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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제] "남친 생겼다며?" 캐물으면 괴롭힘일까

<앵커>

친절한 경제, 권애리 기자와 이번 주 경제계 이슈 짚어봅니다. 권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는데, 도대체 어디부터 괴롭힘이냐를 두고 논란이 많아요.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놨죠?

<기자>

네, 많이 들어온다는 질문들을 모아서 어제(17일) 가이드라인을 냈습니다. 퀴즈 몇 개 드려볼 테니까 같이 한 번 풀어보실래요?

1번입니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내 직속 상사도 아닌 우리 팀이랑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옆 팀 팀장이 자꾸 메신저로 뭘 물어보고요. 낮에 달라고 했으면 딱 좋았을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괴롭힘일까요? 아닐까요?

<앵커>

업무 시간이 아니면 괴롭힘일 것 같고요.

<기자>

2번은요. 우리 팀장이 "남자 친구 생겼다며? 뭐하는 사람이냐, 어디서 만났냐?" 꼬치꼬치 물어봅니다. 이건 어떻게 보세요?

<앵커>

얼마나 꼬치꼬치 물어보느냐에 따라서 괴롭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

3번, 고졸 사원이 대다수인 회사에 유일한 대졸사원입니다.

내가 업무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포함해서 다수를 차지하는 오래 다닌 고졸사원들이 날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뒷말하고, 티 나게 밥도 같이 안 먹고, 가시 돋친 말을 해서 분위기에 주눅이 듭니다. 괴롭힘일까요?

<앵커>

후배들이면 약간 애매할 것 같은데요.

<기자>

생각해 보셨어요? 지금 앵커는 괴롭힘이다. 애매하다, 애매하다고 했는데, 순서대로 답을 드리면요. 1번, 괴롭힘 아닙니다. 2번도 아닙니다. 3번은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앵커>

설명을 좀 더 해주시기 전에는 아직까지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기준이 뭔가요?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3가지입니다. 보시면, 먼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가',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는가',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는가' 이걸 바탕으로 제가 드린 퀴즈를 풀이해 보면요.

일단 1번, 이 정도는 업무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 팀장 입장에서는 원래 내일 처리하려던 일을 급하게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사정이 뒤늦게 생겼을 수도 있고요.

내가 "이 팀장님 별로네,"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괴롭힘을 당했다고 회사에 얘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거죠.

비슷하게 휴가 간 사람 업무를 당장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상관없는 나보고 갑자기 야근을 하라고 한다. 할 수 있는 지시입니다.

하지만 내가 일을 못한다고 나한테 팀장이 욕설을 했다든가,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매일, 지속적으로 밤 10시 넘어서 메신저를 보낸다거나 이러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2번은요. 업무가 아닌 사적인 대화나 상황에 있어서 어디까지가 괴롭힘이냐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에 해당합니다.

남자 친구와의 내밀한, 예를 들면 성적인 상황 같은 것을 물어서 수치심을 준 게 아니라, 그냥 통상 관심이거나 대화거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질문을 했다. 이건 "아 우리 부장님 눈치 없네." 할 수는 있어도 괴롭힘은 아닙니다.

반면에 자꾸만 "회식하자는 데 싫어? 경위서 쓸까?" 이런 건 하는 사람은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앵커>

세 번째 사례는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랫사람도 상사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거네요?

<기자>

네, 상사·부하 같은 지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라는 것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학연, 지연, 혹은 남녀 같이 나눠지는 집단에서 내가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 속하면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면 내가 상사여도 혹은 그냥 평등한 동료 사이여도 나를 괴롭히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몇 가지 경우 더 풀어드리면요. 우리 부장이 영어를 잘하는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매일 퇴근 후에 1시간씩 잡아둡니다. 괴롭힘입니다. 업무가 아니고, 부장의 지위를 이용해서 나한테 공짜 과외를 받고 있잖아요.

한 가지 더, 소속이 다른 사람들이 요즘은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경우 많습니다. 파견근로자가 피해자일 때는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됩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하청을 주는 업체 직원이 와서 같이 일할 때가 있죠. 이것은 다른 회사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단, 소속이 어떻게 되든 사장님이 만약에 직원이 직원에게 하는 행동이라면 괴롭힘으로 봤을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루 살피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는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언뜻 판단이 되지 않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각 지방 노동청마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말씀을 드렸는데요,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로 일을 한다면 판단이 필요한 모호한 사례까지 갈 일이 거의 없겠죠.

시비를 가리기 전에 새 법이 생긴 취지를 같이 이해하면 좀 더 선진적인 직장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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