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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단 뒤에서 욕먹는 게 나아"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단 뒤에서 욕먹는 게 나아"
'결국 꼰대' 10편: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단 뒤에서 욕먹는 게 나아"

'나는 꼰대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조직 내 인간관계가 좀 꼬인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조직 문화의 나쁜 부분을 흡수해가며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바로 내 앞의 정 팀장도 그렇다. 이 분은 젊었을 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많은 편이었다. 신입 직원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도 과감하게 양보를 하곤 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입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완전 고집불통 싸움닭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욕은 물론이고 "네가 감히~" 같은 옛날 용어를 사용하며 거칠게 상대방을 몰아세워 기를 죽여버렸다. 한날 그는 이런 일도 있었다며 낄낄거렸다.

얼마 전 뭔가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관리부서 여직원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자기는 잘 풀리지 않는 업무 때문에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을 때였는데 그 메일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했다. 이 정도 사안이면 팀원들에게 연락해 해결하면 될 것을, 왜 팀장인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냐는 거다.

그는 수화기를 들었고 그 여직원에게 이날도 "네가 감히~" 식의 문장을 써가며 나무랐다는 것이다. 한참을 한강에서 눈 흘긴 후 전화를 끊었는데, 끊자마자 그 여직원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팀장님. 화가 많이 나신 건 이해하겠는데요, 말씀 도중 '씨○' 한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단어 쓴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깜짝 놀라 "정말 그런 말을 했어요?" 물으니 "몰라. 그냥 말하다가 습관처럼 들어갔겠지"하면서 어쨌든 바로 사과는 했다고 했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말 큰일 나겠네. 그러다 큰일 나요"하니까 또 낄낄 웃으면서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뒤에서 욕먹는 게 나아" 했다. 그러면서 겸연쩍은지 변명을 했다.

"너도 알지. 나도 한때는 나이스했다는 거. 그런데 살다 보니까 그것만으로는 안되겠더라고. 예전 송 상무 알지? 그 악독했던 놈. 내가 과장 때 그 인간 모시고 일을 하는데 정말 죽을 것 같았어. 내가 물러 터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맨날 손해 보고 목표 달성 못한다고 엄청 갈구는데…. 으. 당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쉽게 보여서 송 상무가 나한테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과거 이런저런 사건을 떠올려보니 틀린 생각이 아니더라고. 아! 사람들은 만만한 사람한테 더 가혹하구나…. 그때부터인 것 같아. 의식적으로 거칠어진 거."

저 사람은 모진 회사생활을 감당하기 위해 본래 자신의 성품을 잃고 점점 꼰대로 변해갔구나.

정 팀장 같은 경우가 내 동기 중에도 있다. 그 친구는 기본적으로 약간 잘난 척은 했지만 누구를 무시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방 지점에서 협력업체 관리를 십여 년 하더니 윗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내가 아니라면 아니다'라는 식의 언행을 자주 해댔다.

게다가 창피한지도 모르고 자신이 갑질했던 사례를(예를 들면 회의 시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얘기를 했던 협력업체 사장에게 "나가"라고 했다든지 혹은 요상한 방법으로 용역업체를 괴롭혀서 자기 말을 듣게 했다든지 등) 영웅담 얘기하듯 우리에게 했다. 꼰대, 그것도 나쁜 꼰대 짓을 말이다.

꼰대들은 약자와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싸가지가 없다, 헛똑똑하다 비난하며 심지어는 괘씸죄까지 뒤집어씌운다. 내 앞의 정 팀장은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다 꼰대가 되었고, 내 동기는 우월적 지위에 너무 장기간 노출된 결과 꼰대가 되고 말았다. 굳이 남 얘기할 게 뭐 있나? 나 역시 팀원들에 대한 실망, 목표 달성 압박 등으로 벌써 꼰대가 되었는데.

물론 꼰대가 되는 과정에 내적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회사는 내 고통과는 상관없이 최대의 효율, 최대의 비용절감, 최대의 이익창출을 위해 폭주했다. 나 또한 이 달리는 기차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일조해야 했다.

그때 기획팀 차 차장이 나한테 왔다. 차 차장은 몇 달 전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되어 기획팀에 배치되었는데 거기서 벌써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난 그에게 왠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쫓아냈던 과거 팀장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 사업부문장에게 보고 예정이라면서, 금번 국가에서 실시하는 평가 대비 전국 지사 지도점검 출장 계획안을 보여주면서 구두 설명을 해주었다. 정말 똑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왜 내가 다른 팀장보다 출장을 훨씬 더 많이 가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는 '우리 팀이 주관하는 평가 항목이 많아서'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댔지만, 난 화를 내면서 반박했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평가 나만 하냐? 내가 아무리 막내 팀장이지만 출장의 반을 내가 가냐? 이게 말이 돼? 너희 팀장은 가지도 않네. 이게 무슨."

내가 필요 이상으로 소란을 떨었는지 차 차장은 당황해하며 자기 팀으로 서둘러 돌아갔고 우리 팀원들은 고개를 푹 박고 컴퓨터 자판 소리만 냈다. 나는 화가 가시지 않은 채 "건방진 놈. 걸리기만 걸려 봐"하고 뇌까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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