사람을 잘 따르고 반항을 별로 하지 않아서 실험에 이용된다. 사람을 좋아해서 실험실에 갇히게 된 비글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먼저 부탁하고 싶다. "여러분, 반려견 입양 계획을 갖고 있다면 실험에 이용됐던 비글도 고려해주시겠어요?"

#인-잇 #인잇 #이학범 #동문동답
인잇소개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